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삼만리

21.03.25(목)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처가에 다녀왔다. 아내는 떠나기 전에 화장실 곰팡이 제거 작업을 했다고 했다. 사실 이미 많이 늦은 면이 없지 않다. 사랑과 기침, 가난은 숨길 수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덧붙이고 싶다. 사랑과 기침, 가난, 그리고 곰팡이는 숨길 수 없다고. 이미 화장실 곳곳에 퍼졌지만 조금이라도 없애보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화장실 청소는 암묵적으로 나의 일이고, 그걸 게을리한 결과가 곧 곰팡이라서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 지난번 화장실 청소를 했을 때 오랜만에 곰팡이 제거제를 써 봤는데 나름 효과가 있었다. 아내는 그게 동기부여가 됐나 보다. 테이프 형태의 곰팡이 제거제를 사서 오늘 그걸로 작업을 했다.


잠깐 머리 감는 것도 쉽게 엄두를 못 내는 게 아내의 삶인데, 곰팡이 제거 작업을 했으니 말하지 않아도 아내의 수고가 짐작이 됐다. 아내는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출발을 했다.


아, 참. 서윤이는 어제 또 기록적인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자다 깨기만 여러 번이어도 힘들기가 그지없는데 깨서 젖을 먹고도 자지 않았다. 횟수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밤새 그랬다. 소윤이도 깨고, 나도 깨고. 먹여도 달래도 울기만 하는 서윤이 덕분에 아내는 결국 거실로 나갔다.


출근하려고 일어났는데 아내와 서윤이가 거실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매우 고요하게. 지난밤에 그런 난리가 났다는 건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만큼 평온했다. 혹시라도 서윤이가 깰까 봐 아주 조심히, 조용히 준비를 했다. 서윤이는 안 깼는데 아내가 깼다. 아마 깊이 잠들기 어려웠을 거다. 아내는, 과연 나중에 나에게 인사한 걸 기억이나 할까 싶은 몽롱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윤아. 엄마랑 아빠 고생이 많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너를 향해 안 좋은 말은 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그런 마음조차 품어 본 적이 없단다. 그러니 잘 하란 말이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언니에게, 오빠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당연히 늦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으니 아예 늦지는 않더라도 나랑 비슷하게 오거나 조금 더 늦을 줄 알았다. 그만큼 늦게 갔으니까. 예상과는 다르게 아내와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집에 와 있었다.


“엄청 빨리 왔네?”

“어. 늦어지면 안 되니까?”


가고 오는 시간을 빼면 세 시간 정도 있다가 온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너무 짧게 있다 와서 ‘별로 한 게 없다’라고 얘기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집에 손주들이 왔다 간 걸 아는데 보지 못하신, 장인어른이 가장 아쉬우셨을 거다.


저녁은 장모님이 싸 주신 밥과 반찬으로 해결했다. 반찬은 특별한 건 없었고 밑반찬이었다. 멸치볶음, 시금치, 콩나물, 호박나물, 꼬시래기, 김치. 어른도 투정하기 딱 좋은 소박하고 담백한 반찬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불평은커녕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애들이 밥 잘 먹고 싹싹 비우는 게 왜 그렇게 기특하고 예쁜지 모르겠다. 요즘은 서윤이까지 가세했다. 자꾸 일어서고 숟가락으로 장난을 치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이유식을 끝까지 다 먹는다.


저녁에 모임이 있어서 오늘도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밥 먹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서둘러 씻겼다. 내가 먼저 모임에 참여하고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다. 재우러 들어갔다고 해서 그냥 눕는 게 아니다. 책 한 권을 읽어주고, 꽤 많은 문장과 표현으로 이루어진 작별 인사도 나눠야 하고, 수유도 해야 하고, 그 사이 떠들거나 장난치면 그것도 단속해야 하고.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아내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나왔다. 아내가 문을 닫고 나오는 것과 동시에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냥 나왔어?”

“어, 하도 안 자길래”


물론 아내는 다시 들어갈 각오로,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잘 생각이 없는 서윤이의 흥을 한풀 꺾을 요량으로 나온 거였다. 엉덩이를 완전히 붙이지 않고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대기했는데, 서윤이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어? 뭐지? 자나?”

“그러게”


설마설마했는데 설마가 사람 아니 서윤이를 재웠다. 덕분에 아내는 덜 붙인 엉덩이를 착 붙이고 모임에 함께했다. 모임을 다 끝내고, 아내와 나의 수다와 할 일도 다 마치고 나서 자려고 방에 들어갔다. 서윤이가 문 바로 앞에서 통돼지 바베큐 자세로 자고 있었다. 엄마를 찾아 울며 나오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장렬히 잠들었나 보다.


그래, 니가 양심이 있다면. 어제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면. 오늘은 그게 맞지. 인지상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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