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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28. 2023

살고 싶으면 잠깐이라도 나가

23.03.06(월)

시윤이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해열제를 먹었을 때는 잠깐 떨어졌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올랐다. 겉으로 보이는 상태도 오락가락이라고 했다. 조금 기운을 차렸을 때는 말도 좀 하고 움직이다가, 지치고 기운이 사라지면 다시 누워 있고. 무엇보다 하루 종일 밥을 잘 못 먹었다고 했다. 누룽지 조금, 사과 두 조각 정도 먹은 게 전부라고 했다. 심정적으로는 엄마가 계속 자기 옆에 붙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직 자비를 모르는 서윤이는, 오빠의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고 자기도 엄마에게 안기고 싶다면서 떼를 썼고. 아픈 시윤이도 시윤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고생인 건 아내였다. 그저 병수발만 들어도 힘들 텐데 조율자의 역할까지 해야 했으니 엄청 피곤했을 거다. 내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그렇게 지냈을 테고.


퇴근하자마자 일부러 시윤이에게 장난을 쳤다. 퇴근했을 때는 시윤이가 많이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시윤이는 나의 장난과 망가짐에 씨익 웃었다.


“시윤이 오늘 거의 처음 웃는 거 같은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난 시윤이의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부모가 자녀의 웃는 모습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고, 소윤이와 서윤이의 웃음도 물론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윤이 특유의 웃음이 있다. 대놓고 웃지 않고 약간 감추려는 듯 혹은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얼굴에 잔잔히 퍼지는 미소에 가까운 그 웃음을 특히 좋아한다. 그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아내에게 은밀하게 저녁 외출을 제안했다.


“여보. 저녁 먹고 나갔다 와”


아내의 오늘 하루가 너무 고단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숨통을 트여주고 싶었다. 아내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굳이 메시지를 보낸 건, 보안유지 때문이었다.


“여보. 나 안 나가도 돼요”


난 직접 답을 했다.


“왜. 나갔다 와. 오늘 힘들었잖아”

“여보도 힘들잖아”

“괜찮아”


눈치가 빠른 소윤이는 바로 상황을 알아차리고 얘기했다.


“오늘 엄마 나가여?”

“어. 엄마도 오늘 너무 힘드셨을 거 같아서”


매일 보고, 하루 종일 보는데 뭐가 그렇게도 애틋할까. 나가기 전에도 뽀뽀에 포옹에 해야 하는 게 많고, 아내가 나가고 나면 베란다로 달려가서 다들 그렇게 엄마를 불러댄다.


“엄마. 엄마. 안녕. 내일 만나자여”


‘이제 그만하고 이리 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간신히 참아냈다. 시윤이는 많이 괜찮아졌는지 자기 전에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시윤이는 요즘 글밥이 많은 일반 책(그림책이 아닌)에 재미를 들였다. 오늘도 ‘로빈슨 크루소’를 들고 왔다. 그런 책은 자기 전에 읽어 주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보통 한 챕터 분량을 읽곤 한다. 오늘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졸았다. 조느라 낭독이 멈출 때마다 서윤이가 나를 툭툭 쳐서 깨웠다.


“시윤아. 미안해. 아빠가 다 읽어주려고 했는데 오늘은 진짜 안 되겠다. 여기까지만 읽자”


고맙게도 시윤이는 흔쾌히 아빠의 사정을 이해했다.


아내가 나가기는 했지만 꽤 늦게 나갔다. 게다가 나가서도 소윤이 생일 준비를 위한 물품을 사느라 시간도 많이 썼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소윤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장식과 준비에 시간을 썼다. 항상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융숭한 축하를 받으며 보냈던 생일을 우리 가족끼리 보내는 것이니 너무 조용히 지나가기에는 미안했다. 그렇다고 엄청난 호들갑을 떨며 준비할 건 또 아니었고. 벽에 장식 조금 하고 풍선 조금 부는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받은 선물과 아내와 내가 쓰는 편지도 있었다. 아내가 생일 기념 특별 음식도 준비한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볼 수 있게 장식도 미리 해 뒀다.


“여보. 소윤이 자다가 깨서 나오는 거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소윤이가 자다 깨서 나왔다. 열 두 시가 넘었으니 생일이긴 했다.


“소윤아. 생일 축하해”


나온 김에 축하도 해 줬다.


아내가 걱정이었다. 내일 준비한 요리가 만만해 보이지 않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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