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과 강태석 소장은 관목 숲으로 들어왔다. 빼곡히 나무로 덮인 숲 속은 바깥과 다르게 어두웠다. 강태석 소장은 지도 앱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숲은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서 몸이 끈적거렸다. 주변 나무와 나뭇잎 또한 축축이 젖어 있어서 미끈거렸다. 땅이 질척거려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강태석 소장은 김찬민 부장에게 연락을 했다.
“부장님, 지금 폐몬 족 마을로 이동하고 있는데 혹시 그쪽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강태석 소장이 빠르게 말했다.
“아우얀 테푸이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움 받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저희가 이동을 해야 하는데 교통수단 좀 알아봐 주셨으면 해요.”
“지구방위기사단하고 하람은 어디 있는데 교통수단이 필요한 거죠?”
“하람은 옆에 있는데 지구방위기사단하고는 지금 떨어진 상태입니다. 여기 상황이 안 좋아요. 저희가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강태석 소장이 걸음을 재촉했다. 하람은 강태석 소장을 따라가며 연신 뒤를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주변 지질연구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김찬민 부장의 말에 강태석 소장은 조금 안심이 됐다.
“하람아, 걱정 마. 마을까지만 가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강태석 소장이 하람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하람은 여전히 불안했다. 대간과 텔레파시도 안됐다. 지구방위기사단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됐다. 그때 관목 숲 밖에서 이상한 불빛이 보였다.
“누군가 우리를 쫓아오고 있어요.”
하람이 앞서가던 강태석 소장의 소매를 붙들었다. 강태석 소장도 뒤를 살폈다. 저 멀리 푸른빛이 보였다.
“저 불빛은 악령의 불빛 아니니?”
“맞아요. 어쩌면 좋죠?”
하람의 말에 강태석 소장은 숨을 곳을 찾았다. 사방이 나뭇잎들로 가려져 있어서 숨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풀숲을 헤매다 움푹 폐인 구덩이를 발견했다.
“저쪽에 숨자.”
강태석 소장은 하람을 데리고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변의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다.
하몬들은 초원의 풀들이 흩날렸던 곳까지 왔다. 사람의 냄새가 느껴졌다. 하몬들은 더 깊이 냄새를 맡았다. 그럴수록 사람의 냄새가 강렬하게 코끝을 자극했다. 하몬들이 풀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관목 숲 앞에 이르러서는 멈칫했다.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관목 숲이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몬들의 눈에서 푸른빛이 났다.
후각으로 인간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인간의 발자국이 하몬들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하몬들은 천천히 발자국을 따라갔다. 하지만 이것 또한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발자국이 나 있을 법한 자리에는 이미 물이 고여 있거나 땅이 올라와 있었다. 하몬들은 눈을 들어 앞을 봤다. 그리고 하몬들은 컴컴한 어둠 사이로 흔들리는 움직임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치렁치렁 긴 나뭇가지만이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하몬 일행은 긴 칼을 이용하여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하몬들의 시야를 가리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숲에 가득 펼쳐진 나뭇잎이었다. 그들은 점점 하람과 강태석 소장이 숨어 있는 곳까지 다가가고 있었다.
강태석 소장은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둘은 입을 막은 채 숨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푸른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강태석 소장은 나뭇잎 사이 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숨이 멋을 듯 충격에 휩싸였다. 하마터면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가까이서 악령의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컴컴한 어둠 사이었지만 악령의 아래 입은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아래 송곳니가 밖으로 나와 광대뼈에 닿을 듯했다. 또한 머리 위로 짧은 귀가 세워져 있었으며 어깨는 구부정했다. 팔은 다리보다 훨씬 길어 갖고 있는 무기가 땅에 닿아 질질 끌렸다. 둘이 숨어 있는 구덩이 옆을 통과할 때 칼끝이 강태석 소장의 몸을 스치듯 지나갔다. 하몬 일행이 반사적으로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하람과 강태석 소장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동공이 확대됐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하몬 하나가 공중 위로 솟았다. 축 늘어져 있던 나뭇가지가 촉수처럼 뻗어 나와 하몬을 휘감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손쓸 틈도 없이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렸다. 하몬이 발버둥을 칠수록 조임은 더욱 강해졌다.
또 다른 하몬이 뛰어올라 휘감고 있는 나뭇가지를 잘랐다. 하얀 액즙이 나뭇가지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강태석 소장과 하람이 있는 곳까지 튀었다. 휘감긴 나뭇가지가 풀어지며 그 사이에 있던 하몬이 땅에 곤두박질쳤다.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들이 요동쳤다. 나뭇가지는 하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몬들이 필사적으로 나뭇가지들을 쳐냈다. 비명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관목 숲 사이로 휘몰아쳐 돌았다. 하람과 강태석 소장은 꼭 껴 앉고 웅덩이 안에 있었다. 죽음을 부르는 비명 소리에 혼이 나가는 것 같았다. 하몬들이 나뭇가지들을 계속 잘라내고 있었지만, 워낙 줄기가 많아 잘라도 끝이 없었다. 나뭇가지 줄기에 휘감겼던 하몬은 커다란 부상을 입었는지 아직도 일어나지 못했다.
누워 있던 하몬이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하몬들이 일제히 땅에 바싹 엎드렸다. 치렁치렁 얽혀서 움직이던 나뭇가지들이 자기들끼리 부딪히다가 반응이 없자 잠잠해졌다. 하몬들이 천천히 부상당한 하몬을 부축하여 일어났다. 온몸에는 나뭇가지에서 뿜어져 나온 액즙이 묻어 있었다. 바닥에도 하얀 액즙이 가득 차 있었다. 하몬 일행은 부상당한 하몬과 함께 관목 숲을 천천히 지나갔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 강태석 소장과 하람은 구덩이에서 나왔다. 둘은 나뭇가지들을 조심히 살폈다.
