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낯선 괴성이 들렸다

21.02.03(수)

by 어깨아빠


서윤이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안 잤다. 새벽에 깨서 울고 난리도 아니었다. 매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수준급의 어느 선수처럼, 서윤이도 어쩜 날이 갈수록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뭐 벌써 시간이 이만큼 지나서 과거의 기억이 흐려지거나 사라졌는지 몰라도, 오늘 새벽이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다.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별 짓을 다 했지만, 서윤이는 안아도 울고 눕혀도 울고 재워서 눕혀도 울고 세워도 울고 앉혀도 울고 쳐다봐도 울고 안 쳐다봐도 울고 놔둬도 울고 안 놔둬도 울고 울고 울고 또 울었다. 하아.


아내는 이미 거실에 나가고 없었고, 나도 계속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거실로 나갔더니 아내는 서윤이를 아기띠로 안고 있었다. 서윤이는 그 와중에 웃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환한 웃음을 날렸다.


‘니가 막내딸만 아니었어도 진짜’


그렇게 개고 아니 생고생을 시키는 존재가, 조금도 밉지 않다니 이건 정말 뭘로 설명을 해야 할까. 아내가 무척 걱정이 됐다. 나도 피곤하기야 했지만, 난 나와의 싸움만 하면 됐고 아내는 1호, 2호, 3호도 챙기고, 때로는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오르는 감정도 억눌러야 했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아내의 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아직 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거실에 누워 대자로 뻗어 자는 서윤이와 그 옆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시윤이 사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일찍 깨서 나왔는데 시윤이한테 조금 누워 있으라고 했더니 그대로 잠들었다고 했다. 아무튼 매우 평화로운 사진이었다. 다들 자는데 아내만 못 자는 현실은 별로 평화롭지 못했지만.


아내는 낮에 온라인 목장 모임이 있었고, 그 시간에 소윤이와 뭔가 틀어진 듯했다. 아내의 말로는, 엄마가 어쩌지 못하는 걸 알고 소윤이가 말을 너무 안 들었다고 했다. 목장 모임이 끝나고 잠깐 통화할 때 아내는


“회복된 지 얼마 안 됐어”


라고 표현했다. 소윤이와 앙금을 푼 지 얼마 안 됐다는 의미였다. 소윤이가 쓴 편지도 찍어서 보내줬다. 보통은 사랑한다는 내용밖에 없는데, 오늘은 새로운 내용도 있었다.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요. 내가 주는 선물 받아요. 꼭”


회사에 있는 아빠가 보기에는 그 마음이 참 귀한 편지지만, 당사자인 아내는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따라 소윤이와 시윤이가 말을 참 안 듣긴 한 것 같았다.


퇴근할 때쯤이면 이미 다 끝나가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남은 체력이 없어 허덕일 때가 많으니 얼른 가서 아내를 돕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괴성이 들렸다. 그야말로 괴성이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 주택에서 쉽게 듣기 힘든 어느 어른의 포효랄까. 복도 전체가 울렸고, 아마 다른 층에도 들렸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무엇보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소리를 지르느라 조금 감춰지긴 했어도, 자주 듣는 목소리라는 걸 본능이 알아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내가 먼저 얘기했다.


“여보. 나 소리 지르는 거 다 들었겠네?”

“어, 왜 그래? 왜?”


정말 이유를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었고, 시간을 벌며 사태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서윤이가 너무 울기도 하고 도무지 아내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던 서윤이는 울며 나에게 기어 왔다. 손만 얼른 씻고 나와서 서윤이를 안았다. 아내의 괴성이 들린 순간부터 뇌가 빠르게 돌아간 듯하다.


‘과연 나는 어떤 자세로 무엇을 해야 하나’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내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니다. 본 기억이 없다. 평소에도 종종 그렇게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내가 몰랐던 건지, 아니면 오늘 처음으로 그렇게 한 건데 마침 내가 들은 건지. 아무튼 아내가 오죽하면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 싶었다.


