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7(목)
서윤이는 어제랑 다르게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런 날은 위치부터 다르다. 아내의 등이 아니라 바닥에 엎드려서 논다. 내가 들어가면 두 다리를 바닥에 탁탁 치면서, 정말 강아지가 꼬리치는 것처럼 반긴다. 어제 제대로 안아 보지도 못한 아쉬움을 풀기 위해 곧장 서윤이를 안았다.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아니 눈치는 보였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먼저 서운한 기색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조심하는 거다.) 서윤이를 꽉 안고 목덜미에 입을 대고 간지럽힐 때,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느끼는 서윤이의 모습이 아주 중독성이 강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은 자석 블록을 한참 했는지 그걸로 만든 다양한 작품을 자랑했다. 만드는 건 좋은데 꼭 만든 걸 전시하려고 한다. 물론 그 마음도 이해는 한다. 열심히 공을 들여 만든 걸 바로 부수라고 하니 아깝긴 할 거다. 우리 집이 한 100평쯤 되면 흔쾌히 전시 공간을 할애하겠지만, 당연히 그런 공간은 없다. 그래도 바로 부수는 건 왠지 너무 가혹하니까, 하루로 타협을 봤다. 다음 날 아침까지는 전시하는 거다. 어차피 하루 넘어가면 관심도 안 준다.
서윤이는 기분이 엄청 좋았는데, 역시나 딱 저녁 시간 전까지였다. 모두 식탁에 둘러앉은 뒤에도 잠시 동안은 언니, 오빠가 가지고 놀던 자석 블록을 이리저리 만지고 빨며 잘 놀았다. 그러다 불현듯 자기 혼자 바닥에 남겨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으이잉”하며 식탁 밑으로 기어 왔다. 이제는 안아서 품에 앉혀 놓는 걸로 달래지지 않는다. 먹을 걸 줘야 한다. 아빠, 엄마, 언니, 오빠가 먹는 걸 자기도 먹겠다고 막 달려든다. 거기서 서윤이가 먹을 수 있는 건 밥뿐이다. 몇 알씩 입에 넣어 주니 꼭 이가 있는 사람처럼 오물거렸다. 조금 늦게 넣어 주면 빨리 달라고 소리 내고. 사람 다 됐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어서 가뜩이나 빡빡한 밤 시간이, 더 여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아니면 더 오래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려는 아이들을 재촉하되, 화는 내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바쁠 때, 늦었을 때, 피곤할 때 조심해야 한다.
아내가 셋을 데리고 들어가고 나 먼저 모임을 시작했다. 아내도 금방 나오긴 했다. 아내가 금방 나온 것처럼 서윤이도 금방 깼다. 모임 중간에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아내는 당황하지 않았다.
“깼네”
차분했다.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걸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엄마의 이런 마음을 간파했는지 서윤이는 더 울지 않고 조용해졌다. 그 뒤에 또 한 번 그렇게 깼는데, 역시나 혼자 다시 잤다. 그래, 이런 경험이 많이 쌓여야 ‘아, 엄마가 없어도 잘 수 있구나. 엄마가 어디 간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겠지. 어쨌든 깼다가 혼자 다시 자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건 좋은 현상이다. 더디지만 아주 조금씩, 밤의 자유를 허락해 주는 거니까.
물론 결말은 변함이 없었다. ‘이번에는 진짜다’라는 식으로 격렬하게, 악을 쓰듯 우는 서윤이를 내가 안고 달래는 동안, 아내는 양치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그 짧은 시간도 못 버티겠다는 듯 조그마한 손으로 자기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발휘해 나의 쇄골을 밀어내고. 그렇게 울다가도 아내에게 안기기만 하면 웃음을 나눠 주고.
나도 아내랑 서윤이랑 같이 들어갔다. 수유를 마친 서윤이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안 자고 아내를 타고 놀았다. 휴대폰으로 얼굴을 비추면 하루 중 가장 환한 웃음으로 쳐다보고. 마치 밤을 새울 것처럼 신나게 놀더니, 어느샌가 조용해지고 자기 자리에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었다.
그때, 막 잠들어서 깰 위험이 가장 적은 때, 실컷 손과 발을 만진다. 볼은 그래도 위험하니 참고, 손과 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