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 집에 가는 것은 위험한 거 같아요. 바로 차로 가죠.”
대간이 생각이 바뀌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강태석 소장의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집에 들어갈 수 없다니요? 집에 있는 자료마저 가져갈 수 없으면 부리막대 상자 해석은 힘들어요.”
황당한 표정으로 강태석 소장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말했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간 다음 생각해 봅시다. 차는 어디에 있죠?”
대간의 입장은 단호했다.
“지하 주차장에 있어요.”
강태석 소장의 얼굴이 일순간 침울해 졌다.
그들은 계단을 이용해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적막만이 흘렀다. 조명이 어두워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다. 대간은 느낌이 이상한지 멈췄다.
“차는 어디에 있죠?”
대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C32구역입니다. 이곳에서 저쪽으로 좀 걸어가야 해요.”
강태석 소장이 손가락으로 차의 위치를 가리켰다. 차가 있는 곳까지 약 20m쯤 걸어가야 했다. 주차장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소장님, 먼저 이동하세요. 어차피 그들의 목표는 소장님이 아닌 바로 접니다. 소장님을 저들이 어떻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단, 소장님 차를 쫓을 수 있어요. 우리는 여기서 소장님의 차를 뒤따르는 자가 있는지 볼게요. 차를 빼서 조금 전 주차장에서 보는 걸로 하시죠. 우리도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대간이 강태석 소장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그곳에서 봐요.”
강태석 소장이 크게 쉼 호흡을 하고 차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직 아무런 기척은 없었다.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내렸다. 정장을 차려입고 굽이 약간 있는 하이힐을 신은 여자였다.
얼굴을 가릴 정도로 큰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으며, 한 손에는 가방이 들려 있었다. 강태석 소장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그녀도 뒤따라 걸어갔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지하 3층 주차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꽤 기분 나쁜 소리처럼 하람의 귀에 들렸다.
강태석 소장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하이힐 소리도 빨라졌다. 그가 재빨리 차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여자는 강태석 소장 차 앞에서 멈칫하더니 그 앞을 지나 세 번째 건너편 차에 탔다. 차는 바로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왜 출발을 안 하죠?”
“여자를 의식하고 있어.”
하람의 말에 대간도 강태석 소장의 차를 주시하며 말했다.
“여자도 출발하지 않는데요?”
긴장감이 주차장 전체로 흘렀다.
“대간, 어쩌죠? 우리가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람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곧 튀어나갈 기세로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대간은 신중하게 앞을 주시했다.
“예감이 너무 안 좋아요. 교외의 집에서 느꼈던 그런 기분이 자꾸 들어요.”
“소장이 잘 할 거야.”
대간이 하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드디어 강태석 소장의 차에 시동이 걸렸다. 조용한 주차장에 시동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자의 차는 아직 시동이 안 걸렸다. 강태석 소장의 차가 움직이려고 하자 맞은편 차에서 시동을 켜는 소리와 함께 깜빡이와 라이트에 불빛이 보였다. 여자의 차가 아니었다.
강태석 소장의 차가 주차구역을 빠져나오자 또 한대의 차에서 시동 소리음과 깜박이는 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이번에는 여자의 차였다. 강태석 소장의 차가 출구 쪽으로 향하는 순간 맞은편 차가 움직였다. 그때 여자의 차도 주차구역을 빠져나와 강태석 소장의 차 뒤를 쫓는 듯했다. 그 순간 맞은편 차와 여자의 차가 충돌할 뻔했다. 두 차는 멈칫했고 강태석 소장의 차는 지하 3층 주차장을 완전히 벗어났다.
“소장이 이곳을 빠져나갔으니 약속 장소로 가보자.”
대간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하람은 아직도 긴장감이 가시지 않았는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람아 뭐해! 우리도 이곳을 떠야 해!”
대간이 재차 하람을 불렀다. 하람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대간의 뒤를 따라갔다.
강태석 소장의 차는 주차장을 벗어나 지상으로 나왔다. 자신의 애마를 오랜만에 몰아보니 느낌이 좋았다. 요란한 디젤엔진 소리와 함께 방금 전 긴장감이 날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상쾌했다.
‘누군가 나를 미행하고 있었어. 누굴까 그 여자는? 뒤돌아 볼 걸 그랬나? 차에 탔을 때 봤으면 됐는데 ······.’
강태석 소장은 후회가 됐다.
차에 탔을 때 두려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때는 눈을 마주치면 죽을 거 같은 공포가 밀려왔었다. 그는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를 살폈다. 자신이 따돌린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강태석 소장은 대간과 하람이 걸어오는 시간을 생각하여 주차했던 건물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건물 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조금 전 세워 뒀던 곳 보다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했다.
“이제 대간과 하람만 오면 돼.”
강태석 소장은 연구실에서 웨어러블 컴퓨터와 고대 문자 해석 자료들을 갖고 오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집에 있는 거라도 갖고 왔어야 했어. 그것들이 없으면 해석이 어려워.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림문양을 해석하지 못하면 대간은 영원히 나올 수 없게 돼. 그러면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사라지는 거야.’
강태석 소장은 부리막대 상자를 생각하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자.”
대간과 하람은 강태석 소장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되어 약속 장소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주차장에 들어섰지만 강태석 소장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하람도 두리번 거리면 주변을 살폈다. 그때 저쪽에서 라이트 불빛이 반짝였다.
대간과 하람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갔다. 강태석 소장이 밝게 웃으며 운전석에서 대간과 하람을 반겼다. 둘은 뒷좌석에 앉았다.
“주차장에서는 너무 긴장 됐어요.”
하람이 하얀 이를 들어내며 말했다.
“나도 누군가 뒤따라온다는 생각에 온몸에 떨렸어.”
강태석 소장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지체할 시간 없으니 빨리 출발하죠?”
대간이 강태석 소장을 재촉했다. 강태석 소장이 시동을 걸었다. 전기차보다 몇 배는 더 큰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차가 주차구역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차 한 대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 오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본 그 여자 같아요.”
하람이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말했다.
“큰일 났군. 이곳까지 미행을 했나 보네. 아무래도 내가 나가서 상대를 해야겠어.”
대간이 차에서 내리려 했다. 여자의 차가 강태석 소장 차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급히 멈췄다.
“대간,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강태석 소장이 다급히 말했다. 그리고 대간 보다 먼저 차에서 재빨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