나도 숨이 턱턱 막혔지만 나라도 숨을 쉬어야 했다. 숨을 고르고 냉철하게 행동해야, 그나마의 평화가 유지될 것 같았다. 일단 서윤이를 맡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앉아서 점심을 먹었고 난 서윤이를 바닥에 앉혀 놓고 배를 갈아서 먹였다. 다행히 서윤이가 내 앞을 떠나지도 않았고, 기분도 좋았다. 물론 배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이렇게 가끔 주냐는 듯, 잘 받아먹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따라 저녁에 나의 목장 모임도 예정되어 있었다. 아내는 자기 때문에(자기 때문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일에 방해가 되는 게 미안하니까, 어떻게든 뭐든 자기가 하려고 했다. 총 맞은 사람이 살짝 까진 사람 도우려는 꼴이랄까. 지금 목장 모임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집이 전쟁터인데 무슨. 목자 집사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조금 늦게 합류할 거 같으니 먼저 진행하시라고.


어차피 아내에게 위로나 격려 따위가 먹힐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자꾸 뭔가 하려는 아내에게 단호하게 얘기했다.


“여보. 오늘 목장 모임은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서윤이는 꽤 한참 나랑 놀았다. 그 사이 소윤이와 시윤이는 밥을 먹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서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안쓰러웠다. 낮에 아내에게 어떤 만행(?)을 저질렀을지는 모르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른 날과 똑같이 책 읽기도 요청하고, 놀기도 요청하고, 아무튼 엄마, 아빠의 사정을 봐 주지 않았다. 메마른 엄마와 지내느라 나름대로 고생했을지 모르니까, 애들한테도 최선을 다했다. 원하는 대로 들어주지는 못해도, 아예 거절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책도 조금은 읽어주고, 노는 것도 조금은 해주고.


아내에게는 서윤이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갔다 오라고 했다. 이 시국에 나가서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일단 나가라고 했다. 나가서 바람을 쐬든 운전을 하든 일단 이 집을 벗어나라고 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엄마가 서윤이 수유만 하고 진짜 나오실 거야. 알았지? 오늘은 잠 안 들어도 엄마가 안 기다려주셔. 알았어?”


시윤이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소윤이는 울먹거렸다.


“소윤아. 오늘은 소윤이가 좀 이해해 줘. 엄마 봐봐. 저렇게 힘드신데 엄마도 좀 쉬셔야지. 그치? 그러니까 오늘은 엄마가 좀 쉴 수 있게 소윤이가 이해 좀 해 줘”


아내와 아이들이 방에 들어갔고 난 목장 모임을 하러 작은방에 들어갔다. 목장 모임은 1시간 정도 걸렸고 아내는 기어코 서윤이를 재우고 나왔다. 목장 모임이 끝나고 거실에 나왔을 때, 아내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보. 얼른 나가”

“여보. 저녁 먹어야지”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얼른 나가. 얼른”

“여보. 그럼 배추도 꺼내서 같이 먹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얼른 나가라고. 얼른.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 밥 차려 먹은 짬밥이 있어. 걱정하지 말고 얼른 나갔다 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밖에 눈발이 조금씩 흩날려서 걱정이 됐지만, 아내의 눈물이 흩날릴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 아마 마땅히 갈 데가 없었을 테지만, 차에 앉아서 친구랑 통화를 하더라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여보. 여기 소주 한 병만 있으면 완전한 노총각의 식탁인데?”


배추와 생선, 쌈장이 조촐하게 놓인 식탁과 맨 위 단추만 풀어진 나의 셔츠, 방금 자고 일어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헝클어진 나의 머리를 조합하면 딱 그 모양이었다. 아내는 나갔고 난 혼자 앉아서 유튜브를 보며 식사를 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하빠하”


소윤이가 안방 문을 살며시 열고 날 부르는 소리였다. 소윤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미소를 머금고 날 쳐다봤다. 이유가 있어서 나온 건 아니었다. 그냥 잠들지 않았고, 밖에서 소리가 나니까 나온 거였다. 따뜻하게 맞아줬다. 소파에 앉아서 안아주고 잠시 대화를 나눴다. ‘어쩌면 너네도 나가서 바람을 쐐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라는 심정으로, 애틋하게.


