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2(금)
잠에서 깼을 때, 방에는 나 혼자였다. 거실에서 아내와 아이들 소리가 들렸고, 서윤이의 우는소리도 들렸다. 바로 나가지 않고 휴대폰을 보면서 좀 누워 있었다.
“소윤아, 시윤아. 잠깐만 조용히 해 줘. 엄마 서윤이 눕히고 올게”
순간 자는 척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건 너무 비양심적이고 쪼잔한 짓 같아서 당당하게(?), 휴대폰을 보던 자태 그대로 아내를 맞이했다.
“어, 여보.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어?”
“조금 전에”
“여보. 좀 더 쉬다 나와”
“아니야. 나가야지”
내가 정말 천사와 결혼한 게 아닐까 싶었다. 조금 더 누워 있다가 거실로 진출했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만두 만들기에 돌입했다. 아내가 만두소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했다. 난 아내의 지시에 따라 칼질이 필요하거나 힘이 필요한 일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생애 첫 ‘만두 빚기’를 기다렸다. 바닥에는 무법자 서윤이가 서식하고 있으니 식탁에서 해야 했다. 아내가 준비한 만두피는 30장짜리 두 봉지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만두 빚는 방법을 알려줬다.
“자, 소윤아, 시윤아. 봐봐. 이렇게 손바닥 위에 만두피를 올려놓고 가장자리에 물을 발라”
“물은 왜 발라여?”
“아, 속 넣고 붙일 때 잘 붙으라고. 자 물 바른 다음 숟가락으로 이걸 떠서 넣어. 너무 적게 넣으면 맛이 없고 너무 많이 넣으면 터지니까 적당히. 자 그런 다음, 이렇게 오므려서”
“어? 아빠. 다 흘렸어여”
“그러게. 이게 쉽지 않네. 양을 조금 줄여야겠다”
얘들아, 사실 아빠도 해 본 적이 별로 없단다. 아내는 주방에 서서 만들었다. 아내까지 의자에 앉으면 ‘바닥의 포식자’가 자기도 끼워달라며 칭얼거릴 테니, 아내는 무리에 속하지 않은 척하는 거였다. 다행히 서윤이는 조금의 방해도 하지 않았다. 사실 쌀튀밥의 힘을 좀 빌렸다. 바닥에 쌀튀밥을 뿌려줬다. 서윤이는 그걸 줏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소 강아지 취급을 하는 듯한 모양이어서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모두의 평화를 위해 잠시 그렇게 했다.
소윤이는 아주 열심히, 재미있게 만두 빚기에 임했다. 소윤이는 언제나 ‘어른의 일’, ‘엄마, 아빠의 일’에 관심도 많고, 자기도 해 보고 싶은 열망도 크다. 소윤이는 아주 행복하게 만두를 빚었다. 만두 모양도 제법이었다. 시윤이도 열심이었다. 다만 열정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다. 시윤이는 자기 손보다 큰 만두피에 점을 찍듯 소를 넣고, 두 겹 세 겹으로 접었다.
“아빠아. 만들었져여어. 잘했져어?”
“우와. 시윤이도 잘 만드네. 계속 열심히 해 봐”
60장의 만두피 중에 한 10장 정도를 시윤이가 썼다. 아내는 나에게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얘기했다.
‘여보. 만두피 아깝다’
시윤이는 요즘 들어 자신을 향한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부쩍 민감해졌다. 시윤이의 만두가 비록 상품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그 안에 스민 땀과 노력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도록 열심히 독려했다. 시윤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보수 공사를 하려고 했는데, 자꾸 만두피가 찢어졌다. 그냥 있는 그대로 뒀다.
만두 만들기는 두어 시간 정도 걸렸다. 그래 봐야 60개였고, 거하게 판을 벌린 게 아니었기 때문에 곡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힘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미세 피로가 쌓여 묵직한 무게가 된 느낌이었다. 아내는 이렇게 표현했다.
