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Jul 24. 2023

무조건 받아주기

23.03.03(금)

역시나 아내의 시윤이를 향한 ‘무조건 수용 프로젝트’는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다 받아주기 정말 쉽지 않네”


아내를 향한 혹은 아무 대상이 없는 짜증이나 감정은 다 받아준다고 해도, 소윤이나 서윤이를 향해 내뱉는 건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별 말을 더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겠으니까. 믿었다. 아내를. 충분히 알아서 지혜롭게 잘 대처했을 거다. 어쨌든 아내는 매우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오후에는 K의 첫째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서 가야 했다. 처치홈스쿨 식구들과 비슷한 또래의 교회 친구도 몇 명 불렀다고 했다. 그러니까 대략 20여 명 정도가 모이는 거였고, K의 첫째는 선물과 축하를 받고 K와 그의 아내는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했다. 아내가 조금 일찍 가기로 했다고 했다. 조금이나마 손을 보태려고 그러는 거 같았다. 나도 아내와 비슷한 시간에 K의 집으로 갔다.


음식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아내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난 자녀들과 함께 있었다. 사실 크게 한 일은 없었다. 다들 알아서 잘 놀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갔고 이어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자녀만 열 두 명이었다. 교회도 아니고, 집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곧 생일인 소윤이도 K의 첫째가 생일잔치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농담 삼아 자기도 해야겠다고 했다. 완전히 농담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꼭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도 아니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일단 올해는 우리 가족끼리 축하를 하자고 얘기했다. 소윤이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사실 소윤이는 처음으로(아, 꼭 소윤이만 그런 게 아니라 시윤이, 서윤이도 마찬가지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떨어져서 생일을 보내는 거다. 여러 모로 안쓰러워서 우리끼리라도 잘 축하해 주자고 아내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어쨌든 오늘은 K의 첫째의 생일을 정성껏 축하했다. 사실 축하의 시간은 잠깐이었다. 밥 먹고 놀았다. 소윤이는 유일하게 같은 나이의 동성 친구인, 교회 친구 O와 붙어 있었다. 케이크도 둘이 한 접시에 받아서 나눠 먹고, 소파에도 둘이 함께 앉아 있었다. 점점 취향이 분명해지는 것과 반대로 그 취향을 공유할 만한 친구가 없어 보일 때가 많았는데 둘이 그렇게 붙어 있는 걸 보니 귀여웠다.


초대받은 다른 자녀가 생일선물로 집에 가지고 있던 레고를 잔뜩 가지고 왔다. 정말 잔뜩, 한 스무 상자도 넘게 가지고 왔다.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자녀들이 하나씩 골라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하나씩 골랐다. 한창 레고를 살 때도 감히 고르지 못했던, 무척 비싸고 큰 걸 골랐다(그런 게 엄청 많았다). 서윤이는 자기도 고르겠다고 했지만 ‘언니, 오빠꺼 같이 하면 돼’라고 얘기하며 설득했다. 아직 이런 ‘얼렁뚱땅 전술’이 통한다.


생일잔치를 마치고 나서는 다 함께 교회로 갔다. 오늘 저녁부터 부흥회가 있었다. 아내가 속한 여전도회는 특송도 해야 했다. 자녀들과 함께 부른다고 했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가 엄마를 따라서 나갔다. 서윤이 혼자 대열에서 이탈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 뭔가 불만스러운지 아내에게 계속 뭔가를 요구하더니 이내 드러눕기 직전까지 갔다. 내가 급히 나가서 서윤이를 안았는데 이미 큰 울음을 터뜨리고 난 뒤였다. 예배당 바깥으로 나가서 서윤이의 울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아내가 나중에 얘기해 줬는데, 서윤이는 자기도 마이크를 잡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덕분에 서윤이는 그토록 열심히 부른 찬양을 정작 특송 시간에는 제대로 못 불렀다. 지난 성탄절에도 그러더니.


셋 모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세 녀석을 씻기고 눕히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잠시 숨 고르기의 시간을 가지고 움직였다. 아내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집에 먹을 게 없는지 여기저기 뒤지다가 결국 먹을 만한 게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집에는 없는 ‘먹을 만한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아내는 희한한 걸 찾아냈다. 편의점에서 파는 콘치즈였다.


“내가 사다 줘?”

“어”


물음표를 채 찍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콘치즈와 컵라면을 사다 줬다. 오늘따라 컵라면이 무척 맛있게 보여서 까딱하면 넘어갈 뻔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에게 아들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