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토)
어제 빵의 비밀은 배달이었다. 아내는 빵을 배달시켰다고 했다. 생각도 못 한 경로였다. 빵 배달이라니. 내가 이런 최첨단의 신인류와 살고 있다.
차를 찾으러 가야 했다. 차를 찾고 별일이 없으면 나 혼자 갔겠지만, 차를 찾고 나서는 머리를 하러 가야 했다. 온 가족이 함께. 오전에 정비를 다 마쳤으니 편한 시간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미용실 예약 시간에 맞춰, 점심 먹고 나서 집에서 출발했다.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갔다. 정말 다행히도 서윤이가 기분이 괜찮았다. 내가 서윤이를 안고 뒷자리에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앉았는데 한 20여 분 가는 동안 한 번도 안 울었다. 어제는 많이 울었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기사님도 무척 친절하셨다. 첫 손주가 아직 100일도 안 되었다고 하시면서, 특히 서윤이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셨다. 아내가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아내와 대화를 많이 하셨다.
“아이구, 첫째가 딸이고 가운데는 아들이고, 막내도 아들이네”
“아, 딸이에요”
“아, 그래요? 아, 첫째가 딸, 가운데가 아들, 막내도 딸이구나. 300점짜리네”
서윤이는 위, 아래로 분홍색 플리스를 입고 머리에는 커다란 머리띠를 했다. 여자 아기인 걸 티 내려는 의도가 다분한 조합이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역시, 성별은 머리빨.
정비소에 도착해 차를 옮겨 타고 다시 출발했다. 아내와 소윤이가 파마를 하고 싶어 했다. 나와 시윤이는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해야 했고. 난 파마를 하는 게 오히려 가성비가 좋아서 나도 파마를 할 생각이었다. 시윤이만 (파마가 아니라) 자르려고 했는데, 시윤이가 서운해했다. 자기만 파마를 하지 못한다고. 시윤이도 해 주기로 했다.
다만 전제 조건은 있었다. 서윤이가 협조해야 했다. 이 모든 건 서윤이를 계산에 넣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예약을 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게 전개되면 아내와 소윤이만 파마를 하고, 나랑 시윤이는 자르기만 하려고 했다.
일단 아내와 소윤이가 앉았다. 다행히 서윤이는 양호했다. 아니, 양호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조용했다. 다행히 엄마를 찾지도 않았고. 파마는 장기전이니, 방심하긴 일렀다. 아내와 소윤이가 머리를 말고 기다리는 동안 나와 시윤이도 시작했다. 일단 시윤이부터. 시윤이는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지쳤는지 갑자기 파마를 안 하겠다고 했다.
“진짜야? 진짜 안 해? 우리 다 하는데? 나중에 후회 안 하겠어?”
바로 다시 마음을 바꿨다. 시윤이도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난 뒤 나도 앉았다. 서윤이는 아내에게 넘겼다. 아내는 서윤이를 안고 차에 가서 수유를 했다. 덕분에 시간(서윤이가 기분 좋은 시간)을 많이 벌었다. 오히려 소윤이가 오랜 기다림을 힘들어했다. 시윤이는 머리를 만 채 잠들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아주 깊게 잠들었다.
소윤이가 가장 먼저 끝났고, 그다음 시윤이, 그다음이 나였다. 고맙게도 서윤이는 그때까지 거의 울지 않았다. 중간에 수유를 한 게 결정적인 한 수였다. 내가 마무리를 할 무렵 서윤이가 거세게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직 할 게 남아서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미 아내의 품에서도 그렇게 우는데 내가 안는다고 나아질 리가 없었다. 그동안의 경험상. 그래도 아내는 남은 걸 마무리해야 하니 내가 안았다. 아기띠로 안았다. 놀랍게도 아내 품에서는 울던 녀석이 조용해졌다. 조금 울기는 했지만 밖에 나가면 괜찮았다. 아마 일하시는 선생님들이 말 시켜서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아내도 무사히 마쳤다.
“여보. 대단하다 우리. 서윤이를 데리고 이게 되네”
“그러게. 진짜 대단하다”
하고 나니 무슨 용기로 이렇게 했나 싶었다. 역시 애를 낳는 것도 그렇고 키우는 것도 그렇고 계산이 없으면 용감해진다.
