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목)
오전 내내 아내에게 연락이 없었다. 사실 아내는 늘 여유가 없다. 언제나. 그래도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전화를 하는 편인데 오늘은 그것도 없었다. 그 정도의 여유도 없었거나 아니면 단순히 까먹었거나. 여유가 없는 것도 두 갈래로 나눠진다. 바쁘고 정신없지만 마음만큼은 풍성한 상태, 바쁘고 정신도 없는데 마음마저 가난한 상태.
점심시간 직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다행히 아내의 상태는 전자인 듯했다. 목소리가 그래 보였다. 오전 내내 서윤이를 안고 있었다고 했다. '오전 내내'라는 게 참 추상적이네. 아내는 서윤이를 안고 밥도 차리고, 밥도 먹이고, 밥도 먹고, 설거지도 하고. 옛 어른들이 왜 그렇게 포대기를 해서 애를 등에 업었는지 깨닫는다.
오후의 한복판쯤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집 근처(지만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카페였다. 동행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잉. 여보 혼자?]
[응]
[비록 앉지는 못하고 있지만]
[여보 정말 대단하다]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놀랍다. 아내와 나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불나방 성향이랄까. 그나마 서윤이가 유모차에서 오래 자서 좀 괜찮았다고 했다. 서윤이가 잔다고 한들 아내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이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세계에 동참해야 한다. 의무적으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카페 밖 야외에 나가서 아내랑 신나게 놀았다고 했다. 굳이 아내에게 듣지 않았어도 사진 속의 소윤이와 시윤이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더니 오후의 끝자락에 또 한 장의 사진을 보냈다. 이번에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욕조에 들어가 있었다. 그냥 손과 발, 얼굴만 씻기는 것과 목욕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아내는 그 수고를 또 자처한 거다.
[엄청나다. 여보]
[아직 남은 일이 많다는 게 문제야. 그래도 머리까지 감고 들어갔으니. 서윤이 깨면 목욕 시키는 거까지 목표]
퇴근하고 치과에 들러서 치료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치과지"
"아, 오늘 치과 가는 날이었나? 하아"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치과 가는 거 깜빡하고 밥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지"
"아, 그래? 애들 먼저 먹여야 되나?"
"하아. 그러게"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을 거의 다 먹은 상태였다.
"아빠. 우리 목욕했다여"
"진짜? 엄청 재밌었겠네. 물총도 했겠네"
"어떻게 알았어여?"
"음, 그냥 목욕하면 당연히 물총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
"아빠. 서윤이도 목욕했다여"
"아, 진짜?"
역시. 아내는 다 이루었다. 아내의 하루를 다시 되짚어 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수유하고 애들 아침 차려서 먹이고 (이때부터 서윤이는 아기띠로 안고 있었다) 소윤이, 시윤이랑 공부도 하고 좀 같이 놀다가 여전히 우는 서윤이 달래는 건 동시에 하고 어느새 또 점심 차려서 먹이고 본인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셋 데리고 밖에 나가서 카페에 갔다가 장도 보고 집에 오자마자 애들 목욕시키고 심지어 서윤이까지 목욕시켜주고 온 가족의 저녁상도 다 차리고.
아내의 그 위대한 하루가 꼴랑 다섯 줄 문자로 대체되다니. 내가 다 억울하군.
서윤이는 혼자 누워서 모빌을 잘 보고 있었다. 아내는 자기가 애들 씻길 테니 서윤이랑 시간 좀 보내라고 했다. 누워서 나름대로 잘 놀던 서윤이는 나를 보더니 입을 삐죽거렸다. 조금 이따가 안아줬더니 더 크게 울었다.
"여보. 설마 벌써 낯가리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다행히(?) 아내가 데리고 가서 안아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아내가 안았는데 바로 울음을 그쳤으면 좀 서운할 뻔했다. 그동안 서윤이 뒤통수에 내준 팔뚝이 얼만데. 서윤이는 정말 세차게 계속 울었다.
방에 들어가서 마지막 수유를 한 뒤에도 최근의 행보와는 다르게 많이 울었다. 그래도 결국에는 반자율 수면에 성공했다. 최첨단 시대에 반자율 정도는 해줘야지.
애들을 모두 재우고 나와서 아내랑 오붓하게 식사를 했다. 아내는 매우 지쳐 보였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점점 자기 모습을 되찾았다. 육아 퇴근 근처에 도달했을 때는 바닥났던 체력이 육아 퇴근 후 육아와 점점 멀어질수록 다시 회복되는 현상이다. 나에게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여보. 오늘 고생 많았어. 진짜 대단하다"
아내에게 건네는 인사가 매일 진심이지만, 오늘은 더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