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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을 꿈꿨을 초나라 항우의 책사 범증

실패한 참모

by 미운오리새끼 민

범증은 초나라의 항우를 도운 유일한 참모였다. 범증은 70이 넘어서 항량을 섬기면서 참모로써 생활을 했다. 항량은 항우의 삼촌으로 항량이 죽자 범증은 자연스레 항우를 따랐다. 이런 범증을 항우는 아부(亞父)라 칭하며 초기에는 그를 신뢰하고 그의 의견을 따랐다.

범증은 유방의 참모인 장량과 진평의 계략을 모두 간파할 정도로 지모가 뛰어났으며, 한신이 항우의 휘하에 있을 당시 그를 중용하던지 그를 쓰지 않을 거면 죽여 버리라고 할 정도로 인물의 판단 또한 출중했었다.

범증이 이처럼 지모와 지략, 인물 판단능력이 뛰어났지만 참모로써 갖춰야 할 인품은 부족했었던 거 같다. 범증은 성질이 급하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례로 홍문의 연에서 유방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자 범증은 매우 화를 내며,

“어린아이와 대사를 도모했으니 될 리가 있는가. 항왕의 천하를 빼앗는 자는 필시 한(漢)왕이 될 것이다.”

라고 격하게 말했다. 여기서 어린 애란 항우를 지칭하는 말로 자신을 아부라 칭한다 해도 자신이 섬기는 왕에게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 것은 자신의 심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것이며, 평소 항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범증 또한 자신의 성격과 항우의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항우의 성격을 잘 알기에 항우가 잘 못된 행동과 판단을 했을 때에도 참모로써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내버려 뒀을 수도 있다. 아무리 자신이 항우의 아부라 할지라도 그는 신하지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언제든지 항우에게 미움을 사면 바로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러기에 진나라의 포로 20만 명을 산채로 땅에 묻는 것도 막지 못했을 수 있다.

결국 범증은 진평의 반간계에 의해 항우와 결별을 하게 됐다. 범증은 모함에 의해 자신이 물러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았다. 항우가 자만심이 강하고, 의심도 많고, 점점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항우의 옆에 있어야 할 존재 자체게 흐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하의 대세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청컨대, 해골이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범증은 항우와 이별을 하고 팽성으로 가는 길에 등창이 생겨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정황으로 보자면 항우가 범증을 내친 것으로 보이지만, 범증이 항우 곁을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사일하며 태공망처럼 때를 기다리며 여생을 지내다 70이 넘은 나이에 항랑을 만나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던 그로서는 항우 때문에 그 꿈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천하의 대세는 이미 정해졌다는 말로 작별 인사를 고한 것이다.

이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항우의 입장에서는 이미 대세가 자기에게 기울어진 이상 더 이상 범증의 조언 따윈 필요 없고 나이도 많고 하니 이제 편히 쉬어도 될 거 같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증이 말한 의미는 우리가 알 듯 항우의 패배가 확실한 상황에서 자칫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 시신마저 온전치 못할 것을 걱정하여 자신의 시신이라도 보전하려는 노인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지략과 전술에 능통한 그로서는 제나라의 한신, 한나라의 유방이 협공하여 항우를 공격한다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마침 반간계에 의해 자신이 모함을 당하고 죽임을 면한 상태에서 항우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으로 범증은 위안을 삼았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끝을 맺는 범증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비슷한 나이에 강태공은 주 문왕을 만나 자신의 이상 정치를 실현했으며 말년 또한 아름답게 끝을 맺었는데 자신은 대업을 이루지도 못했고 그 이별 또한 아름답지 못했으니 얼마나 많은 회환이 들었을까? 항우에 대한 원망보다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런 연유로 등창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왜 범증은 강태공이나 장량과 같이 될 수 없었을까?

항우에게도 잘 못은 있을지 모르나 범증 또한 항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훌륭한 리더를 만나는 것은 참모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그런 리더를 만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하고 맞지 않는다고 해서 회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 있다면 모르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리더를 변화시키려고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점에서 범증은 항우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거 같다. 항우가 전쟁에서 싸움을 할 때 항우 혼자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 밑의 수많은 장수들과 그를 지원하는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범증과 항우가 성격이 비슷할 것이라고 했는데 범증 또한 자만심이 가득했을 수 있다. 이 말은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않아도 항우와 항상 독대를 하고 아부라는 지위로 항우에게 자신의 의견을 직접 말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오판일 수 있다.


유방과 번쾌는 같은 마을에서 같이 봉기를 일으켰다. 형님 아우 하며 자랐던 그런 번쾌도 유방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장량에게 말을 하여 유방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진나라의 궁궐을 접수했을 때 유방이 왕궁을 떠나려 하지 않았던 사례다. 번쾌가 몇 번 만류해도 유방이 궁을 떠나려 하지 않자 번쾌는 이를 장량에게 알렸고 장량은 유방을 설득하여 궁을 나올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범증에게는 자신의 말을 항우가 듣지 않았을 때,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 즉, 초나라에는 자신의 세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반간계에 의해서 모함을 당하였을 때에도 그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세력이 없었으며, 오히려 항우의 집안을 중심으로 그를 내몰려고 하는 세력이 강했다는 것은 그만큼 범증이 항우 주변의 내부 세력을 잘 규합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참모는 단순히 리더를 잘 보좌하고 보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자신을 믿고, 자신과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조직 내 사람들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것은 리더에게 위협 요소가 되며 자칫 리더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범증은 성격이 급했다. 그래서 항우에게 말을 할 때도 그의 위신을 세워 주며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말을 했다. 직설적 화법은 어찌 들으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명령조로 들릴 수도 있다. 항우 입장에서 범증이 아무리 아부라 하지만 자신은 왕이고 범증은 신하인데 명령조의 직설화법이었다면 그의 말이 옳고 그런 것을 떠나서 일단 배격하려고 할 수 도 있다.


반면 장량은 항상 유방과 대화를 할 때 사례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득하거나, 반문의 형태로 대화를 함으로써 유방이 먼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 유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였으며, 유방도 장량이 한 말에 대하여는 결코 반대하지 않고 따랐던 것이다.


장량과 한신의 지모를 갖고 이 둘과 지략대결을 펼쳤던 범증이지만, 의심 많고, 자만심 가득한 항우를 보좌하는 데 있어서 내부 지지세력 없이 범증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정도전은 이성계라는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혼자의 힘으로도 모든 것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범증이 묘책을 내놔도 항우가 이를 듣지 않고 행동하여 결국 패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지지세력도 없고, 리더의 적극적인 지지도 없는 상황에서 참모는 인내와 이성과 감성을 적절히 활용한 접근법이 필요한 것이다.

PS : 여러분의 의견이 직장상사에게 무시되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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