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2(화)
아픈 나의 허리를 위해 자세 교정 의자를 하나 사기로 했다. 나한테 맞지 않거나 생각보다 별로일지도 모르니 일단 중고를 사기로 했다. 당근마켓에 키워드 알림 설정을 해 놓고, 아내와 내가 정한 금액 이하의 물건이 뜨면 연락을 하기로 했다.
아직 업무 시간이 되기 전에, 사무실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알람이 울렸다. 아내와 내가 정한 금액보다 무려 5,000원이나 싼 가격에 누군가 팔겠다고 올린 거다. 바로 채팅을 보냈다.
“구매할게요”
그 사람에게 나 말고도 또 한 명이 채팅을 걸었다는 게 표시됐다. 그때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내가 채팅을 보낸 그 사람이 올린 게시물을 캡처해서.
“두 명이네. 누가 더 빨랐을까”
“여보랑 나야”
“여보?”
“오예 득템”
“답장 왔어?”
“아직”
“오예 내가 빨랐나 봐. 답장 옴”
“즐구매”
아내가 쟁취했다.
아내가 소윤이 신발 주문한 게 있었는데 그게 좀 작았나 보다.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하고 산 건데, 소윤이가 생각보다 빠르게 크는 것 같다. 새로 산 신발을 신은 소윤이 사진을 아내가 보내줬는데 너무 잘 어울렸다. 소윤이 표정이 어둡길래 ‘그냥 순간포착이 그렇게 됐나’ 싶었는데, 정말 어두운 거였다. 작아서 못 신게 될까 봐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라고 했다. 결국 반품하고 다시 주문하기로 했다.
옆에서 누나의 신발을 보던 시윤이는 자기 신발은 안 예쁜데 누나 신발은 예쁘다면서 자기도 그런 걸 신고 싶다고, 너무 원하고 있다고 했다. 시윤이는 얼마 전에 신발을 하나 사 줬다. 게다가 소윤이 신발은 하얀색에 꽃무늬로 장식이 된 신발이었다.
“시윤이가 그 신발을 신는 건 영 아니지? 돈도 돈이고”
“응”
시윤이는 누나 신발은 반짝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너무 예쁘다면서 자기도 그런 걸 사달라고 했다나 뭐라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이 인간의 비교 근성이란. 아무튼 소윤이한테 너무 잘 어울렸다. 빨리 다시 왔으면 좋겠다.
오늘의 저녁은 밀푀유 나베였다. 아내가 집에 오는 길에 부탄가스와 칼국수 생면을 사 오라고 했다. 집에 왔더니 아주 정성스럽고 멋스러운 밀푀유 나베가 준비되어 있었다.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저녁에 이렇게 맛있는 걸 먹는 건 오랜만인 거 같아여”
“왜, 맨날 맛있었잖아”
“아니, 그렇기는 한데 어, 계란밥이나 뭐 이런 건 맛은 있지만 느낌이 다르잖아여”
“그래, 소윤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빠도 알겠다. 뭔가 근사한 요리가 오랜만이라는 거지?”
“맞아여”
서윤이한테도 주고 싶을 만큼 담백하지만 풍요로운 맛이었다. 건더기를 다 건져 먹고 나서는 칼국수도 넣어서 먹었다. 서윤이는 바닥에 내려놓고 과자를 주며 시간을 벌었다. 과자에 완전히 심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식사를 중단하고 서윤이를 봐야 하는 사태로 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난 뒤에는 소윤이의 이를 뺐다. 지난번에 빠진 앞니 자리에 어느새 새 이가 거의 다 올라왔고, 그 옆의 이가 오래전부터 흔들렸다. 오늘 흔들어 보니 뺄 정도로 흔들렸다. 지난번처럼 실을 묶어서 빼기로 했다. 오늘은 지난번처럼 오래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대로 실을 묶고, 셋을 센 다음 바로 이마를 탁 쳤는데 이가 그대로였다. 실을 너무 약하게 묶었나 보다. 이를 빼는 데는 실패했지만 덕분에 소윤이는 웃음이 터졌고 겁먹었던 것도 좀 풀렸다. 2차 시도에는 깔끔하게 성공했다.
서윤이는 옆에서 앞니 두 개를 빼꼼히 드러내며 아빠와 언니가 뭘 하는지 지켜봤다. 서윤이를 보니 소윤이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서윤이처럼 이 두 개만 있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게 정말 어제 같은데 어느새 평생 쓸 앞니 두 개를 가질 때가 됐다니. 처음 이를 뺐을 때처럼 뭉클하지는 않았지만, 또 소윤이의 성장이 확 느껴져서 아쉽긴 했다.
요즘은 벌써 이렇게 컸나 싶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소윤이를 보다가, 누나에 비하면 아직 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은 시윤이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언니와 오빠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기’에 불과한 서윤이를 보며 안심하게 된다.
소윤이가 써 준 편지를 모아 놓는 통이 벌써 꽉 차서 뚜껑이 잘 안 닫힌다. 진짜 잘 보관해야지. 이렇게 어설프고 비뚤빼뚤한 편지를 쓰는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