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의 마법

20.07.18(토)

by 어깨아빠

서윤이의 웃음을 보기 위해서 일찍 일어났다. 서윤이는 아기 침대에 누워 곧 웃을 듯한 표정으로 혼자 천장을 보고 있었다. 아내의 말이 진짜인가 실험해 보려고, 침대에 매달려 얼굴을 보여줬다.


"서윤아"


진짜 생긋생긋, 마치 알아보는 것처럼 웃음을 지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서윤이를 안고 바닥에, 내 옆에 눕혔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깼고. 아내는 아직 자는 중이었지만 거실로 나가지는 않았다. 오전에 일이 있어서 어차피 늦잠을 자는 건 어려웠다.


서윤이랑 원 없이 놀았다. 잠깐 기분 좋아서 웃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 그랬다. 집에서 나갈 때까지, 거의 2-3시간을 울지도 않고 있었다. 서윤아, 너 이런 아기였구나. 서윤이한테 다정해질수록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잘 하게 된다.


'아빠가 서윤이한테만 너그럽네'


라고 오해 아닌 오해를 하지 않게끔.


다 함께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나는 파마를 하고, 시윤이는 자르고, 아내도 조금 자르고. 소윤이는 구경하고. 서윤이는 파주에 맡기기로 했다. 원래 소윤이가 자기도 파주에 남겠다고 했는데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온전히 서윤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소윤이도 우리 쪽에 동행시켰다.


아침은 옥수수와 과일, 떡으로 해결했다. 밥을 먹이려면 밥을 해야 했는데 너무 귀찮았다.


"여보. 옥수수랑 이런 거 먹일까?"

"그래. 이따 잘 먹을 텐데 뭐"


서윤이를 최대한 오래 떨어뜨려 놓으려면 헤어지기 직전에 수유를 하면 된다. 정확하게 수치화하기는 어렵지만 요즘은 수유와 수유 사이의 시간이 보통 3시간 정도다. 파주에서 나와 소윤이, 시윤이는 차에서 기다렸고 아내만 서윤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아내는 수유도 하고 왔다. 20분 주유 아니 수유에 3시간의 분리 가능 시간을 확보했다.


시윤이와 아내가 머리 자르는 건 엄청 금방 끝났다. 내가 제일 오래 걸렸다. 나도 파마 치고는 오래 걸린 편이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제일 길었다. 거기에 난 편하게 의자에 앉아 서비스를 받는 동안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자잘한 규칙 외 언행을 통제하느라 애를 썼다. 중간에 애들한테 주의를 주려고 밖에 나가기도 했는데, 아내의 엄한 목소리가 가게 안으로 다 들어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 누그러들긴 했어도 시간이 좀 지나자 다시 팔딱거렸다. 하긴 그 좁은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면 그게 고문이지.


"여보. 우리 먼저 갈게"

"그럴래? 알았어"


아내가 막 진을 다 뺄 정도로 힘들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편히 쉬지 못하고 계속 뭔가 신경 써야 하는 게 피곤했나 보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미용실 사장님께서 내 머리도 곧 끝난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까지 끝나고 다 함께 갔다.


서윤이는 잘 있었다고 했다. 막 도착했을 때는 장인어른에게 안겨 얼굴을 또렷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나 웃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구찜을 먹었다. 서윤이는 이번에도 수면제 아니 수유를 해서 재웠다. 고맙게도 먹는 내내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때마다 수면제 아니 수유로 고생하는 아내에게 박수를. 솔직히 모유 수유부의 남편으로서 느끼는 건, 분유 수유에 비하면 거의 날로 먹는 수준이다. 분유를 안 먹여도 되는 건 물론이고 젖병 씻을 필요도 없고. 소윤이, 시윤이 모두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에 분유 수유의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시윤이가 그나마 분유를 많이 먹었는데 분유는 모유에 비해 확실히 수면제로서의 역할이 미미하다. 모름지기 사람은 집 밥을 먹어야 마음이 편안한 건가(분유 수유하는 분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니 오해 마시길).


잠시 카페에 들렀다가 다시 파주에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목욕을 하라고 했는데 웬일인지 소윤이는 자기는 목욕을 안 하겠다며 거부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게 싫어서 그렇다고 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샤워는 해야 하고, 샤워하면 머리도 감아야 하고, 그럼 말리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머리를 감기 싫다며 고집을 피웠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좀 단호하게 말했더니 막 울먹였다. 이게 그렇게까지 울 일인가. 아무튼 그래도 목욕은 안 하겠다고 했다. 빈정이 상한 거 같기도 했고. 아니면 장모님이랑 놀고 싶어서 그런 거 같기도 했고.


시윤이는 혼자서라도 목욕을 하겠다고 했는데 밖에서 소윤이가 웃는 소리, 할머니가 웃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빠아. 왜여어어? 누나가 뭐래여어?"

"아빠아. 왜 우더떠여어?"

"할머니이. 머하고 이떠여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참견했다. 결국 평소보다 훨씬 이르게, 자기 스스로


"아빠아. 나갈래여어어"


라며 목욕 종료를 선언했다. 시윤이도 누나 귀한 줄 좀 알아야지.


그때쯤 아내와 나는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눈꺼풀과 사투 중이었다. 장인어른은 들어가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라고 하셨고, 아내와 나는 딱히 거절하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도 나도 눕자마자 잠들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만큼 달콤하고 맛있는 잠이었다. 아내는 한 30-40분, 나는 1시간 정도 잤는데 피로가 싹 풀렸다.


저녁 먹을 시간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시윤이는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시윤이야 어차피 아내나 내가 먼저 나가도 크게 개의치 않으니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점심을 워낙 든든히 먹어서 아내와 나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다 쳐도 애들은 먹여야 했다. 장모님이 싸 주신 밥에 주먹밥 가루(이거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성인 요리의 라면 수프에 필적할만한 가루다)를 넣어서 주먹밥을 만들어줬다. 그나마도 소파에 앉아서 한 알씩 입에 넣어줬다. 차려서 식탁에 앉히는 것도 귀찮았다.


역시나 시윤이는 잠들지 못했고 잘 얘기하고 먼저 나왔다. 시윤이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목이 마르다며 나왔는데 엄지손가락이 축축했다. 엄마, 아빠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손가락을 빠나 보다. 물 마시고, 오줌 싸고 다시 들어갔는데 방에서 소음이 들렸다. 시윤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어둠 속에서 혼자 노는 소리였다. 벌컥 방 문을 열었더니 화들짝 놀라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차마 엄지손가락은 빼지 못하고.


"시윤아. 얼른 자. 그러다 서윤이 깨겠다. 돌아다니지 말고. 알았지?"

"네, 아빠아"


아내와 나는 애들 재우고 수제 버거를 사 먹었다. 아내는 약간 배가 고프다고 했고, 나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는데 먹는 모습은 반대였다. 난 정말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햄버거가 왜 그렇게 술술 들어갔을까. 그렇게 36년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눈물이 또르르)


아내는 버거를 사 오면서 아몬드 크로와상도 함께 사 왔다면서, 포커 게임의 마지막 히든카드를 확인하듯 슬며시 보여줬다. 그러더니 거실에서 혼자 빵을 들고 다니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의 영광 온 땅에 가득해~♬"


며칠 전에 빵 부스러기조차 못 먹는다고 깊고 깊은 우울의 바다에 빠졌던 것과 참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빵 한 조각에서 신의 영광까지 찾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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