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마무리

20.01.12(주일)

by 어깨아빠

온 가족이 어제의 피로에 허덕였나 보다. 다 함께 늦잠을 잤다. 물론 아이들이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기는 했지만. 8시에 살짝 잠에서 깨기도 했는데 소윤이랑 짧은, 꿈같은 대화를 나누고 다시 잠들었다. 아내와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10시였다.


"여보. 어떻게 하지"

"하아. 그러게"

"소윤이 오늘 새싹꿈나무 반 바뀌고 처음이잖아"

"그렇지"

"아침 안 먹고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갈까?"

"그럴까?"


소윤이는 간단한 세수와 양치만 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시윤이는 그나마도 못했다.


"아빠아. 저늠여? 찌까(치카) 암 해여엉?"

"어. 시윤이는 그냥 옷 갈아입어"

"왜여어엉?"

"그냥. 시윤이는 깨끗해서"


미안하다. 시윤아. 그런데 사실이기도 해. 아직 너의 입에서는 어떤 어른의 구취보다는 아이의 침 내음이 더 풍기니까. (물론 너의 침 냄새를 좋아하는 아빠의 취향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구취까지는 아닌 거 같아서 그랬어.)


당연한 얘기지만 오늘 다시 한번 증명이 됐다. 아침을 챙겨 먹으면 엄청나게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게. 오히려 주일의 평균 출가 시간보다 조금 이른 감도 없지 않았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발휘되는 기민함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건 밥이다. 항상 같은 속도로 먹어주지 않는 아이들의 밥이라면 더더욱.


주차를 하고 예배당으로 내려가서 아내 옆에 앉았다. 잠시 후 아내가 날 툭 치면서 뒤를 좀 보라는 눈짓을 했다. 지난번 송구영신 예배 때 함께 왔던 (내) 친구의 아내가 와 있었다. 아침에 8시에 잠깐 눈을 뜬 것도 친구한테 연락을 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출근인지 아닌지를 물어봤는데 출근을 한다고 했다. 친구 아내만 먼저 와도 됐지만, '부부가 함께 와서 첫 예배를 드리고 새 신자 등록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라는 고정관념에 갇혔는지 그럴 생각을 못 했다. 친구 아내가 스스로 온 거다. 만약에 늦었다고 그다음 시간대 예배를 드리기로 했으면 곤란할 뻔했다. 부지런 떨어서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새싹꿈나무 예배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가서 기쁜 소식을 전했다.


"소윤아, 시윤아. 은지 이모가 오셨어"

"우와. 진짜여?"


엄청 자주 만난 것도 아닌데 몇 번의 만남 속에서 좋은 이모로 각인이 됐나 보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이모는 어디 있냐고, 어떻게 오셨냐고, 아빠가 연락을 한 거냐고, 밥만 먹고 바로 가는 거냐고 엄청 물어봤다.


밥과 국을 타서 자리로 갔는데 아내가 시윤이와 씨름 중이었다. 시윤이는 이미 울상이었다. 엄마 옆에 앉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떼를 쓰는 중이었다. 일단 아빠한테 오라고 했더니 더 길길이 난리를 쳤다. 요즘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잠잠해졌나 싶었던 시윤이의 고집이 다시 드러나는 것도, 아내나 나의 말로도 어느 정도 정돈이 되던 게 다시 말로는 안 되는 것도. 시윤이를 안고 아예 교회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귀에다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시윤아. 계속 울고 떼쓰면 아무도 시윤이 말을 들어주지 못해. 원하는 게 있으면 악쓰지 말고 예쁘게 말해"


한두 번 말해가지고는 당연히 똑같다. 반복해서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중간중간 계속 이러면 더 안 좋은 상황이 닥칠 거라는 걸 상기시켰다.


