22.04.09(토)
눈을 붙인 지 2시간쯤 지났을 때 잠에서 깼다. 나만 방에 누워 있었는데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꽤 시끄러웠다. 몸은 어제보다 더 개운했다. 여전히 정상은 아니었지만 어제보다는 정상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다행이었다. 2시간 잔 것치고 별로 안 피곤한 것도 다행이었다.
평소에는 목이 빠져라 기다렸을 주말이었을 텐데, 오늘은 좀 달랐다. 목요일부터 집에 있었더니 나도 그렇고 아내와 자녀들도 이게 평일인지 주말인지 헷갈렸다. 아무 곳에도 나갈 수 없는 처지라서 더 그랬다. 날씨는 엄청 좋았다. 다들 벚꽃 구경에 한창인지 SNS에 벚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격리 생활을 하니 계절을 모르고 사는 기분이었다.
오전에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너무 길게 드렸다. 자녀들과 함께 드리는 가정 예배는 너무 길지 않은 게 좋다고 했는데, 후반부에는 우리 가족의 앞날에 관한 회의를 겸해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니 너무 길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몸을 꼬며 힘들어했어도 충분히 이해했을 텐데, 둘은 전혀 그러지 않고 끝까지 진지하게 임했다. 그래서 더 길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진지한 이야기들을 정말 ‘가족’에게 의논하듯 이야기했다. 서윤이는 중간에 잠들어서 아내가 방에 눕히고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레고를 꺼내달라고 했다. 너무 매일 레고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며칠 동안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집에만 있는데 그럼 뭘 하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군말 없이 꺼내 줬다. 오늘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며칠이나 더 그래야 할 텐데. 가뜩이나 장난감도 없는 집에서 불평과 불만 없이 격리 생활을 잘 소화해 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다.
점심은 시켜 먹었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있었던 건 아니라서 고르는 것도 한참 걸렸다. ‘시켜 먹자’는 마음보다는 ‘점심은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홈스쿨의 또 다른 이름은 밥스쿨’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하루 세 끼 밥 차려 주는 게 어마어마한 일이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만 빼면 평소 생활이나 격리 생활이나 큰 차이가 없는 아내에게는 매일 겪는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오랜만의 체험이었다.
저녁에는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좋아하는 아빠표 오므라이스였다. 소윤이는 오므라이스를 만드는 내내 옆에 서서 구경을 했다. 시간이 나면 앉아서 여러 요리책을 탐독할 정도로 요리에 흥미가 많아 보인다. 아마 시켜 주기만 하면 좋다고 할 텐데 여러 장애 요소로 인해 아직 시도를 못하고 있다. 일단 위험한 불이나 칼을 쓰게 하는 것이 아직 불안하다. 위험에 관한 불안보다 더 큰 걸림돌은 따로 있다. 소윤이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을 시윤이가 좌시하지 않을 거다. 내가 있을 때는 어느 정도 무마(?)가 가능하겠지만 아내 혼자 있을 때는 이게 또 하나의 갈등 요소이자 평화 붕괴의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참여하는 요리의 시간을 가지자니, 그건 그것대로 번거로운 일이 된다.
오늘도 곁에 선 소윤이에게 달걀 푸는 걸 시켰더니 저 멀리서 놀던 시윤이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얘기했다.
“아빠. 저도 할래여. 누나한테 뭐 시킨 거에여?”
“아 달걀 좀 풀어 달라고 했어. 오늘은 누나한테 시킨 거니까 시윤이는 하던 거 하고 놀아”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지만 내가 없는 낮에는 이게 ‘엄마는 누나한테만 좋은 거 해 준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등의 가짜 뉴스로 확대 재생산 될지도 모른다.
밥을 많이(그래 봐야 세 끼지만) 차렸다는 건 치울 일도 많다는 거다.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고 나서 마지막 설거지를 했다.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하는데 트거나 갈라지지도 않는 내 손이 신기했다. 밥스쿨이 아니라 세척스쿨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밤에는 아내와 영화를 한 편 봤다. 영화 생각이 날 정도로 몸이 회복됐다는 말이기도 했다. 다만 서윤이가 마지막 30분 정도를 남기고 깼다. 아내가 안고서라도 보려고 했고 서윤이도 처음에는 마치 기다려 주는 것처럼 얌전히 누워 있었다. 그러다 너무 졸렸는지 버티지 못하고 울었다. 결국 마지막 결말을 보지 못하고 노트북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