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2(금)
아내의 ‘고단함’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 엉덩이 위쪽부터 정수리까지 이어지는 기분 나쁜 뻐근함도 더 심해졌다고 했다.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다행히 오늘은 교회에 가지 않아도 돼서, 퇴근하면 어금니 꽉 깨물고 육아의 일선에 나서야 했다. 카톡과 통화에서 엿보이는 아내의 상태가, 나에게 전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저녁은 돈까스였다. 직접 튀겨야 하는 돈까스. 예상대로 아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꾸역꾸역 체력을 짜내고 더 이상 남은 게 없어 보였다.
“여보. 좀 누워 있어”
손을 씻고 바로 저녁 준비에 스스로 투입됐다. 하필 기름도 다 떨어져서 쉽지 않은 돈까스 튀기기였지만 무사히 마쳤다. 아내는 입맛도 없는지 저녁을 먹지 않았다. 서윤이가 엄마만 찾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내는 아주아주 잠깐이나마 소파에 누워서 쉬기도 했다. 밥도 후다닥 먹고 먼저 일어나서 설거지를 했다. 이런 상황에 자연스레 발휘되는 본능적 부지런함이랄까. 옷도 못 갈아입었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다소 숨이 차기는 했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며 무사히 넘겼다.
애들 밥 먹일 때 아예 서윤이랑 일찌감치 들어가서 눈 좀 붙이라고 했는데, 아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내의 말이 현답이었다.
“여보. 내가 자고 싶다고 잘 수 있는 게 아니야. 서윤이가 자야지”
하긴. 아내는 평소처럼 애들 잘 시간에 같이 들어갔다. 아내는 내보내고 내가 대신 재워주고 싶었지만, 그것도 어차피 서윤이 때문에 무의미한 일이었다. 서윤이가 젖을 떼면 조금씩, 많은 게 바뀔 거다.
아내와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고 나서 급히 초콜렛을 까먹었다. 마카롱도 먹었다. 단 게 무지하게 당겼다.
소윤이가 낮에 아내에게 너무 기분 좋은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기분 좋은 사람은 나다. 아내랑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엄마. 저는 아빠가 너무 좋아여. 장난꾸러기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너무 좋아여”
라고 했다는 거다. 여기까지만 듣고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는데 소윤이는 이런 말도 했다고 했다.
“엄마. 저는 제가 사는 인생이 혹시 꿈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다니. 소윤이가 조금 더 크고, 어디 조용한 곳에 앉아 진중한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재밌을지 기대가 된다.
“난 왜 좋대?”
“왜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너무 좋대”
자녀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그냥 아빠여서 좋다니. 소윤이 말처럼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게 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언젠가 이 순간이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고맙다. 꿈같은 하루하루를 살게 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