“아빠 얼굴 보고 싶어서 나왔어여”

“그래, 잘했어. 아빠도 소윤이 얼굴 한 번 더 보고 좋네”

“아빠 밥 다 먹었어여?”

“어 거의 다 먹었어”

“그럼 아빠는 언제 들어올 거에여?”

“아빠는 아직 한참 더 있다가 들어가지”

“왜여?”

“아빠는 할 일도 있고. 이제 소윤이도 다시 들어가서 자. 잘 수 있지?”


소윤이는 순순히,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들어가서 다시 누웠다.


서윤이는 2시간 조금 더 자고 다시 깼다. 그러니까 한 11시 30분쯤. 아내는 아직 돌아오기 전이었다. 울게 놔둬 봤는데 역시나 더 거세졌다. 안방에 들어갔더니 문 앞까지 와서 공기 청정기를 잡고 선 채로 울고 있었다.


내가 안아주는 것과 동시에 ‘이 사람이 엄마가 아니다’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바로 문쪽으로 몸을 틀며 엄마를 찾았다. 그래도 울음은 그쳤다. 한 번씩 엄마를 찾는 듯 울며 문쪽으로 이끌리긴 했지만 계속 토닥여줬더니 어느새 내 어깨에 고개를 떨궜다. 엄지손가락을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빨면서, 나머지 손으로는 내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대로 잠들 것 같지는 않았다. 손가락을 빠는 소리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잠시 쉬는 것뿐’이라는 서윤이의 마음이 전해지는 소리였다. 허리가 많이 아팠지만 눕힐 수 없었다. 그때 아내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계속 안고 있었다. 30분을 넘게 안고 있었더니 손가락을 빠는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안 빠는 건 아니었다.


‘눕혀도 금방 깨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눕혀봤다. 기대가 없어서 그랬나, 웬일로 눈을 뜨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오 조금이라도 자려나?’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3초 후 울음을 터뜨렸고, 아내도 들어왔다.


서윤이가 밉거나 마음이 힘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울어젖혀도 서윤이는 여전히 나의 막내딸이었다. 나도 신기했다. 내 스스로 어떻게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나 싶었다. 다만 나의 삶이 자꾸 3인칭 시점으로 보였다. ‘나’라는 인간의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단데 쓰고, 쓴데 달고. 단쓴단쓴이랄까.


아내가 밖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마음은 좀 괜찮아졌는지 궁금했지만 아내에게 서윤이를 넘기고 나도 바로 자리에 누웠다. 거기서 뭘 더 하면 쓸데없는 생각이, 내 정신 건강에 별로 유익할 것 없는 생각이 치고 들어올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낮에 점심 먹을 때 회사 직원들과 나눈 얘기가 떠오른다. 남자 직원 네 명과 함께 먹었는데, 다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미혼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더러 어떻게 아이를 세 명이나 키우냐고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다.


“힘들긴 하죠. 오늘도 제대로 잠을 못 잤어요. 힘들긴 한데 그래도 좋아요. 애들 보면 또 엄청 예쁘고 좋기도 하고. 힘든 걸 뛰어넘는 기쁨이 있어요. 괜찮아요”


니들이 모르는 영험하고 신비한 육아의 세계가 있다는걸, 말해줬다. 가서 다시 말하고 싶다.


“네, X라 힘들어요. 개빡쎄요. 각오 단단히 해야 될 텐데. 그냥 뭐 어떻게 되겠지 생각하면 큰 코 다치는 게 아니라 그냥 코 없어질 텐데. 그냥 뭐 어떻게 안 되고 X라 열심히 살아야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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