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5(월)
마지막 일정이 시내에서 있었는데 돌아오는 차 편이 마땅하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K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따로 와야 했다. 버스를 타고 와야 했는데 괜히 막막했다. 고작해야 한 시간인데 천 리 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여보. 오늘의 일정은 어떻게 돼요? 내가 집에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혹시 날 데리러 와 줄 수 있나요?”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을 하러 갔다가 끝날 시간이었다. 막상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나 싶었다. 하루 종일 처치홈스쿨 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또 데리러 오라니.
“데리러 갈게요!”
아내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잠깐 통화를 했는데 아내의 목소리에 당연히 힘이 없었다. 아내에게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했지만 아내는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아내의 좋지 않았던 목소리는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꾸 다퉈서,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했다. 심지어 아내와 아이들은 나를 꽤 한참 기다렸다. 한살림에 가서 장을 보고 왔는데도 내가 끝나지 않아서 내가 있는 곳 주변을 빙빙 돌았다.
일정을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내가 매우 다급하게 놀라는 목소리로
“여보. 조금 이따 전화할게요”
라며 끊었다. 무슨 큰 일이 생겼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아내 입장에서는 큰 일이었다. 서윤이가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고 해서 그런 거였다. 차 안에서 매우 급한 듯 ‘쌀 거 같다’라고 얘기하는 막내의 외침에 아내는 잠시 평정심을 잃었지만 주변의 어느 가전 매장에 들어가 화장실을 이용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나를 만났을 때는 모든 걸 해결한 뒤 평화를 찾은 모습이었다. 만난 곳 근처에서 저녁도 먹었다. 전혀 아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보이는 곳으로 갔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분주한 마음으로 정신없이 정하고 앉은 곳 치고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밥을 먹고 나니 적잖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난 집으로 안 가고 동네 카페로 갔다. 해야 할 일이 좀 더 있었다. 아내는 커피를 받아서 아이들과 집으로 갔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아내는 노견 같았다. 강아지와 함께 산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었다. 정상적인 퇴근을 했을 때는 어린 강아지처럼 발발거리며 현관으로 나올 때도 많은데 오늘은 마치 임종에 가까워지는 강아지처럼 제자리에 앉아서 힘 빠진 눈으로 날 바라보며 인사했다.
“어, 여보. 왔어?”
아내의 헌신 덕분에 체력도 아끼고 시간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