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후딱 지나갔네

21.02.11(목)

by 어깨아빠

보통 주말에 비하면 과분하지만, 명절 연휴라고 생각하면 짧은 듯한 4일의 연휴가 시작됐다. 애들이 아무리 일찍부터 깨우고 난리를 쳐도 출근할 때보다는 늦은 시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늦잠은 늦잠이다. 게다가 오늘은 아내가 날 방에 방치해 줬다.


가장 늦게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눈을 뜨고 나서도 방에서 좀 뒹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미 아침을 거의 다 먹어가는 중이었다. 아내와 나는, 어제 장모님이 잔뜩 사 주신 빵으로 아침을 대신할 생각이었다. 커피를 내려서 빵과 함께 마시려고 하는데 더 급한 일이 떠올랐다.


이번 명절에는 양쪽 부모님 댁에 가지 않으니 그야말로 우리 가족끼리 보내야 했다. 아내와 나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만두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신혼 시절, 울산에서 아내와 둘이 만두를 만든 적이 있었다. 만두와 함께 전, 튀김도 만들었다. 아침에 시작해서 늦은 밤에 끝났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만두피까지 직접 반죽을 했었고, 아내와 나는 ‘다시는 직접 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었다. 그날을 교훈 삼아 만두피는 사기로 했다. 그때처럼 무식하게 많이 만들지도 않을 거였고.


재료를 사야 했다. 설 연휴가 시작되면 혹시 필요한 재료가 다 팔릴지 모르니 미리 사 놓을까도 생각했지만, 아내가 미리 사 놓으면 신선함이 떨어진다며 오늘 사자고 했다. 한살림이 문을 열자마자 가면 웬만한 걸 다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침을 먹자마자 바로 집에서 나왔다.


고작 집 앞에 장 보러 가는 거지만, 집 앞에 갈 때나 멀리멀리 여행 갈 때나 옷을 갈아입혀야 하는 건 똑같다. 집 앞이라고 내복을 입혀서 나갈 수는 없으니. 뭐니 뭐니 해도 서윤이가 제일 비효율적이다. 기껏 갈아입혀도 내내 안겨 있거나 유모차에 앉아 있기 때문에 가장 겉옷 말고는 보이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겉옷도 거의 한 가지만 입히고. 그래도 갈아입혀야 한다. 제일 비효율적인 녀석이 힘들기는 제일 힘들다. 언제 커 가지고 자꾸 그렇게 뒤집어대는지.


딱 장만 보고 들어왔다.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고, 아내와 나는 아침으로 먹으려던 빵을 점심에 가까운 아침으로 먹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소윤이와 시윤이의 점심도 빵으로 대체했다. 우리 집에 뭔가를 사 주실 때는 언제나 손이 크신 장모님 덕분에 빵이 한가득이었다. 마침 서윤이도 낮잠을 자기 시작해서 거실에 상을 펴고 둘러앉았다.


아내도 빵을 좋아하고 나도 빵을 좋아하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도 정말 잘 먹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난 다 소윤이와 시윤이 같은 줄 알았는데, 모든 아이들이 끝까지 앉아서 다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안 게 얼마 안 됐다. 그게 꼭 밥이 아니고, 좋아하는 간식일지라도. 먹다가 질려서 남기고 일어서는 아이들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러는 일이 거의 없다. 언제나 끝까지 간다.


하루 종일 여유로웠다. 서윤이도 오후 내내 기분이 좋았다. 요즘은 아이들이랑 집에 있어도 예전이랑 많이 다르다고 느낀다. 물론 이것도 나의 의견일 뿐, 아내는 어떤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둘이 노는 시간이 많다. 가끔 나에게도 동참을 요청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둘이 논다. 온갖 역할극과 상황극을 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다. 아마 평일의 아내는 그 시간에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하느라, 막내를 먹이고 재우느라 여유가 없을 거다. 주말에, 한시적으로 함께하는 나는 꽤 여유가 있다. 물론 아이들로부터 얻은 자유를 아내 대신 밥 준비하고 차리는 데 쓸 때가 많다. 어쨌든 소윤이와 시윤이만 떼어 놓고 보면 한결 손이 덜 가는 건 사실이다. 그 덜 가는 손의 몇 배 이상 손이 필요한 막내가 있어서 무의미하지만.


저녁에는 잡채와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아내가 하려고 하는 걸 말리고 내가 했다. 난 하루 종일 여유가 넘쳤는데 아내는 쉬지 않고 뭔가를 계속했다. 집안일은 드넓은 바다와 같아서 손을 뻗으면 뻗는 대로 잡힌다. 아내는 ‘쉬는 남편’과 함께하는 기회를 쉬는 데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일하는 데 쓴다. 저녁이라도 내가 준비할 테니 좀 앉아서 쉬라고 했다. 아내의 의지가 아니라 막내의 의지에 따라 쉴 수 있을지 말지가 결정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좀 앉으라는 뜻이었다.


아내의 가르침과 인터넷의 도움으로 생애 첫 잡채를 무사히 만들었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 만든 것 중에 일부만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보관하려고 했는데, 턱도 없는 양이었다. 보관하려고 담아 놓았던 것까지 탈탈 털어서 먹었다. 오늘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는 요리사’라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찬사를 아낌없이 보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더니 좀이 쑤신지(장을 본 건 외출로 치지 않나 보다) ‘어디라도’ 좀 가자고 했다. 잘 이야기해서, 오늘은 밤 산책으로 타협을 봤다. 저녁 먹고 양치를 제외한 ‘자기 전 씻기’를 모두 마친 후 나왔다.


“여보.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네”

“그래? 애들이 안 좋아할 거 같은데. 차 타는 건”

“그럴까?”

“응. 여보가 잘 설득해 보던가”


아내의 설득은 씨알도 안 먹혔다. 체념한 듯 보이던 아내가 묘안을 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서윤이와 나는 커피를 사러 다녀오는 거였다. 아이들도 동의했고 나도 동의했다. 서윤이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아직 자가판단능력이 없으니 후견인(나)의 결정에 따라야지 뭐.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카페에 가서 커피 두 잔을 샀다. ‘배달의 남편’은 명절 연휴는 물론이고 명절 당일에도 정상 운영될 예정이다.


애들을 재우고 나서 아내랑 영화를 봤다. 중간에 서윤이가 한 번 깨서 잠시 멈추기는 했지만, 딱 그때 한 번뿐이었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대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2시가 넘었다.


“헤에? 2시? 대박”

“그래도 내일 출근 안 하니까 마음 편하지?”

“당연하지. 다행이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누워서도 한참을 더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