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아빠

20.06.19(금)

by 어깨아빠

모두 곤히 자고 있었다. 나도 밤사이 깨지 않았고.


'뭐지. 오늘은 서윤이가 아예 안 깬 건가'


라고 생각하며 일어났는데 발에 뭔가가 채였다. 둥그렇게 말린 서윤이의 기저귀였다. 적어도 한 번은 깼다는 걸 말해주는 증거였다. 서윤이는 4시 30분쯤 깼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 키우면서 고맙고 감사한 게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100일 전에 다들 잘 잔 건 정말 고맙다. 얘들아, 셋 다 100일 되기 전에 길게 자 줘서 정말 고맙다. 대신 낮잠을 빨리 잃었지만, 그래도 차라리 그게 나은 거 같아.


아침에 아내랑 통화하는데 끼어드는 시윤이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역시 자고 일어났을 때가 최고다. 반대로 자기 직전이 최저일 때도 많기는 하지만.


낮에는 장모님이 오셨다고 했다. 아내가 잠깐 방에 들어가서 통화를 하느라 서윤이를 장모님께 넘겼는데, 소윤이는 그걸 가지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자기랑 잘 놀던 할머니가 서윤이를 안게 되어서 놀이가 중단된 게 싫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할머니만큼은 사랑을 나눠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인 걸까. 아무튼 아내와 나는 어떤 마음이던 소윤이의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그 태도가 조금 더 다듬어졌으면 좋겠다. 조금 더 예의 바르고, 공손하고.


소윤이는 아내가 통화하고 있는 방에 들어와서 시윤이를 찾았다. 같이 역할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무단(?)으로 이탈한 시윤이를 데리러 온 거다. 이때도 역시 거칠었다. 마치 죄지은 범인을 연행하러 온 형사처럼 위압을 가했다. 마찬가지로 조금 더 다정하고 친절했으면 좋겠다. 말이 역할극이지 연출과 감독, 진행 모두 자기가 짠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도 좀 자유로웠으면 좋겠고.


퇴근하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나 미치겠어. 정말 어떻게 해"


아내는 울먹였다. 슬픔이 아닌 분노와 화가 느껴졌다.


"왜?"

"시윤이 진짜 왜 저래. 하아 진짜 돌아버리겠어. 내가 그대로 있으면 폭발할 거 같아서 화장실로 도망쳤어"

"왜? 또 똥 쌌어?"

"똥 쌌으면 내가 이러겠어"

"그러면 왜?"

"아니 별것도 아니야. 아까 집에 들어오면서 주차를 하는데 자기가 말한 데다가 하라는 거야. 그래서 안 된다고 하고 다른 곳에다 했더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울고, 소리 지르고 난리야. 나 진짜 미칠 거 같아. 여보. 어떻게 해야 돼?"


그러게.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답이 없었다. 시윤이는 그때도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단 내가 금방 가니까 그때까지는 그냥 두라고 했다. 아내도 감정이 끝까지 차서 더 상대해 봐야 좋을 게 없어 보였다.


"여보. 나 금방 가니까 일단 시윤이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둬"


집으로 가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했다. 분명한 건 시윤이는 아빠(나)가 없으면 훨씬 통제 불능이 된다는 거다. 엄마보다 아빠를 훨씬 무서워하는 게 있다. 다시 말하면 엄마하고 있을 때는 엄마의 말이 훨씬 안 먹힌다는 거다. 그럼 아내가 힘들다. 노선을 정했다.


집에 들어가니 시윤이는 여전히 아내 다리를 붙잡고 떼를 쓰며 울고 있었다. 손만 씻고 바로 시윤이를 방으로 불렀다. 여기서부터 차이가 난다. 시윤이는 울면서도 방으로 들어왔다. 아내하고는 이것부터 안 한다.


시윤이와 진한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 시윤이에게 심어준 핵심 내용은 이거였다.


아빠 없을 때 엄마 말 안 들으면 아빠한테 더 많이, 무섭게 혼난다. 앞으로는 엄마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아빠한테 혼난다. 엄마 말씀을 아빠 말씀보다 더 잘 들어라. 다음에도 또 아빠 없을 때 엄마한테 그런 식으로 하면 오늘보다 더 따끔하게 혼난다.


얼마나 심겼을지는 모르지만. 아빠를 무서워할 때는 무서워해야 한다. 다정해야 할 때는 심장과 쓸개까지 내놓을 정도의 다정함이 있어야 하고. 즐거워야 할 때는 체면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즐거워야 하고. 애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사랑의 큰 줄기를 느끼는 아이들은 절대로 불안해하지 않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내와 나의 훈육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닌지 늘 고민하고 신경 쓰기는 한다. 오히려 그래서 그 스트레스에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한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거고.


퇴근하자마자 집안 꼴은 개판이고 애들은 울고 있고 아내는 조선시대 망나니 머리를 해 가지고는 예민의 끝판왕이 되어 신경질을 내고 있다면, 아빠들이여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시라. 악인이 되는 게 아니라 악역일 뿐이다. 아내의 대변인 혹은 가정의 판사가 되어 엄마의 권위를 세워주면 아마 나아질걸요? 제발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퇴근하고 왔는데 이러면 내가 어떻겠냐고 이딴 말들은 좀 집어치우시고.


애들은 생각보다 아빠를 좋아한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시라.


네, 이상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사실 나도 아까 열심히 찬양 부르며 오고 있었는데 아내의 그 전화를 받고 나서는 숨이 턱 막혔....)


내가 교회에 가기 전에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겼다. 서윤이는 내가 안고 있었다. 고막을 울리는 강렬한 울음소리를 내뱉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눈을 꿈뻑거렸다. 그렇게 눈을 감고 나서는 내가 막 볼을 부비고 입술로 여기저기 깨물어도 깨지 않았다. 자는 서윤이에게 소윤이와 시윤이의 눈을 피해 스킨십을 마구 퍼부었다.


씻고 나온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시윤아. 엄마 말씀 잘 듣고 조금 슬퍼도 잘 자. 알았지?"

"네, 아빠아"

"뽀뽀"


시윤이는 입술을 쭉 내밀고 다가왔다.


"소윤아. 안녕. 아빠 갈게. 잘 자고"


소윤이는 자기가 먼저 입술을 내밀었고.


역시. 애들은 날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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