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인 듯 일상 아닌

20.01.14(화)

by 어깨아빠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사실 늘 비슷한 시간에 한 번씩 깨기는 하지만 다시 자는 거다. 오늘은 다시 자지 않고 일어났다. 원래 오후인 미술 수업을 오전으로 당겼는데 수업에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그림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애들이랑 있으면 그림 그릴 틈이 없으니 그걸 만드는 거다. 수업이 오후일 때는 주로 오전에 도서관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혹시라도 누가 깨서 나를 방해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장 작은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스케치북을 펴고 색연필을 들고. 열심히 색칠을 하며 생각했다.


'평소에도 이때 일어나야 많은 걸 할 텐데'


1시간 30분쯤 지나니 아이들이 깨서 나왔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아빠가 거실에도 없으니 의아해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빠? 어딨어여?"

"아빠아? 아빠아? 누나. 아빠 업떠어"


잠시 후 스으윽 작은방 문이 열리고 차례로 선 두 녀석이 나랑 눈을 마주치더니 웃음을 지었다.


"아빠"

"아빠아"


아내는 여전히 자는 중이었다. 아이들에게 잠시 방해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그림을 마저 그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전에 아내 친구 집(정확히는 아내 친구의 친정집. 아내 친구는 출산 후 친정에서 조리 중이었다)에 가기로 했다. 거기가 금촌이라 동선을 맞추기 위해 수업을 오전으로 변경한 거다.


애들이 잠에서 깨자마자 스케치북을 덮고 준비를 시작했거나, 적어도 아내가 일어났을 때라도 부지런을 떨었으면 늦지 않았을 텐데 그림에 심취해 본분을 망각했더니 시간에 쫓겼다. 밥 빨리 먹어라, 옷 빨리 벗어라, 옷 빨리 입어라, 신발 빨리 신어라, 차 빨리 타라, 벨트 빨리해라. 사실 애들은 아직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결국 내가 늦장 피워서 그런 건데. 애들을 채근하면서도 뭔가 마음에 걸렸다.


난 미술 수업 장소에서 내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차를 가지고 갔다. 아내 친구가 바운서를 준다고 해서 그걸 받아와야 했다. 끝날 시간에 맞춰서 아내와 아이들이 다시 오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기 15분 전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우리는 곧 출발할게용]


수업이 끝나고 전화했더니 아내는 이제 막 출발을 할 거라고 했다.


'뭐지. 아까 출발한다고 했는데?'


거기서 내가 있는 곳까지 20분이 걸린다고 했다.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아내는 카페 [오늘]에 들러 커피를 살까 했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커피도 사라고 했다. 날씨가 꽤 추웠다. 내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보온 기능이 좋은 두터운 점퍼를 입었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5분 안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근처 건물에 들어갔다. 거기도 추웠다. 추웠지만 바깥보다는 따뜻했다. 수업이 끝나고 50분 동안 아내를 기다렸다. 내내 서서 기다렸는데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추위가 다리의 고통보다 컸다.


아내 친구의 어머니(이자 아내와는 어려서부터 아시던 어른)께서 우리 식구의 점심(김밥)도 사주셨다고 했다. 집에 가서 다 함께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아내와 나는 라면도 두 개 끓였다. 한 끼를 쳐내는 게 큰일인 아내와 나에게 끼니 해결자는 큰 귀인이 아닐 수 없다. 특별히 더 감사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오셨다. 전해줄 게 있어서 오시는 길에 간단한 저녁거리도 사 오셨다. (간단하지 않았지만.) 우리 식구는 점심이 늦은 탓에 그리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지만 막상 판이 깔리니 다들 제법 잘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먹는 것도 먹는 건데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분이 고조됐다. 더군다나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말과 행동에서 흥분이 느껴졌다.


나의 (친)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 살아계신다.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함께 살았던 적이 없었고 나의 기억이 남아있는 시점 이후로는 특별히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각별한 정이나 추억은 없다. 아마 시대를 고려하면 워낙 가난하고 먹고살기 바쁜 때였으니 손주에게 지금처럼(나의 엄마, 아빠나 아내의 엄마, 아빠처럼) 지극정성을 쏟기도 힘들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는 걸 좋아했고 거기서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자고 오기를 바랐던 걸 보면 분명히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주 사랑이 없지는 않았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면 나의 망각일 뿐, 나도 그들과 같은 시기를 거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라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이 일기를 읽을 즘에 할머니, 할아버지 중 누구라도 안 계시고 두 녀석의 기억도 희미해졌을까 봐 남겨 놓는다. 다른 건 몰라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강지훈) 주변의 그 어떤 아이들에 비교해도 부족함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원 없이 받고 자랐다. (너네 보라고 적어 놓는 거다. 이 녀석들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고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아까 해나 이모 엄마 집에 갔다 오기는 했는데 그게 너무 일찍이었고 잠깐이라 꼭 오늘 아무 데도 안 나간 거 같아여"


소윤이가 뭘 말하는지(느끼는지) 느껴졌다.


"맞아. 그럴 수도 있겠다. 아빠도 그래. 그래도 오늘 파주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집에 왔다 가셨잖아. 원래 그럴 계획 없었는데"

"맞아여. 저도 그냥 그렇다고 얘기한 거에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미리 씻겨 놓은 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물론 양치는 해야 했고, 시간을 계산해 보면 막상 큰 차이는 없었지만(샤워를 시키는 게 아니면 사실 비슷하다. 특히 그 주관이 나인 경우에는 더더욱 대충이기 때문에 차이가 덜하다.) 심리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씻겼다]와 [씻겨야 한다]는 뇌에서 인지하는 게 달랐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도 바닥에 드러누워 이렇게 읊조렸다.


"하아. 그냥 너네가 알아서 좀 양치도 하고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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