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화)
아침부터 아내에게 전화해서 가슴 마사지를 예약하라고 채근했다. 누구한테 맡기고 가냐는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일단 저녁에도 예약이 가능한지 물어보라고 했다.
“서윤이는 어떻게 하고?”
“뭘 어떻게 해. 내가 보면 되지”
“괜찮겠어?”
“괜찮지 뭐. 서윤이가 안 괜찮겠지. 어쩌겠어. 더 심해지기 전에 가는 게 좋지”
아직 자유롭기 어려운 몸이기도 하고 한 번 마사지 받는 비용도 적지 않으니 아내 스스로는 잘 안 간다. 열심히 부추겨야 겨우 간다. 꼭 예약하라고 당부하고 통화를 끊었다.
서윤이는 겉보기에는 멀쩡하다고 했다.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아내가 보내준 사진에서도 오랜만에 웃음기를 띤 얼굴이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쯤, 열을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는데 재우면서 보니 좀 떨어진 것 같다는 소식이 왔다. 주일 이후로 처음, 떨어지는 국면이었다.
안타깝게도 아내의 가슴 마사지는 불발이었다. 이번 주에 개인 일정이 있어서 예약이 안 된다고 했다. 아내가 늘 가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는 건 영 내키지 않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미뤄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점심은 떡볶이, 후식은 수박 빙수였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아내가 참 대단하다. 꾸역꾸역 사는 것 같아도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소중한 기억과 시간을 차곡차곡 잘 쌓아주고 있다. 이 겨울에 수박 빙수라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얼마나 신나게 먹었을지는 굳이 전해 듣지 않아도 훤히 보였다.
서윤이도 낫고 있고, 애들도 즐거워 보였다. 아내의 하루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퇴근길에 걸려온 아내의 전화 속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처음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드디어(?) 아내가 아픈 건가 싶었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은 없고 우울감은 가득했다.
“어, 여보. 목소리가 왜 그래?”
“그냥 뭐. 맨날 똑같지”
“왜, 애들 때문에?”
“그냥 뭐”
“많이 힘들어?”
“어. 여보. 오늘 저녁 밖에서 사 먹자. 내가 정해서 주문해 놓을 테니까 여보가 들어오면서 찾아와요”
“그려, 알았어”
하필 오늘따라 차도 엄청 막혔다. 아내는 울고 있는 칼이었다. 물론 진짜 눈물을 보이지도, 날카로운 날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딱 그런 느낌이었다. 엄마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천진난만했다. 고추장 떡볶이를 먹은 것, 수박 빙수 먹은 것, 편지 쓴 것 등을 조잘조잘 얘기했다. 사실 아내한테 다 들은 건데 언제나 처음 들은 것처럼 놀란다.
“오, 진짜? 맛있었겠는데?”
아내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의 문제(?)라는 게 느껴졌다. 아내 혼자 추스르도록 뒀다. 괜히 어설프게 덤비지 않고. 그냥 내 할 일을 하는 게 돕는 거다. 애들 씻기고 준비시키고.
서윤이는 정말 많이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얼굴에 미소와 웃음이 돌아왔다. 기특한 녀석. 머리도 덜 뜨거웠다.
“여보. 진짜 신기하다. 온도가 완전히 다르네. 딱 느껴지네”
“그러니까”
맨날 안고 느끼는 엄마, 아빠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서윤이의 미소가 돌아온 대신 아내의 미소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카톡을 보냈다.
“여보 나 안 되겠당 커피 배달이라도 해야겠음. 여보는 안 마시죠?”
커피로라도 아내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절묘하게도 아내가 방에서 나올 때, 커피도 배달이 됐다. 커피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아내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매우. 내 예상에는 땅굴을 파고 나올 거 같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인가 싶다가도 혼자 속만 썩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되고.
“여보. 나 오늘 엄청 힘들었어”
“그러니까. 괜찮아?”
“지금은 괜찮아”
육아 일기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아내의 수련 일기’로 해도 될 정도다. 아내의 하루하루가 그렇다. 매일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상을 쓰러지지 않고 단단해지는 아내에게 감사하다.
아내는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면서 흘깃흘깃 나를 쳐다봤다. 눈을 마주치니 민망한 듯 웃었다. 아내의 손에는 생강청이 들려 있었다.
여보, 생강청 원 없이 먹어. 여보의 하루에 비하면 그깟 생강청 항아리째로 사 놓고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