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듯 안 바쁜 듯

20.12.19(토)

by 어깨아빠

이 시국에 결혼식에 가야 했다. 웬만하면 안 갔겠지만 친척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축의금을 받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내 결혼식, 동생 결혼식도 다 그 동생이 받아줬다). 아내는 여러모로 보내기 싫어했다. 뭐 시국이 시국이니 불안하기도 했고, 또 억만금을 주어도 바꾸기 힘든 ‘남편과 함께하는 토요일’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진짜 억만금을 준다면야 고민 없이 바꾸겠지만).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윤이는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시윤이는 가지 말라고.


“여보. 언제쯤 오지?”

“글쎄. 점심시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아, 기약 없는 기다림이 제일 힘든데”


마스크 2개를 바느질로 이어 붙여서 개조를 했다. 차단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귀가 안 아픈 마스크 끈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최대한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


다행히(?) 식사는 없었고, 대신 답례품을 나눠줬다. 준비한 답례품이 100개였는데 모두 안 나간 걸 보면 사람도 그만큼 조금 오기도 했나 보다. 임무를 마치고 빠르게 퇴장했다.


“여보”

“어, 여보”

“끝났어. 가려고”

“어? 벌써? 대박”


아내는 엄청 좋아했다. 오후가 다 지나고 나서야 올 줄 알았던 남편이 점심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끝났다고 했더니. 옆에서 시윤이도 엄마의 기쁨을 거들었다.


“엄마아. 아빠가 벌쩌 오진다구여어?”


예식장 근처에 있는 김치찜 집에서 김치찜 3인분을 포장했다. 토요일의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확보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생각보다 평온하게 지내고 있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나만의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내가 오기 전에 서윤이는 잠시 화장실에 간 아내를 기다리며 빽빽 울다가 바닥에 엎드려 잠들었다고 했다.


김치찜은 올해 초에 애들하고 가서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제법 잘 먹었다. 최대한 매운 국물이 덜 묻은 살코기를 발라 주고, 김치는 작게 잘라 주면


“씁하 씁하. 아빠 매운데 맛있어여”


이러면서 잘 먹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잠시 밖에 나갔다 왔다. 물론 역시나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고, 그저 커피를 핑계로 바람을 쐬러 혹은 반대로 바람을 핑계로 커피를 마시러. 오늘은 장 볼 일도 없어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차에만 있었다. 바람이라도 쐬러 나갔다 오자는 아내와 나의 말에 “아, 조금 귀찮다”라며 귀찮아하던 소윤이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한 작은 이벤트로 세차(자동 세차를 좋아한다)도 하고 쿠키도 하나 샀다.


집에 오는 길에 시윤이와 서윤이가 모두 잠들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차 안에서 소윤이와 나, 아내 이렇게 셋이 꽁냥 거릴 시간이 생겼다. 소윤이에게는 조금이나마 외출의 즐거움이 생길 만한 시간이었다. 아내랑 나 사이에 와서 이야기도 하고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래픽 효과를 무슨 재밌는 영상 보듯 보기도 했다. 동생들의 방해 없이 엄마와 아빠랑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가 엄청 오래된 일이니, 나름 즐겁지 않았을까.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모두 함께 해야 했다. 점심을 든든히 먹어서 저녁에도 배가 불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을 먹어야 하니 간단히 밥을 차려줬다. 온라인 모임은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해서 거의 2시간 후에 끝났다. 그 시간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그것도 아주 바르고 얌전한 태도로. 어른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오가는 와중에도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참 기특했다.


“와. 소윤아, 시윤아.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얌전히 있어? 진짜 대단하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노력을 한껏 치켜세웠다. 과장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특하고 대견했다. 작은 보상으로 쿠키를 하나씩 줬다. 원래 애들 주려고 산 것이긴 해도, 그때는 시간이 늦어서 바로 씻고 자야 했지만 흔쾌히 포상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와 놀 시간이 별로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내일 많이 놀자는 말로 위로해 줬다. 아침에 잠깐 결혼식 다녀온 것 말고는 계속 같이 있었는데 은근히 바빴나 보다. 내가 생각해도 같이 놀고 그러지는 못했다.


아내는 힘들었다. 서윤이가 아내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배가 엄청 고팠다고 했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아내와 나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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