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도 먹어도 부실하고, 놀아도 놀아도 부족하고

23.01.06(금)

by 어깨아빠

장인어른은 출근을 하셨다. 아내와 나는 당연히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잤다. 아내와 내가 아직 방에 있을 때 아내의 조카가 왔다(이제 갓 돌을 넘겼으니 혼자 걸어오지는 않았고, 그의 엄마와 함께). 내 동생의 딸도 그렇고, 지인의 어린 자녀도 그렇고, 형님(아내의 오빠)의 아들도 그렇고 다 나를 멀리한다. 적절한 낯가림은 정상적인 인지의 현상이라는 발달학적 해석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오늘도 별다른 일정을 소화하지는 않았다. 장모님은 어제, 불과 5개월 만에 눈을 구경하기 어려운 곳의 주민이 된 손주들을 위해 눈썰매장이라도 갈까 하는 구상을 하셨지만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집에서, 혹은 근방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게 모두의 본능적인 바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에게 장모님의 구상이 유출됐다면, 녀석들은 분명히 가자고 아우성이었겠지만.


명절과 비슷했다. 배가 고플 틈이 없었다. 잠시의 허기도 허용되지 않는, 꾸준한 먹을거리 제공이 이뤄졌다. 아이들은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은 당연하고 끼니와 끼니 사이의 빈 시간도 촘촘하게 간식으로 채워 넣었다. 아내와 나는 며칠 째 아침은 안 먹고 있다. 아침 밥 대신 아침 잠을 먹느라.


점심은 중국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아마도 장모님의 탕평 정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제는 소윤이가 원하는 월남쌈을 먹였으니 오늘은 시윤이가 좋아하는 탕수육을 먹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가 안 고프다면서 심드렁했다. 괜히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탕수육은 시윤이의 영혼을 달래는 음식이었다. 배가 안 고파도 끝까지 성실하게 먹었다.


“시윤아. 배 부르면 안 먹어도 되는데”

“배가 부른 건 아니예요”


먹으면서 배가 꺼지는 기이한 현상인가.


밥을 먹고 나서는 근처의 카페로 갔다. 가는 길에 서윤이를 재웠다. 장모님과 장모님의 친한 권사님이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나와 아내는 서윤이가 잠든 유모차를 곁에 두고 따로 앉았다. 평온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윤이처럼 1차원의 요구 수용이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규칙과 훈육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해서 품이 든다. 아내와 나는 비교적 세밀하게 가르치려고 하는 편이라 더 그렇다. 가까이 있으면 많이 보이고 많이 들리는 법이고, 아무래도 더 잔소리를 하게 된다(조부모님들이 손주들을 그토록 애처롭게 여기는 일련의 과정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예 따로 앉으면 이런 근원적인 구조가 허물어진다. 잠시나마. 그로 인해 누리게 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평안함’은 무엇보다 달콤하고.


서윤이는 꽤 오래 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와 번갈아가며 밖에 나갔다. 먼저 소윤이가 은밀하게 할머니와 나갔다. 그야말로 스리슬쩍 사라졌다. 가장 크게 당황(?)한 건 시윤이였다.


“엄마. 누나랑 할머니 어디 갔어여?”

“글쎄? 엄마도 모르는데?”


장모님과 소윤이는 꽤 한참 있다 돌아왔다. 시윤이는 득달같이 붙어서 어디를 갔다 왔는지 캐물었다. 소윤이는 귀찮은 듯 혹은 별 거 아니었다는 듯 건성으로 ‘그냥 어디 좀 갔다 왔어’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시윤이는 장모님에게 ‘자기도 나가겠다’고 얘기했다. 거부할 수 없게. 장모님은 시윤이의 손을 잡고 다시 나가셨다.


함께 계시던 권사님의 딸(이자 아내의 친한 언니)과 둘째 손주도 잠깐 들렀다. 그때는 내가 밖에 나가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권사님의 손주와 함께. 권사님의 손주는 말이 없었다.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발로 바닥을 쓸고 다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쌓여 있는 눈으로 작은 눈사람을 만드는 데 열심이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와 함께 걸어서, 서윤이는 아내와 장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서윤이는 은근히 겁도 많고 걷는 것도 안 좋아한다. 집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다시 나왔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장인어른도 퇴근하고 바로 식당으로 오셨다.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다. 역시나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먹으니 들어가긴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자기 전까지 계속 먹었다. 양치를 하고 나와서도 먹었다.


“아까 부실하게 먹었으니까 이거라도 먹어야지”


장모님은 아이들에게 딸기를 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치 아이들이 아무리 놀아도


“별로 못 놀았다”


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기 전까지 먹고, 자기 전까지 놀았다.


어제의 일을 상기시키며 ‘오늘은 잘 잤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고 아이들과 밤 인사를 나눴다. 장인어른은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하셨는데, 그냥 계속 집에 있었다. 아내와 나에게 그럴 만한 체력이 없기도 했고, 밖에 눈비가 조금씩 흩날리기도 했다. 일기예보에서는 대설특보가 발효됐다면서 갑작스러운 폭설을 조심하라고 했다. 마지막 밤이었다. 장인어른, 장모님과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무척 피곤해 했다. 육아에서 해방된 건 물론이고 ‘끼니 준비’에서 자유로운 하루하루였다. 아내 말처럼 ‘하는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싶을 만큼 피로를 견디지 못했다.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느라 피곤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히려 난 걱정 했던 것보다는 덜 피곤해서 다행이었다. 어찌 됐든 일을 하지 않는 휴가라 거기서 오는 쾌감이 피로감을 압도했다.


“강서방. 내일은 아침에 좀 푹 자”


장모님은 방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번 주 내내 푹 자고 있기는 하다. 더 푹 자려면 그야말로 정오가 넘어갈 때까지 자야 할 텐데, 몸이 거부한다. 내일’은’이 아니라 내일’도’ 푹 잘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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