“그냥 그런 나뭇가지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무서운 식인 나뭇가지인 줄은 몰랐어요.”
하람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제 어쩌죠? 저들이 우리를 찾고 있어요.”
하람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저들이 우리가 가려는 길로 가고 있어서 페몬 족 마을로 가는 건 위험할 수 있겠어.”
지금은 다이몬의 부하들과 식인 나무 둘 다 이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였다. 강태석 소장은 김찬민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김찬민 부장은 강태석 소장과 통화 후 아우얀 테푸이 지역의 지질연구단체를 찾았다. 하지만, 최근 무 대륙이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연구 단체들이 그쪽으로 떠난 상태였다. 그는 이슈를 따라 움직이는 연구단체의 행동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연구한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은 한탕주의밖에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한 군데 연락된 단체가 있었다. 그들은 앙헬 폭포 주변에 있었다. 그때 강태석 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소장님, 어디 신가요?”
“관목 숲에 있어요.”
“방향을 되돌리세요.”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페몬 족 마을에는 현재 연구단체가 없고, 앙헬 폭포 주변에 덴마크 지질연구단체가 있어요. 그들이 소장님을 도와준다고 하니 그쪽으로 가세요.”
“알겠어요. 그쪽 위치를 알려주세요.”
강태석 소장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찬민 부장이 좌표 보냈다.
“푸른악령들은 깨어난 건가요?”
“네.”
“지구방위기사단은요?”
“그게, 지금은 알 수 없어요. 저희도 그들을 찾고 있어요.”
“지구방위기사단의 행방을 모른다고요?”
김찬민 부장은 깜짝 놀랐다.
“아우얀 테푸이에서 푸른악령들과 싸울 때 우리는 산 아래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다이몬의 부하들에게 쫓기는 걸 봐서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다만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확인이 안 되고 있어요.”
“이대로 끝은 아니겠죠?”
김찬민 부장이 고개를 들며 힘없이 물었다.
“그러지 않을 겁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 걱정 마세요. 지구방위기사단은 무사할 거예요. 제가 찾을 수 있어요!”
하람이 강태석 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쑥 끼어들었다.
“다들 무사할 겁니다. 부장님은 다이몬 하고 푸른악령들 움직임만 계속 살펴 주세요.”
“푸른악령들의 움직임은 더 이상 확인이 안 돼요. 다만 지구자기장이나 황도 각의 변화가 전과 다름없는 걸로 봐서는 다이몬이 아직 지하에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곳을 빠져나가고 나서 생각해 봐야죠.”
그는 강태석 소장과 전화를 끊고 나서 상황판의 지도를 살폈다.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무 대륙은 여전히 낯설게 보였다. 또한 그 주변 대륙들의 모습도 침수로 인해 해안선이 많이 사라져 이상해 보였다.
‘세계지도를 다시 작성해야겠군.’
그는 강태석 소장과 하람이 무사히 아우얀 테푸이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덴마크 지질연구단체에 전화를 걸었다.
강태석 소장은 김찬민 부장이 알려준 좌표로 위치를 확인했다. 덴마크 지질연구단체가 있는 곳까지는 2km가 채 되지 않았다.
“하람아,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어서 여길 빠져나가자.”
그는 하람의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관목 숲을 빠져나오자 강렬한 햇빛이 이들을 맞이했다. 잠시 동안 시력을 잃은 듯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그는 바닥을 바라보며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지도 앱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풀이 깊게 우거진 초원지대를 향해 나갔다. 풀 숲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구방위기사단과는 연락이 됐니?”
풀숲을 헤치며 강태석 소장이 물었다.
“텔레파시를 계속 보내고 있는데 아직 답이 없어요.”
하람이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앞서 가던 강태석 소장이 멈췄다. 그리고 하늘을 봤다. 태양은 여전히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는 말을 하려다 말고 앞으로 나갔다. 풀숲을 나오자 뜨거운 열기가 이들을 덮쳤다. 주변 나무들은 용암 열기로 다 타서 시커먼 뼈대만 남아 있었다. 강줄기가 있었던 곳은 이미 용암으로 매워져 있어서 그곳이 전에 물이 흐르던 강인지 조차 구분이 안됐다. 덴마크 지질연구단체가 있는 곳은 강 건너편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을 건너간다는 것은 죽음을 감수해야 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뭔가 이상해. 그들이 저 안에 있다 해도 살아 있진 못할 거야.”
강태석 소장이 김찬민 부장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다.
“한국 강태석 소장입니다. 한국지구지질연구소 김찬민 부장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그곳 위치를 알 수 있을까요?”
강태석 소장이 좌표를 받아 적었다.
“하람아, 용암이 흘러내려서 강 하류 쪽으로 이동을 했다는구나.”
강태석 소장이 마스크를 쓰며 말했다. 그들은 용암이 흘러간 길을 따라 내려갔다. 하류 쪽으로 갈수록 용암의 열기는 식어 있었다. 용암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도 훨씬 적어졌다. 저 멀리 깃발이 보였다. 누군가 나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태석 소장의 풀렸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람아, 저기 깃발과 사람 보이지?”
“저도 봤어요.”
하람도 힘이 나는지 걸음이 빨라졌으며, 피부색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