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5(목)
아무리 늦게 자도 엄청 늦게까지 자는 건 어렵나 보다. 중간에 여러 번 잠이 깼다. 특히 해가 뜨고 나서. 여덟 시 무렵부터는 억지로 눈을 감기는 했지만 깊게 잠들지는 못했다. 완전히 정신을 차린 건 아홉 시 무렵이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건 열 시 넘어서였다. 자녀들은 진작에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 후폭풍이 밀려 올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당장은 괜찮았다. 오늘은 특별히 다른 걸 하지는 않았다. 어른들이 활동을 개시한 시간이 워낙 늦기도 했고 함부로 당장의 환각(?)만 믿고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아주 무거운 피로 누적에 시달릴 지도 몰랐다.
계속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한낮이 되어서야 집 밖으로 나갔다. 근처에 있는 빵 가게에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플 때 먹고 싶다고 했던 ‘그 치아바타’를 파는 곳이었다. 아내들은 막내들을 데리고 차를 타고 갔고 남편들은 나머지 자녀와 함께 걸어갔다.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너무 짧은 일정이라 어디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짧은 산책 외출이었다.
총 열 한 명의 대식구였지만, 다행히 카페에 다른 손님이 없었다. 빵을 꽤 많이 산다고 샀는데 입은 빵보다 훨씬 많았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른들은 별로 먹지도 않았는데 게 눈 감추는 것보다 두 배 정도는 빠르게 없어졌다. 빵을 조금 더 샀다. 물론 그것도 순식간에 없어졌다.
어제 세 시가 넘도록 대화를 나눴지만 아직 할 얘기가 많았다. 아예 자녀들과 따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 오랜 시간 머물지는 못했다. 빵이 떨어진 자녀들은 급격히 우울해졌다. 밖에 나가서 뛰면 모를까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힘들었나 보다. 어제 잘 때처럼 대화를 나누면 좋으련만 밤과 낮의 감성이 다른가 보다. 마치 어른들이 아무것도 사 주지 않고 너무나 이기적으로 어른의 시간만을 위해 억지로 데리고 온 것처럼, 다들 얼굴에 불만이 가득이었다.
‘언제 가요. 밖에 나가서 놀면 안 돼요. 너무 지루한데’
라고 말하는 듯했다.
뭔가를 더 할 시간은 없었다. 그대로 집에 가서 짐을 챙겨서 나왔다. 언제나 아쉬운 이별의 순간이었다. 다음에, 5월에, 아니면 그 전에 보자는 약속과 바람을 주고 받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의 섭섭함이 증폭되지는 않았다. 바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기로 했다. 소윤이가 좋아했던 월남쌈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먼저 와 계셨다. 이사를 오고 나서도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보고 있지만, 우리가 올라와서 만난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새삼 새로웠다.
“할아버디. 나 보고 디펐어여 안 보고 디퍼었어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안긴 서윤이가 할아버지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어떤 할아버지가 녹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할아버지를 좋아하지만 이렇게까지 녹이지는 못했다. 서윤이가 압도적으로 보고 싶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로 처가로 이동했다. 처음 결혼하고 방문했던 때 하고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황혼육아를 하는 집인 듯, 온갖 장난감과 육아용품이 가득했다. 어느덧 손주를 넷이나 둔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어제도 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장난감을 하나씩 차지해가며 놀았다.
어제 너무 늦게 잤으니 오늘은 조금 일찍 재우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긴 했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처럼 아이들만 들여보내면 되는데 왜 함께 들어가는지 의아했다. 왠지 좋은 결과(?)를 들고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들어간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아내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렸다. 거실에 앉아서 함께 TV를 보던 나와 장인어른, 장모님이 모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하는 말 같았다. 둘이 다투는 듯했고.
“서윤이 안 자?”
“서윤이 자요”
“그럼 둘이 자라고 하고 나와”
“좀 기다려 주려고 한 건데 둘이 티격태격해서 열받아”
“그냥 나와”
“조금만 있어 준다고 이미 말함”
그러고 나서는 카톡을 보내도 답이 없었다. 아마 잠든 듯했다. 전화로 아내를 깨웠다. 두 번 정도 전화했더니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전히 안 잔다고 했다. 엄청난 녀석들이다. 어제 그렇게 늦게 자고 피곤하지도 않은가. 머리를 대면 바로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판국에 여전히 깨어 있다니. 아내가 나오고 나서도 둘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내가 들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침대에서 자게 했는데 서로 자리가 좁다며 다퉜다. 퀸 크기 침대에 아홉 살, 일곱 살이 누웠는데 좁을 리 만무했다. 따끔하게 경고(?)를 하고 나왔다. 그 뒤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마 또 다퉜더라도 굉장히 소리를 낮췄거나, 소윤이가 그냥 져 줬을 거다.
아내와 나는 집에서 나왔다. 영화를 보러 갔다. 도대체 얼마 만인지. 영화관은 갈 때마다 ‘얼마 만인지’다.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서 갔다. 영화관람료가 비싸졌다는 소식은 많이 접했는데 직접 겪으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너무 옛날 얘기긴 해도 조조할인으로 2,000원에도 최신 개봉작을 봤던 나에게는 너무 비싼 금액이었다. 너무 비싸다고 해도 안 볼 수는 없으니 방법은 없었지만. 다만 의자가 너무 편해서 깜짝 놀랐다. 발받침도 있고 전동식으로 등받이의 각도까지 조절이 됐다. 엄청 편했다. 영화는 됐고 잠이나 한 숨 자고 싶을 정도로.
영화 한 편으로 아내와의 데이트를 마감해야 하는 게 무척 아쉬웠지만 이 또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시간이 더 허락되었더라도 아내와 나의 체력이 한계였을 거다. 역시나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의 부담은 전혀 없었다.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의 밤보다도 더 가벼웠다. 나에게는 장모님, 아내에게는 친정 엄마가 내일 아침을 맡으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