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받는 블라인드 리더란
목표를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건 내부적인 요인일 수도 있고 외부적인 요인일 수 있다. 물론 목표를 세울 때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위기 리스크에 맞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만약의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하지만 때론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인해 그런 시나리오가 무용지물이 될 때도 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아닌 경우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이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 바로 위기 리크스 관리 참모인 것이다. 위기 리스크의 해결 능력은 조직의 안위가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업무를 추진하는 능력이다. 이런 참모의 경우에는 순발력, 판단력, 직관력, 위기 대처 능력, 다양한 전략 마련 및 이를 실행할 줄 아는 능력 등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들은 위기를 즐길 줄 알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략을 수립하여 상황을 돌파해 나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나라의 한신이 조나라와의 싸움에서 사용하였던 배수진(背水陣) 전략이다. 배수진이란 물을 등지고 싸우는 전술로 그 전까지만 해도 물을 바라보고 진영을 설치는 했어도 물을 등지고 진영을 설치하는 전략은 병법서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칫 싸움이 불리해질 경우 달아날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물을 건너온 적이 준비를 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한신은 이를 뒤집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한신의 용병술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이었다.
한신이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유방은 항우에게 대패를 한 후 많은 병력을 잃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방은 새로운 병력도 필요했었고, 한신이 자신을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유방은 전격적으로 한신에게 가서 그의 인장을 빼앗고 한신의 정예병을 자신의 휘하로 삼았다.
유방에게 자신의 정예병을 빼앗긴 한신은 당장 조나라와 싸움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결국 새로운 병사들을 모집해야 했으며, 이렇게 모집한 병사들을 단시일 내에 정예병으로 조련하여 싸움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단시일 내에 자신의 명령을 따르게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예전과 같은 정공법의 방법으로는 싸움을 이기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신이 승리 후 휘하 장수들은 모두들 한신의 병법술이 기이하다 하여 물었다.
“병법에는 뒤로 산과 구릉을 등지고, 앞으로 물이나 못을 두라고 하였는데, 장군께서는 오히려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모두가 불가하다 했는데 오히려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이것은 어떤 병법에 해당하는 지요?”
그러자 한신은 장수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이것은 병법에 나와 있는 것인데 자네들이 알지 못할 뿐이다. 병법에 따르면 죽을 곳에 빠진 뒤에 살 수 있고, 망할 곳에 놓인 뒤에 생존한다고 했다. 지금 나의 병사들은 시정잡배 무뢰배들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병법에 능하거나 과거에 내가 잘 훈련한 병사들이 아닌 상황이다. 배수진을 친 이유는 이들이 뒤에 있는 강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사지에 몰아 두지 않고 싸우게 했을 경우 우리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한신은 조나라가 자신의 군대를 여러 번 이길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심리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었다. 즉, 한신의 배수진 전략이 무모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조나라에게 승리의 자만심을 키워주는 효과를 발휘하여 싸움에서 방심할 수 있도록 만든 계산도 있었던 것이다.
즉, 한신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마음으로 전략을 구사하며 자신의 군대와 상대방의 군대를 모두 파악하며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단지 병법에 나와 있는 이론적인 전쟁이 아닌, 그때그때 자신의 상황과 적의 상황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병법에 맞게 활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간 것이었다. 이처럼 한신은 위기상황에서도 군사적으로 뛰어난 판단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처한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이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잘 활용할 줄 아는 전략가였다.
유방이 정예병을 갖고도 항우에게 매번 패해 달아나는 것이 일이었다면, 반대로 한신은 전쟁터에서 이처럼 상황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여 이기는 싸움을 하였기에 한신이 없었다면 유방의 대업 달성은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한신과 같은 참모의 경우라면 위기상황을 오히려 즐긴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참모는 리더의 명령보다는 본인의 판단을 믿고 추진하는 경향도 있어 너무 간섭하는 것보다는 권한 위임하여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이 말은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포함된 말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선조가 이순신에게 조선 수군을 폐지하고 육지의 권율 장군과 합세하여 왜적을 물리치라는 명령을 어기고 끝까지 남아 조선의 바다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올린 장계였다.
결국 누구도 이기리라 예상하지 못한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은 12척의 배를 갖고 300여 척이 넘는 왜적과 싸워 이겼다.