저녁에는 파주(처가)에 갔다. 김장을 하셨다고 했다. 형님(아내 오빠)네 부부도 와서 도왔다고 했고. 이미 김장이 끝나기도 했고 (끝나기 전에 갔어도 크게 도움은 안 되었겠지만) 식사도 하셨다고 해서 딱히 갈 이유는 없었지만 갔다. 그냥 근처에 간 김에, 애들이 가고 싶어 하니까. 장인어른, 장모님, 형님네 부부는 밖에서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가는 길에 김밥 네 줄을 샀다.
온 식구가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김밥 네 줄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배를 채우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미용실에서 힘들긴 했나 보다. 서윤이가 협조를 잘해줬지만, 서윤이와 함께 몇 시간을 보낸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긴 했다. 그 몇 시간 동안 누군가는 서윤이를 안고 있었으니까.
저녁에 온라인 모임도 있었는데 그것도 파주에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신나게 놀았고 서윤이는 아내가 데리고 있었다. 아내도 나도 엄청 피곤했다. 특히 아내는 온라인 모임이라 화면이 뜨는 데도 거의 잠들기 직전까지 갔다. 눈이 새빨갛게 충혈됐다. 서윤이는 아내 품에 안겨 화면을 보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온라인 모임도 다 마치고 다시 거실로 나와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자, 이제 조금만 더 놀고 가자”
당연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밖에 못 놀았다’, ‘10분은 너무 짧다’라며 항변했다. 진짜 늦기도 했지만, 아내와 나에게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자주 가는 카페가 문을 닫기 전에 커피를 사서 집에 가고 싶었다. 아내는 한 잔도 못 마셨고, 난 아침에 드립 커피 한 잔 마신 게 전부였다. 난 요즘 밤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하루에 네댓 잔도 마시던 사람이 한 잔 먹고 끝이었으니 커피 욕구가 샘솟았다. 밤이었지만, 주말이니까. 한 잔도 못 마신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예 씻겼다. 집에 가서 바로 잘 수 있도록. 소윤이, 시윤이의 밍기적거림을 헤치며 겨우 차에 탔다.
“여보. 아직 늦지 않았어”
카페 마감 시간 10분 전이었다. 늦었다. 10분 전이었지만 이미 마감이 진행 중이었다.
“으, 강소윤이 밍기적거리지만 않았어도”
안타깝게도 아내와 나는 커피 사수에 실패했다. 뭐, 질 좋은 수면을 하라는 소윤이의 깊은 뜻이겠지.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모두 잠들었다. 아내도 잠들었다. 아내는 안고 갈 수 없으니 깨웠다. 세 녀석을 어떻게 옮겨야 할 지도 고민이었다. 어떻게 조합하든 둘을 한꺼번에 안는 건 힘들었다. 일단 내가 시윤이를 안고 올라와서 눕혔다. 다행히 시윤이는 깨지 않았고, 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서윤이와 짐, 난 소윤이를 안았다. 소윤이는 잠에서 살짝 깼지만 그대로 안고 갔다. 소윤이도 왠지 확 깨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소윤이를 안고 집까지 올라온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절로 숨이 가빠졌다. 소윤이를 방에 눕혔는데, 소윤이가 눈을 뜨며 말했다.
“아빠. 물 좀 주세여”
“아니야. 오늘은 그냥 자. 깨지 말고 바로 다시 자”
소윤이를 힘들게 안고 온 게 아깝고 억울해서, 그대로 재웠다. 오줌이 마렵다고 했으면 모를까, 물이 마시고 싶은 건 필수 해소 욕구가 아니었다. 소윤아, 미안해. 물 한 잔 아무것도 아닌데, 아빠가 너무 아까워서 그랬어. 널 안고 10층을 오른 게. 물론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렸지만.
아내와 나는 엄청 피곤했지만, 그대로 자지는 않았다. 어제도 주말답게 못 보냈으니까. 그렇다고 뭐 특별하게 뭘 한 건 아니었다. 그냥 깨어 있는 게 특별한 일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아내와 나도 자려고 방에 들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뽀글뽀글해진 머리로 엄청 곤히 자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여느 때처럼 남들하고 있을 때는 티 내지 않는, 자기 자식 사랑(혹은 자랑)을 마음껏 나누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