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4(주일)
아내도 나도 세상 모르고 잤다. 주일 아침답지 않게. 엄마와 아빠가 주일 아침의 분주함을 담당하셨다. 아내와 내가 나갔을 때는 이미 아침밥도 다 먹은 뒤였다. 덕분에 꽤 늦게 거실로 나갔는데 여유가 있었다. 아내도 자기 치장에 공을 들였다. 화장에 그렇게 오랜 시간 투자하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아내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들 옷을 내가 직접 골랐다. 썩 나쁘지 않은 착장이었다(고 자평한다).
마침 교회에서 장로님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 아빠에게 맡겼다. 서윤이는 예배 시간에 잠들어서 아내와 내가 데리고 있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한 시간은 넘게 걸렸다. 한정된 시간의 소중한 한 시간이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날이 많이 추웠다. 어디 돌아다니기가 어려운 날씨였다. 바로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또 피곤이 쏟아졌다. 아내도 나와 비슷해 보였다.
“여보. 방에 들어가서 좀 누워”
아내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과 엄마, 아빠는 보드게임을 했다. 어제처럼 소파에 앉아서 보는데 최면에 걸린 것처럼 눈이 감겼다.
“지훈아. 너도 방에 들어가서 좀 자”
엄마가 말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자녀니까 엄마의 말씀에 순종했다. 밤도 아닌데 아내와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마찬가지로 어제처럼 순식간에 잠들었고, 어제 못지 않게 달달한 낮잠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그때까지도 보드게임을 하고 계셨다. 아내는 이렇게 표현했다.
“도대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을까? 내가 유심히 봤는데 조금도 귀찮아 하거나 억지로 하지 않고 아이들이 하자면 하자는 대로 다 해 주시더라”
자녀가 아닌 손주니까 샘솟는, 부모가 아니라 할머니와 할아버지니까 가능한, 일상이 아니라 그리움 속에 마주하는 시간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이는 인내와 수용은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렵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어제는 집에서 고기를 먹었고 오늘 밖에서 고기를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세 남매는 무섭게 먹었다. 눈대중으로 봤을 때, 시윤이가 한 3-4인분, 소윤이가 한 2-3인분, 서윤이가 한 1-2인분은 먹었다. 실로 엄청난 속도와 기세였다. 아빠와 나와 엄마는 한동안 굽고 나눠주는 것만 했다. 아빠는 고기가 아직 한참 남았는데 벌써 냉면을 시켜서 드셨다. 아내는 자기도 먹었다고 했지만, 아내가 많이 먹고 잘 먹는다고 하는 건 그래 봐야 뻔하다. 아이들이 숟가락질을 멈추고 나서야, 남은 고기를 편하게 먹었다.
엄마와 아빠는 가셔야 했다. 애초에 1박 2일로 잡고 온 일정이었다. 어제 워낙 이른 시간에 오셔서 1박 2일 치고는 꽤 긴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 느낌은 잠깐이었고 역시나 짧긴 짧았다. 볼 때마다 몇 개월 만이라 그런 건지 엄마와 아빠의 ‘조부모 다운’ 모습이 진하게 느껴졌다. 아빠의 운전에 관해서 걱정해 본 일이 없는데, 너무 짧은 기간에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하는 아빠가 걱정이 됐다. 대중교통을 타면 ‘공짜’로 타는 대우 아닌 대우를 받는 아빠였다. 아내도 나와 비슷한 슬픈 감정이 있었을 거다. 보통 아내는 나보다 훨씬 그런 걸 진하게 느낀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각자의 방식으로 참는 듯했다. 소윤이는 일부러 깊은 생각을 피하는 듯했고, 시윤이도 비슷해 보였다. 서윤이는 아예 대놓고 표현했다.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가서 속상해여어”
우리는 장을 보러 갔다. 진짜 장을 봐야 하기도 했고 바로 집에 들어가는 게 싫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간식도 하나씩 고르게 했다. 아주 소박한 걸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기다란 캬라멜을 샀다. 서윤이는 못 먹는 거라 다른 걸 골랐다. 서윤이는 말캉말캉한 떠먹는 젤리를 골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는 차 안에서 바로 먹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가 고른 젤리는 차에서 먹는 게 불가능했다.
“서윤이가 알면 자기도 차에서 먹겠다고 할 거니까 서윤이 모르게 조용히 먹어. 알았지?”
세 살밖에 안 됐어도 눈치는 거의 서른 살 수준이다. 서윤이는 단박에 자기 뒤에 앉은 언니와 오빠가 벌이는 작당을 눈치챘다.
“언니, 오빠. 뭐 해? 뭐 먹고 이떠어?”
다행히 자기도 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았다.
엄마는 우리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자마자 울었다고, 아내가 전해줬다. 대부분 그러신다. 엄마, 아빠도. 장인어른, 장모님도.
“소윤아. 안 슬퍼?”
“할머니, 할아버지랑 놀던 거 생각하면 좀 슬퍼지기는 해여”
아내는 자려고 누운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얘들아. 우리 내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 알았지?”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