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에, 400km

22.12.03(토)

by 어깨아빠

(내) 엄마와 아빠가 집에 왔다. 김장 김치를 배송한다는 명분이 있기는 했지만 김치는 거들 뿐, 실제로는 손주를 보러 오셨을 거다. 엄청 일찍, 보통 일찍이 아니라 엄청 일찍, 새벽 네 시에 출발하셨다고 했다. 최소의 수면도 취하고 막히는 시간도 피하는 최적의 시간대가 그때다. 400km가 넘는 거리를 네 시간 남짓 걸려서 오셨다.


난 일이 있어서 출근했다. 오후 쯤 일이 끝났고 아내와 아이들, 엄마, 아빠는 대왕암 공원에서 놀았다고 했다. 며칠 동안 계속 춥더니 마침 오늘 딱 날이 풀렸다.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 엄마, 아빠도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가능했다. 아내는 무척 생기가 넘쳤다. 언제나 그렇듯 아내는 일반적인 시부모님과 며느리 사이의 역학을 거스른다. 어쨌든 시부모님이니 아침부터 이곳저곳 정리하고 치운다고 나만큼 일찍 일어났는데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렇지는 않을 거다. 남편들은 언제나 이 명언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편해도 친정 엄마, 아빠 앞에서처럼 아무 데서나 벌러덩 눕지는 못하지”


오히려 내가 피곤했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축구를 보고 일찍 일어나서 반나절 넘게 일을 하고 왔더니 피로가 쏟아졌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논다고 신이 났다. 이미 밖에서 몇 시간을 놀고 들어왔는데도 지치거나 지루해 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피로와 싸우는 나를 본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들어가서 좀 자고 나와요”

“그럴까?”


바로 받았다. 세상에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휴대폰 화면을 켜는 그 순간의 안락함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했다.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달콤하게 잤다. 한 시간 넘게 잤는데 마치 30분도 안 잔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머리는 개운했고 목덜미는 부드러웠다. 만병통치에 가까운 낮잠이었다. 일어나니 곧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김장 김치와 호흡이 좋은 보쌈이었다. 역시나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무지하게 잘 먹었다. 고기가 꽤 많았는데, 마치 ‘고기 양이 너무 적었나?’하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먹성이었다.


해가 져도 아이들의 흥은 가라앉지 않았다. 흥은 때때로 선을 넘어 반항(?)으로 변모했다. 특히 소윤이가 그랬다. 낮에도 아내의 말에,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과 태도로 반응했을 때가 종종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등에 업고 평소에는 참았던(?) 걸 표출하나 싶다가도 지원군과 상관 없이 이제 그럴 나이가 됐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자는 것도 엄청 늦게 잤다. 할머니와 함께 자겠다며 할머니를 데리고 들어갔는데 역시나 한참 걸렸다.


아내와 나는 이것저것 산다고 잠깐 나왔다. 데이트 아닌 데이트였다. 너무 춥고 귀찮아서 걷지 않은 게 아쉬웠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소윤이와 서윤이는 안 자고 있었다. 시윤이는 잠들었다. 엄마는 소윤이가 잠든 줄 알고 잠깐 나왔는데 소윤이는 할머니가 나갔다며 울었다. 결국 엄마는 두세 시간을 누워서 보초 아닌 보초를 서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와 아내, 아빠만 거실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너무 달콤했던 낮잠 덕분인지 늦은 시간이 돼도 끄떡없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