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6(월)
새벽에 서윤이가 아내와 나의 사이로 왔다. 자주 있는, 아니 거의 매일 있는 일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좁았다. 서윤이가 자꾸 내 쪽으로 밀고 왔다. 세 살 딸을 다시 밀고 내 자리를 확보하는 건 어려우니 그냥 좁은 대로 몸을 구기고 잠을 청하는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서윤이 옆에 시윤이도 있었다. 그 와중에 둘이 좁다며 티격태격했다. 잠결에 너무 짜증이 났다.
“강시윤, 강서윤. 자리로 돌아가세요. 얼른 가세요”
시윤이는 순순히 갔고, 서윤이는 펑펑 울면서 갔다. 다행히 울음이 길지는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이었다. 짜증이 배가됐다. 알람을 끄고 40분 정도 뒤로 다시 맞췄다. 40분 뒤에 알람이 울렸을 때는 다시 30분 뒤로 알람을 맞췄다. 왠지 모르게 유난히 피곤했다. 알람 10분 전에 깨우고 방해한 아이들 덕분인지 아니면 어제 하루 종일 바쁘게 지낸 덕분인지. 아무튼 잘 수 있는 시간을 꽉 채워서 자고 일어났다. 그래도 피곤했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여보. 어디예요?”
“나? 교회”
“아, 아니 시윤이가 좀 끙끙거리네”
“아, 그래? 열은?”
“열은 조금 있기는 한데 심하지는 않고. 힘든가 봐요. 계속 끙끙거려요”
어젯밤에도 시윤이가 조금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이마를 짚어 봤는데 열이 없어서 그냥 잠꼬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시윤이도 며칠 동안 피곤하게 보내고 어제 찬바람을 맞아서 몸이 좀 힘겨웠나 보다. 다행히 토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했다.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게 걱정이었다. 시윤이가 조금 더 어릴 때는 (추정이지만) 저혈당 쇼크의 전조 증상을 보일 때도 많았다. 공복이 조금 길어졌을 때 주로 그랬다. 어제 저녁에 치킨과 피자를 먹었지만, 아마 제대로 먹지 않았을 거다. 혹시라도 공복이 더 길어지거나 기운이 더 없어지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윤이와 서윤이는 멀쩡하다고 했다. 서윤이에게 자비 따위는 없었다. 오빠가 아파서 엄마에게 좀 안겨 있겠다는데 그걸 용납 못하고 자기가 안겨야겠다며 떼를 썼다.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시윤이에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봤더니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치아바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당장 동네에는 파는 곳이 없었다. 퇴근하고 시내에게 나가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오후가 되고 나서는 밥도 조금 먹고 기운을 차렸다고 했다. 통화하면서 목소리도 들었는데 모르고 들었으면 평소와 똑같다고 느꼈을 거다.
아내는 시윤이가 기운을 조금 차렸으니 바람도 쐴 겸 자기가 시내에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아직 일을 하고 있을 때라 나는 같이 못 가니 갔다 오라고 했다. 그렇게 얘기하고 얼마 안 돼서 일을 마쳤다. 급히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나?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어”
아내는 다시 집 쪽으로 왔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시내로 나갔다. 우선 시윤이가 원하는 치아바타를 샀다. 저녁도 밖에서 먹기로 했다. 집에 가서 바로 먹을 게 있었으면 집에 가서 먹었을 텐데, 집에 가서 어묵탕을 끓여야 한다고 했다. 너무 긴 여정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갔을 때 괜찮았던 마트의 푸드코트에 가서 먹기로 했다. 시윤이는 우동이 먹고 싶다고 했다. 돈까스와 우동을 줬다. 차에서 자다 깨서 다시 기운이 없었는데 밥은 느릿느릿 잘 먹었다. 다행이었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최고다. 잘 먹는 걸 넘어서 엄청 많이 먹었다.
“시윤아. 안 먹고 싶으면 그만 먹어도 돼. 억지로 먹지 말고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어”
치아바타까지 그 자리에서 모두 먹어치웠다. 소윤이와 서윤이와 함께 나눠 먹기는 했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먹성이었다. 아픈데 너무 많이 먹어서 혹시나 소화를 못 시키고 체할까 봐 마트를 조금 걸었다. 시윤이가 기운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걸어 다녔다. 오히려 조금 걷다 보니 기운을 차렸는지 소윤이, 서윤이와 장난도 쳤다.
집에 오니 열 시였다. 집에 와서 밥을 차려 먹는 게 엄청 긴 여정처럼 느껴졌는데, 밖에서 밥 먹고 온 건 더 긴 여정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