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걸어 오죠

21.03.26(금)

by 어깨아빠

서윤이가 걷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어딘가를 잡지 않고 서거나 두세 걸음 정도 걷기는 했다. 오늘 아내가 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직립보행’이라고 이름을 붙이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오래, 멀리 걸었다. 한 열 걸음 정도. 물론 굉장히 불안정하게 흔들흔들했지만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았다.


“봐도 봐도 신기하네”


아내에게 카톡을 보낸 것처럼 소윤이의 첫걸음, 시윤이의 첫걸음 다 봤는데도 또 신기했다. 서윤이는 따로 걸음마 연습을 유도하지도 않았다. 언젠가부터 잡고 서더니 순전히 자기 의지로 걷기 시작한 거다. 자기도 굉장히 재미있고 뿌듯한지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퇴근해서 집에 갔을 때도 마치 아빠에게도 이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서서히 크는 느낌이었다. 최근 1-2주 사이에는 마치 가속이 붙은 것처럼 훅훅 큰다. 뒤집기 한 번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애를 썼던 게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요즘은 기저귀 갈려고 눕혀 놓으면 0.1초 만에 뒤집는다. 조금만 지나면 언제 기었냐는 듯 걸어 다니기만 할 거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서윤이가 너무 빨리 커서 아쉽다고 말할 정도다. 아무튼 서윤이가 걷기 시작했으니 이제 또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린 셈이다.


집에 왔더니 식탁에 장 보고 온 듯한 물건이 잔뜩 놓여 있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아내는 열심히 뭔가를 만들었다.


“아빠. 오늘 저녁은 찜닭이에여”

“아 그래? 맛있겠다”


소윤이가 분주한 아내를 대신해 먼저 얘기했다. 아내는 무척 바빠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교회에 가야 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저녁 준비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내가 급히 먹고 가야 해서 그랬을 거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하고 놀았다. 오늘따라 피곤했다. 놀다가 유혹을 참지 못하고 누웠다. 누워도 떳떳한 것은, 눕는다고 애들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바로 와서 배 위에 올라앉는다. 차라리 그게 나을 때도 많다. 어찌 됐든 등을 바닥에 대고 잠시나마 누울 수 있으니.


그래도 오늘은 안마 서비스를 받았다. 소윤이의 손이 제법 야무지다. 두드리는 건 정말 시원하고 주무르는 것도 부위에 따라서는 나름 개운함이 느껴진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시원할 거다.


“아빠. 아빠는 왜 이렇게 몸이 커여?”


소윤이와 시윤이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무르기에는 내 몸이 좀 많이 크긴 하다. 언니와 오빠가 아빠를 주무르고 두드리는 게 재밌어 보였는지 서윤이까지 와서 나 등짝과 허벅지를 두드렸다. 애 셋 낳고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부위 별로 맡기려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없이 아내 혼자 애들을 재운 밤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어땠는지가 제일 궁금하다.


“여보. 괜찮았어? 애들은 기분 좋게 잠들었어?”


이 질문으로 대략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아내도 애들도 괜찮았다고 했다. 아내는 12시쯤 영화를 보자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물론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간 건 그로부터 두세 시간 정도 후였지만, 심정적으로 부담스러웠다. 실제로 그 사이에 서윤이도 깨서 아내가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


그리고 사실, 월요일에 연차도 냈다. 마음이 너무너무 가볍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