"시윤아. 말하고 싶으면 소리 지르지 말고 울음 그치고 또박또박 공손하게 얘기하세요. 아빠가 이렇게 얘기하는데도 계속 똑같으면 그때는 아빠랑 차에 가는 거야. 다시 식당에 못 들어가. 차에서 엄마랑 누나랑 이모 밥 다 먹고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지금 아빠 말을 들어야 다시 저기 들어가는 거야"


시윤이는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조용해졌다. 약속대로 시윤이의 얘기와 요구를 (알고 있었지만) 듣고, 나의 생각도 전했다. 식당에 들어가면 엄마 옆이 아닌 자리에 앉을 것을 약속하고 다시 들어갔다. 막상 앉으라고 했더니 다시 울음을 쏟아내며 거부했다. 다시 시윤이를 안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시윤아. 여기는 여러 사람이 있는 곳이야. 계속 이렇게 시끄럽게 울면 여기 있을 수 없어. 다시 밖으로 나가야 돼. 그때는 다시 못 돌아와"


역시나 바로 바뀌지는 않았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얘기한 뒤에야 좀 조용해졌다. 오래 걸려도 울음과 떼로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알려야 한다. 조용히, 또박또박 얘기해야 자기 얘기를 귀담아듣는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 나도 이걸 좀 더 빨리 깨달았다면 덜 소리 지르고, 덜 싸웠을 거다. 누구하고든.


엄마에게 가서 한 번 안아달라고 한 다음에 자기 자리에 앉겠다고 했다. 그러도록 했다. 사실 중간에 소윤이가 (소윤이가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기 앉혀서 상황을 무마하는 건 그냥 순간의 모면일 뿐이니까. 일단 시윤이가 약속대로 자기 자리에 앉은 다음 누나가 양보하는 자리에 다시 옮겨 앉았다. 소윤이에게는 어른 셋이 엄지손가락을 세워들며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소윤아. 진짜 대단하다. 고마워"


글쎄 뭐 칭찬도 함부로 안 된다는 말이 하도 많아서 이제는 칭찬도 가려서 해야 하는 시대지만, 이때는 진짜 기특했다. 더 격렬하게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참 뿌듯했다.


(이런 면에서 일기의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부모인 나와 아내의 육아 기록이기도 하지만 소윤이가 동생을 위해 언제부터, 얼마나 참고 희생했는지.)


예배를 마치고 교회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 다 함께 갔다. 거기서 아내 친구는 가게에 가고 우리 가족은 헤어졌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다시 교회에 가야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여보. 내가 얘네를 데리고 라이브러리에 가는 게 가능할까?"


아내는 핵심 단어를 소윤이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암호화 시켜서 물었다.


"글쎄. 힘들긴 하겠지"


여러 다른 방안을 고민했지만 마땅치 않았다. 아내는 불출마 선언을 하는 (혹은 험지에 자진 출마하는) 국회의원처럼 결의를 다졌다.


"여보. 도서관으로 갈게. 끝나고 연락해"


목장 모임을 마치고 교회 옆 도서관에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어린이 열람실에 앉아 책을 잔뜩 쌓아 놓고 보는 중이었다.


"여보. 괜찮았어?"

"어. 괜찮았어"

"애들이 말 잘 들었어?"

"어. 둘 다 좋았어"


표현을 위한 표현이 아니었다. 아내의 억양과 분위기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표정과 몸짓도 가벼웠고. 부재에서 존재로 진입하는 순간에는 늘 구성원의 표정과 감정을 (빠른 시간 안에)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구입하려던 그림책 목록에 있는 도서를 아내가 대부분 살폈다고 했다. 그중에서 괜찮은 것 14권을 대여했다. (한 도서관에서 1인당 7권을 대여할 수 있었다. 아내와 나, 둘이 합쳐 14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그림책 몇 권을 읽었는데 엄청 감동적이라면서 찬사를 쏟아냈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양말부터 바람막이까지. 하나하나 축구에 맞는 복장을 입으면서 생각했다.


'스파이더맨처럼 한 바퀴 휙 돌고 바뀌면 좋을 텐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새로 생긴 캐리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내의 목장 집사님이 호비 캐리어를 하나 주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 점유하겠다며 소소한 분쟁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절충 없는 분쟁은 공멸이라는 걸 다시 한번 주지시키고 난 탈출했다.


