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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9. 2023

독박육아의 후유증인가

23.01.14(토)

원래 돌아가는 기차표를 저녁 시간으로 예매했는데 예상보다 일정이 일찍 끝나서 앞당겼다. 아내는 어제보다 목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일을 모두 마치고 나니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근처에 있는 서점에 구경을 좀 하려고 갔는데 문득 아이들 선물을 사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윤이 선물로는 처음에 마스킹 테이프를 골랐다. 소윤이가 좋아하는 연보라색 마스킹 테이프를 찾아서 돌고 또 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보석 자수’


난 어떻게 하는 건지 전혀 모르지만 소윤이가 엄청 좋아한다. 비싸지 않은 거라 질이 어떨지 의문스럽긴 했지만 다른 문구점에서 파는 게 다 비슷한 가격이긴 했다. 그 다음으로는 서윤이 선물을 골랐다. 스티커북인데 색칠도 할 수 있으면서 너무 비싸지 않은 게 있었다. 바로 그걸로 골랐다. 사실 서윤이 선물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은. 그게 뭐든 ‘자기 것’이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니까. 시윤이 선물이 어려웠다. 문구점에서 파는 대부분의 물건은 시윤이의 취향이 아니었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양말이 보여서 집어 들기는 했는데 뭔가 석연치 않았다. 다시 내려놨다.


‘시윤이 선물은 그냥 먹는 걸 사 줘야겠다’


아내에게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남편을 활용할 기회를 제공했다. 근처에 맛있는 빵 가게를 찾아 보고 사 가야 할 걸 알려달라고 했다. 아내는 바빴는지 아니면 찾지 못한 건지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하고 나서야 근처에 있는 카페 한 곳을 알려줬다. 내가 알아서 고르면 된다고 했다. 멋쟁이 젊은이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아내가 먹을 빵 두 개와 시윤이의 선물로 줄 초코브라우니를 골랐다.


아내는 오늘도 데리러 나온다고 했다. 집에 갈 때는 급할 게 없으니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나온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차라리 데리러 나오는 게 혼자 아이들 셋과 집에 있는 것보다 나아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나는 급할 게 없지만, 아내는 급할 게 있었나. 아무튼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기차역에서 만났다. 하룻밤이었지만 무척 반가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에게 편지를 건넸다.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나 보다. 하루였지만 보고 싶었고 너무 반갑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아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몸이 훨씬 안 좋았다. 오늘만 감기약을 두 번이나 먹었다고 했다. 목소리가 말이 아니었다. 약을 두 번이나 먹었지만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내일 찬양단에서 솔로를 맡은 게 있었는데, 인도하시는 집사님에게 그것도 못하고 아예 찬양단도 못 설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아내는 그 몸으로 저녁 준비도 했다.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했다.


“여보. 어제 오늘 고생하고 왔잖아. 오늘은 그냥 내가 좀 해 줄게”


아내는 일찍 자러 들어갔다. 난 더 일찍 자러 들어가기를 바랐지만, 아내에게 그건 무리였다. 자정을 넘기기 전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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