“여보. 당분간 만두 만들기는 또 안 하고 싶을 거 같네”
격렬하게 공감했다. 애들이 말썽을 부린 것도 아니고, 만두가 많았던 것도 아닌데 은근히 피곤했다. 인간의 몸에 기초 대사량처럼, 기초 피로량이 있나 보다.
만든 만두를 넣고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간이 약해서 슴슴하긴 했지만, 딱 내 취향이었다. 만두에서 왠지 모를 ‘어설픔’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다들 맛있게 잘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어느새 오후 한복판이었다.
“여보. 오늘은 어디 좀 나가야겠다”
“그러게. 날씨가 너무 좋네”
난지한강공원에 가기로 했다. 가 본 적은 없었는데 아는 사람이 애들이랑 가기에 참 좋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집에서도 가까웠다.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으면 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걸,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다행히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리 두며 놀기에 딱 적당한 정도였다.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다.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기에도 좋고, 넓은 잔디밭도 있고, 새로운 놀이 기구도 있고. 아내는 서윤이를 아기띠로 안았고 난 소윤이, 시윤이와 놀았다. 서윤이를 오랜 시간 안고 있는 건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맡을 수는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뭔가 과격하게 뛰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싶은 욕구 분출을 위해서는 아빠가 필요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전거를 탔다가, 킥보드를 탔다가, 놀이터에서도 놀다가, 그냥 뛰기도 하다가를 반복했다. 나도 소윤이와 시윤이를 따라 보조를 맞췄다. 해질녘이고 바람도 좀 불어서 쌀쌀할 법도 했지만 계속 움직이니 괜찮았다. 아내가 문제였다. 혼자 벤치에 앉아 짐을 지키며 서윤이를 안고 있었다. 서윤이가 유모차에라도 탔으면 좀 나았겠지만, 유모차로 옮기다 깨면 더 낭패니 아내는 힘들지만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아내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남편과 아이들의 행복한 한때를 관망했다. 연날리기를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한 3시간 놀았나 보다. 만족스러웠다. 애들도 많이 뛰고, 실컷 웃었다. 다음에도 또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웬만하면 외식을 하지 않지만, 아내가 오늘은 밥 차리기가 너무 귀찮다며 밖에서 먹고 가자고 했다. 문제는 설날이라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동네의 문을 연 식당 중 몇 곳을 추리고 추렸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았지만 평이 괜찮은 짬뽕 가게로 정했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직원분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아, 저희가 연휴 기간에는 5인 이상 출입이 안 돼서요. 죄송합니다”
“아, 가족이어도 안 돼요?”
“네. 죄송합니다”
퇴장당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기본이 다섯 명이라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 테니. 아내와 나는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찌개에 햄과 라면을 넣어 먹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남은 만두소를 이용해 볶음밥을 만들어줬다. 서윤이도 이유식을 먹었다.
“소윤아, 시윤아. 차라리 집에서 먹게 된 게 잘 됐다. 이렇게 편하게 먹고. 식당에서 먹었으면 서윤이 이유식도 못 먹이고, 엄마나 아빠 중에 한 명은 서윤이 안고 있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
“맞아여. 잘 됐다여”
강제된 일이긴 했지만, 잠깐의 귀찮음을 이겨 내니 편안한 저녁 식사 시간을 얻었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던 아내는 잠들었다가 깨서 나왔다. 깨서 나오긴 했지만 눈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다른 날도 그렇긴 하지만 오늘은 유독 더 피곤해 보였다. 10kg에 육박하는 서윤이를 안고 찬바람을 맞은 결과였다. 졸린 아니 곧 잠들 듯한 눈으로 빨래를 개던 아내와 오늘도 영화를 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뭘 볼지 고르며 빨래를 개던 아내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서윤이가 비양심적으로, 너무 짧은 시간 만에 깨서 울었다. 난 직감했다.
‘이게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그대로 안녕이었다. 1시쯤 또 서윤이가 깨서 우는소리가 들렸고, 아내의 카톡이 하나 왔다.
“ㅠㅠ”
서윤이 녀석이 아내와 나의 소중한 두 번째 연휴의 밤을 앗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