축구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일 일기에서 이 구절은 반드시 등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보. 끝났어?"

"어. 여보는 뭐해?"

"아, 오빠네가 와서 같이 저녁 먹었어"

"아, 그래?"

"어. 반찬을 가지고 와서 같이 먹었어. 여보도 와서 육개장이랑 잡채 먹어"

"그래, 알았어. 애들은 괜찮았어?"

"응. 괜찮았어"

"그래?"

"응. 지나고 나면 다 괜찮지"


아내의 말에 뼈가 있었다. 그리고 이적이 부른 노래가 떠올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아내에게는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의미 따위 찾을 시간에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나 빼고 나머지는 모두 저녁 식사를 마친 뒤였다. 나도 얼른 씻고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평소에 비해 흥분지수가 높은 상태였다. 삼촌과 숙모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영역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가족'의 방문이니 그럴만했다.


"여보. 내가 오빠랑 예지 데려다줄게. 여보가 애들 재워. 괜찮겠어?"

"어, 괜찮지"

"소윤이랑 시윤이는 괜찮을까?"

"안 괜찮겠지"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아내와 대화를 나눴다. 너무 일찍 공지하면 남은 시간을 우울감에 시달리느라 누리지 못할지도 모르니 얼마 안 남았을 때 알리기로 했다.


삼촌과 외숙모가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은근슬쩍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알렸다.


"오늘은 아빠랑 잘 거야. 엄마는 숙모랑 삼촌 데려다주러 가실 거야"


소윤이와 시윤이의 표정이 굳었다. 소윤이는 이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시윤이는 점점 굳어졌다. 급기야는 입을 삐죽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아앙. 엄마양 자고지픈데에에에에에에. 으아아아아아앙"


소윤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윤이는 괜찮냐는 숙모의 물음에 천연덕스럽게 '참고 있는 건데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아내와 나는 알고 있다. 소윤이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는걸. 경험으로, 또 심정으로 알게 됐다. 소윤이 (혹은 첫째)의 '아무렇지 않음'이 언제나 순결한 건 아니라는걸. 가끔 (어쩌면 자주) 거기에는 '의지', '의무'라는 조미료가 들어가 인공의 맛을 낸다는걸. 매 순간 알아줘야 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한 번씩 짚어줘야 한다.


삼촌과 숙모의 부재는 우선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중요한 건 아내의 거취였다. 시윤이는 아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매달렸다.


"엄마아아아악. 가지 마여어어어어억"


시윤이의 격해지는 감정을 바라보던 소윤이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으아아아아아앙"


아닌 밤중의 울음 듀엣. 아내와 삼촌, 숙모는 떠나가고 우리는 남았다. 소윤이는 본인의 감정을 정리할 틈도 없이 시윤이를 진정시켰다.


"시윤아. 그러지 마. 소리 지르지 마. 그러면 우리 내일도 엄마랑 못 자. 시윤아 그만해"


시윤이의 울음은 어느새 슬픔은 사라지고 독기가 서렸다. 진정시켜도 진정되지 않는, 그럴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주듯 고성통곡이 이어졌다. 원래 감정이라는 게 그렇다. 나도 애들을 대할 때 그런 실수를 자주 한다. 시작할 때는 분명히 그 정도까지 달아오를 게 아니었는데 너무 뜨거워지거나, 심지어는 갑자기 상관없는 감정을 연료로 가지고 와서 태우기도 한다.


시윤이가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자기 욕망을 드러낸다면 소윤이는 손에 묻은 기름처럼 보여준다.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엄청 끈질기게 들러붙는달까. 아무튼 슬픈 마무리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시윤이는 (거짓말을 하나도 안 보태고) 머리를 대자마자 잤고, 소윤이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쌔근쌔근 숨을 쉬다가 한 번씩 셋 잇단음표 박자의 숨소리가 들렸다.


자면서 다 털어내라. 내일은 더 많이 안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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