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을 이기는 힘

20.12.18(금)

by 어깨아빠

다른 날도 그렇긴 하지만, 오늘 아내는 유독 지쳐 보였다. 오랜만에 두통이 왔다고 했다. 통증이 머리에만 있겠나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를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이 부재했다. 체력, 여유, 웃음 등등.


소윤이와 시윤이도 다른 날처럼, 얼마 없는 시간에 어떻게든 아빠랑 조금이라도 더 놀기 위해 애를 썼다. 밥을 최대한 부지런히 먹으면 5분이라도 시간이 더 생길 텐데, 밥 먹을 때는 그때 나름대로 떠들어야 할 목표치가 따로 있나 보다.


서윤이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잠시 나갔다 와야 해서, 곧 쓰러질 것 같은 아내와 그런 아내를 언제든 쓰러뜨릴 것 같은 아이들을 뒤로하고 나왔다. 극한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고 하더니, 아내는 머리가 아픈 건 물론이고 그로 인한 전체적인 난조 속에서 홀로 셋을 씻기고 재워야 했는데, 책까지 읽어줬다고 했다. 이제 소윤이와 시윤이가 읽는 책은 꽤 분량이 길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린다. 사실 요즘에는 잘 때 책을 읽어준 일이 거의 없다. 그 오랜만인 일을 오늘 행하다니. 아내의 정신력에 경의를 표한다.


책을 읽어줬다는 카톡을 받고 1시간쯤 뒤에 다시 카톡이 왔다.


“여보. 귀가하면 혹시 내 상태가 안 좋더라도 잘 해 줘요. 소윤이도 안 자고 서윤이도 안 자고 짱짱짱 힘들다”


아내가 함께 보낸 동영상 속 서윤이는 아주 밝고 환한 표정으로 벽을 잡고 서서 벽을 핥고 있었다. 할짝할짝. 그러면서 자기를 찍는 엄마를 보며 또 활짝 웃고. 아내의 정신력의 근원이 바로 그거였다.


아내를 위해 과자와 바리스타(편의점)를 사서 들어갔다. 아내는 이미 낮에 사 놓은 마늘빵을 먹으며, 뒤늦은 한가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여보. 타이레놀은?”

“아, 맞다. 타이레놀. 생각도 못 했네. 과자 사느라 정신 팔려서”

“여보. 차에 과일은?”

“아, 맞다. 그것도. 하아, 완전 까먹었네”


지난주 신림동에 갔을 때 엄마가 싸 준 포도와 감을, 일주일이나 차에 방치했다. 집에 들어오면서 그것도 챙기고, 타이레놀도 사다 달라고 했는데 싹 다 잊고, 과자랑 바리스타를 들고 들어왔다.


여보, 타이레놀보다 바리스타가 약효가 좋을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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