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8(토)
어제 아내가 시윤이 재우러 먼저 들어가고 난 뒤에도, 혼자 한참 놀다가(휴대폰 보다가) 늦게 잤다. 아내와 아이들의 소리에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평소 출근 시간에 비하면 늦은 시간이었지만, 워낙 늦게 잤기 때문에 더 자고 싶었다. 다시 눈을 감으면 2-3시간이 훌쩍 지날 것 같았고, 그럼 오전이 다 끝날 시간이었다.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그냥 그대로 일어났다.
“여보. 왜 벌써 일어나. 더 자”
“아니야, 괜찮아”
아내는 어제 먹고 남은 어묵탕에 밥을 말아서 아이들의 아침을 차려줬다. 나도 조금 먹었다.
평이한 하루였다. 서윤이는 잘 놀다가 갑자기 막 울고, 그러다 자고. 아내는 서윤이 먹이고, 재우고, 그러다 같이 잠들기도 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잘 놀다가 티격태격하고, 그러다 아빠(나)한테 혼도 나고, 다시 또 잘 놀고.
점심 먹으면서 서윤이도 앉혀 놓고 이유식을 줬다. 아, 아내는 이유식이 아니라고 했다. 고구마 퓌레라고 했나. 아무튼 엄청 잘 먹었다. 전혀 거부가 없었다. 아무리 잘 먹어도 얼굴을 비롯한 온 천지에 묻히는 건 피하기 어렵다. 그걸 핑계로 서윤이를 씻겼다. 정말 오랜만에 뜨뜻한 물을 받아서. 소윤이, 시윤이도 씻는 걸 엄청 좋아했는데, 서윤이도 똑같다. 물 받아 놓고 거기 앉혀 놓으면 손으로 물을 탁탁 치면서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자기 얼굴에 물이 막 튀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그렇지, 조금만 더 크면 나가기 싫다고 울지도 모르겠다.
오후에는 잠시 텃밭에 가야 했다. 그전까지는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바깥 날씨가 어떤지 정확히 몰랐다. 예보만 보고 ‘좀 춥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밖에 나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바람이 세고 기온이 낮았다. 바로 다시 집으로 와서 온 식구의 패딩을 챙겼다.
텃밭에서는 아주 잠깐 있었다. 처치홈스쿨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곳이라 원래도 일이 그렇게 많지 않고, 더군다나 오늘은 수확하는 날이었다. 심어 놓은 무와 배추를 뽑았다. 어느 농사 전문가가 우리 밭의 배추를 보시더니 김치도 못 담그고 쌈으로도 못 먹는, 그저 말려서 시래기로 만드는 게 제일인 정도라고 하셨다. 무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배추든 무든 뽑는 즐거움이 있었다. 경작의 과정에도 조금 더 열심히 참여했으면, 훨씬 보람이 컸을 것 같다.
그냥 집으로 오기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갈 곳도 없었다. 카페는 코로나 때문에 체류가 불가능하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밖에 있기도 어려웠다. 아내는 드라이브를 겸해 조금 멀리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자고 했다. 차로 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코로나 때문에 진퇴양난인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아쉽지만 드라이브로 만족하자고 했다. 대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조금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카페에 가면 핫초코를 사주기로 했다. 생각보다 차가 많이 막혀서 조금 힘든 이동이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다. 시윤이는 잤고.
아내는 차에서 서윤이에게 젖을 먹였고, 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커피를 사러 갔다.
“소윤아, 시윤아. 핫초코 맛있겠다. 그치? 빵도 하나 먹을래? 뭐 먹고 싶어? 골라 봐”
소윤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커스타드 크림빵을 골랐다. 빵의 구조(?)상, 먹고 나면 크림이 잔뜩 묻고 먹는 동안에도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질 게 뻔했지만, 샀다. 크기가 커서 하나만 사도 나눠 먹기 좋아 보였다.
다시 차로 돌아가니 아내는 막 수유를 마친 뒤였다. 차 옆에 서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빵을 먹였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밖에서 먹이길 잘했다. 핫초코는 차에 앉아서 먹였다.
“아빠아. 핫쪼꼬가 왜 이케 또금이에여어?”
“조금이었나?”
“네에”
“그래? 그게 양이 원래 그 정도인가 봐. 그래도 맛있었지?”
“네에. 엄통 마디떠떠여어”
집에 가는 길도 엄청 막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조금 힘들어할 무렵, 다 함께 스무고개 놀이를 했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마지막 고비(생각보다 긴 탑승 시간이 주는 힘듦)를 잘 넘겼다.
이번 주부터 토요일 낮이나 밤에 가정 예배를 드려 보기로 했다. 저녁 먹고 둘러앉아서 찬양도 하고 기도도 했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의 태도에 여러 번 이를 꽉 물고 눈을 질끈 감을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주말 저녁에 온 가족이 TV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고,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배를 드리고 난 뒤에는 오늘의 가장 중요하고, 어쩌면 올해 서윤이의 탄생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소윤이의 앞니 빼기. 얼마 전부터 흔들린 소윤이의 앞니는, 이번 주 들어 하루가 다르게 많이 흔들렸다. 경험이 없어서 어느 정도 흔들리면 빼도 되는지 몰랐지만, 오늘 빼도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흔들리는 정도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실과 손수건을 준비했다. 소윤이를 앉혀 놓고, 흔들리는 이에 실을 묶었다. 소윤이한테는 하나도 안 아프고 별거 아니라고 큰소리 떵떵 쳤는데, 정작 내가 무서웠다. ‘혹시 한 번에 안 되고 실패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떨리는 마음에 과감히 진행하지 못하고, 실을 묶고 나서도 한참 뜸을 들였다. 덕분에 소윤이의 마음도 더 조마조마 해졌고.
“아빠아. 무서워여어”
소윤이를 위해서라도 빠른 진행이 필요했다.
“알았어. 자, 얼른 끝내자. 알았지?”
“아빠아아. 으아아아”
“괜찮다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한 손으로 이에 묶은 실을 붙잡고, 소윤이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머지 한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소윤이 얼굴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과 두려움 가득한 표정이 뒤섞였다.
이는 무사히 빠졌다. 피도 거의 안 났고. 다행히 울지도 않았다. 소윤이 말고 나. 기분이 묘하긴 했다. 소윤이가 처음 이 났을 때도 아직 생생했다. 찾아보니 처음 났던 그 이가 빠진 거였다. 빠진 이를 조그마한 지퍼백에 담았다.
“아빠. 그거 왜 거기다 넣어여?”
“그래도 소윤이 처음 빠진 이빨이니까”
벌써 이가 빠지다니. 첫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으면 그렇게들 운다는데.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난 입학 통지서가 다 젖어서 흐물해질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참 빠르다. 아이들도 순식간에 크고. 그 가속의 시간 안에서도 아이들과 뭔가 쌓고,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또 참 감사하고.
소윤아. 처음으로 너의 이가 빠진 날이다. 서윤이는 첫 이가 나고 있고. 그래도 아빠가 울지 않아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