당시 상황은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한 후 조선 수군이 괴멸을 당한 상황이었다. 수군 전체가 무너진 상황에서 이를 단시일 내에 제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조정에서도 수군을 재건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을 한 것이었고 어쩌면 선택과 집중을 위해 수습하기 어려운 수군을 재건하는 것보다는 아직 건재한 육군을 바탕으로 권율 장군이 있는 육지에서 왜군과 일전을 벌이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다. 수군이 무너지면 조선은 끝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왜군이 조선을 유린하지 못한 것도 수군이 바다를 막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북진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명량해전도 이런 의미에서 살펴봐야 한다. 육지에서 일전을 벌이기 위해 조선 수군을 폐지하였다면 왜군은 자연스럽게 남해를 지나 서해로 진출할 수 있었으며 이는 바로 인천과 한강을 거쳐 바로 조선 임금이 있는 한양으로 입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아무리 육지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막는다 하더라도 바다를 우회하여 올라오는 왜군을 막을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이를 잘 아는 이순신이었기에 왕명이라 할지라도 이를 거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남은 12척의 배로 어떻게 해서든 왜군의 서해 진출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단지 무모함으로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 그는 12척을 갖고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을 준비하였다. 그래서 결전지도 바다 한가운데가 아닌 해남과 진도를 사이에 둔 울돌목이었다. 이곳에서라면 12척의 배로도 왜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중국의 허난 성에 있는 함곡관은 예로부터 '한 사람만 관문을 지키도 만 사람이 당해내지 못한다'라고 할 정도로 험준한 길목에 위치한 요새였다면 진도의 울돌목 역시 중국의 함곡관과 다를 바 없는 그런 바다의 요새였던 것이다.
이순신은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왜군과의 절체절명의 일전을 이곳에서 준비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왜군이 진도를 돌아가지 않고 자신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이순신에게 연전연퍠 했던 왜군 장수들은 이순신과 맞불기 싫어서 우회로를 선택하려 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왜군 적장 마시다는 이순신의 배가 불과 12척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과거 이순신이 뛰어난 장수라 할지라도 지금 12척의 배로 자신을 상대한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앞서도 한신이 배수진이란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략으로 조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겼듯이 이순신도 바로 이런 허허실실 전략으로 왜군을 유인하여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병사들에게는 ‘사즉생생즉사(死卽生生卽死)’즉,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심리전까지 곁들이며 전쟁을 독려했기에 절체절명의 위기의 조선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명량해전으로 인해 왜군의 서해 진입을 막고, 육군과 수군의 동시 공격으로 조선을 옥죄려던 일본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은 왜군과의 싸움에서 다시 반전을 잡을 수 있었다.
위기는 항상 위기일 수밖에 없지는 않다. 위기를 잘 넘기면 그것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조직에서도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위기라고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반전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참모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 극복의 과정은 전체적인 흐름과 각각의 상황에 맞게 전략을 구사할 줄 아는 유연성, 그리고 현장의 경험과 경륜에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참모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주변 참모들과도 협조가 중요하다.
이외에도 합종연횡으로 유명한 진나라의 장의와 연나라의 소진의 합종책과 연횡책 역시 당시의 전운이 감돌던 춘추전국시대에 조금이나마 각국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묘책이었다.
당시 절대 강국이었던 진나라는 중국 통일의 야심을 갖고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고 있었다. 나머지 6개 나라는 진나라의 위협에 항상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살얼음판과 같은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를 간파하고 6국의 나라에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아준 것이 바로 소진의 합종책이었다.
즉, 7국이 서로 동맹을 맺고 진나라에 대항한다면 아무리 강한 진나라라 할지라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 합종책의 성사로 인해 당분간 중원의 평화는 찾아오는 듯했으니 항상 전운이 감돌던 당시 상황에서 백성들의 삶은 그나마 좀 안정되었다고 봐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진나라 입장에서는 합종책으로 인해 통일의 꿈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나, 바로 장의의 연횡책으로 인해 합종의 계책은 무너지고 진나라로의 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장의는 합종책의 결속력이 높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즉 지금은 진나라가 무서워서 서로들 동맹을 맺고 있지만 각 나라마다 자신들로의 통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장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다른 나라들끼리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는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동맹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소진의 합종책은 장의가 생각한 대로 그 한계가 있었다. 장의는 이를 위해 각각의 나라들과 연맹을 맺음으로써 여섯 나라들을 이간시키고 서로가 싸움을 하게 만듦으로써 진나라로의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통일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오히려 여섯 나라로부터 위협에 빠질 뻔 한 위기 상황을 장의의 지혜로운 판단으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혁명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체 게바라의 위기 상황 대처 능력은 긍정의 힘과 정확한 목표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쿠바 혁명을 위해 피델 카스트로와 멕시코에서 배를 타고 쿠바의 오리엔테 주에 상륙했을 때 생존자는 처음 탑승했던 80명의 인원이 2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사실 아무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80명의 인원으로 수많은 정부군과 싸운다는 것 자체도 무리지만 그 인원이 4분의 1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체 게바라는 자신의 목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체 게바라는 “아직 17명이나 살아남아 있기에 우리는 바티스타 정권을 물리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며, 실의에 빠져 있던 대원들에게 긍정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사실 피델 카스트로 조차도 사실 이 말을 듣고 체 게바라가 정신이 나간 줄 알 정도라고 했으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참모는 위기 상황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런 대안 없는 긍정적인 사고는 몽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만 체 게바라는 목표를 향해 착실히 자신의 원칙과 전략을 지켜가며 혁명을 완수하였다.
또한 체 게바라는 포로는 죽이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워 정부군 포로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투항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체 게바라는 적은 인원으로 정부군을 상대하려고 하면 어떻게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릴라 작전을 통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정부군을 와해시키는 심리전을 같이 병행 함으로써 마침내 혁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PS : 조직에 위기가 닥쳤을 때 여러분은 능동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