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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운오리새끼 민 Dec 16. 2018

상황에 따라 처세와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았던 진평

아름다운 거리의 참모

진평은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에 맞는 처세와 지혜를 발휘하며 나가갈 줄 아는 참모였다. 진평의 이러한 판단은 전체적인 상황 파악과 현실적인 감각,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평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남다른 풍모와 기백이 있어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좋았었다. 일례로 그가 마을의 제사를 지낼 때 고기를 나눠주는 역할을 맡았을 때였다.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고기를 공평하게 나눠 주자 사람들의 불만이 없어졌다. 

진평은 ‘자신이 재상이 되어도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할 텐데...’ 하며 탄식을 했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진평은 큰 뜻을 품고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유방이나 항우처럼 제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은 없었나 보다. 그러기에 그는 초기에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 밑에서 일을 했었던 거 같다. 

진평이 위나라와 항우 밑에서 일을 했을 때 자신의 계책이 받아들이지 않고, 항우의 의심을 받게 되자 자신이 모실 위인이 아님을 깨닫고 그들을 떠나 친구 위무지의 도움으로 유방의 수하로 들어갔다. 이처럼 진평은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을 믿고 계책을 잘 따를 수 있는 주군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유방의 수하에 들어갔을 초기 주발과 관영이 이를 두고 주군을 수시로 바꾸는 배신자라 하며,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니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건의하였다. 이에 유방이 위무지와 진평을 불러 자초지종에 대해 물어봤다. 
"신이 진평을 왕께 추천한 이유는 그의 능력을 중히 여겨서였지 그의 행실은 아니었습니다. 신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략이 뛰어난 인재를 추천하였을 뿐인데 이제 와서 그의 행실을 문제 삼아 진평을 추천한 것을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진평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시고 왕께서 판단하여 결정하시면 됩니다." 
위무지의 말을 듣고 난 후 진평을 불렀다. 
"위왕은 신의 계책을 말해도 듣지 않았으며, 항우는 항씨 일가 위주로 사람을 중용하고 그 외 사람들은 비록 그가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의심만 할 뿐 믿고 중용하지 않기 때문에 초나라를 떠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재능 있는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제 말을 듣고 믿어주시기에 왕의 수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유방은 진평의 설명이 일리가 있다 판단하여 그를 중용하게 되었다. 

양금택목(良禽擇木)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어진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라는 말이다. 직역하자면, 이 말은 둥지를 트는 주체가 새이기 때문에 나무는 새를 가려서 받을 수 없지만 새는 자기가 좋은 나무를 선택하여 둥지를 튼다는 말이다. 즉, 어진 신하일수록 군주를 살피고 가려서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진평은 이를 잘 실천한 사람이었다. 

진평은, 장량이 전쟁의 전체적인 큰 흐름을 파악하고,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면, 그는 세부적인 부분까지 점검하며 진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진평이 유방에게 여러 계책을 내어 성공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미묘한 부분까지 점검하며 조심스럽게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항우와 범증을 이간시킨 이간계일 것이다. 항우가 의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이를 활용하여 범증과 항우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이간계를 제안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들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서 일을 진행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통일 후 초나라 왕 한신이 모반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방이 이를 치려고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려 하였으나, 유방의 군대가 아직은 한신의 군대를 대적할 만한 실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유방에게 유인책으로 한신을 사로잡는 계책을 제안하여 싸움을 하지 않고도 한신을 잡을 수 있었다. 

진평은 정세를 판단하고 거기에 맞는 계책을 내놓는 데에도 뛰어났지만 자신의 처세에서도 전체를 파악하면서 향후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는 전략을 세워 움직였기에 끝까지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예로, 유방의 명을 받아 주발과 함께 번쾌를 처형하러 갔을 때 일이다. 진평은 유방의 수명이 길지 않음을 알고 자칫 여 황후의 외척인 번쾌를 죽일 경우 후에 황후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하여 번쾌를 죽이지 않고 장안으로 압송하였다. 결국 압송하여 오는 도중 유방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고, 진평은 여 황후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진평은 항상 강하지 않았다.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그는 항상 권력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도광양회(韜光养晦)라는 말이 있다. '칼날의 빛을 칼집에 숨기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라는 뜻으로 재능을 감추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유방이 죽고 나서 한나라는 여 황후의 세상이 되었다. 여 황후는 유방의 유언도 무시하고 여 씨 일족을 지방의 왕으로 임명하고, 권력의 자리에도 여 씨 일족으로 채워갔다. 이에 왕릉이 유방의 유언을 빌어 여 씨 일족이 지방의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지만 진평은 지금 세상이 여 황후의 세상이니 여 황후의 의지대로 해도 된다고 하며 황후의 편을 들었다. 왕릉은 결국 파직되었고, 그 자리를 진평이 맡게 되었다. 

왕릉은 이에 격분하여 진평에게 왜 자신의 의견을 따르지 않느냐고 했지만 진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반대를 한다고 하더라도 여 황후는 자신의 의지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며, 결국 우리마저 자리를 보전하지 못하고 물러난다면 세상은 여 씨 일족으로 가득 차서 훗날을 도모하기 힘들 것입니다. 지금은 이직 때가 아니기 때문에 기다릴 뿐이며, 지금 물러난다고 여 씨 세상이 유 씨 세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평은 왕릉에게 지금 물러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설명하고 언젠가는 자신을 비난하던 사람들도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진평의 판단은 정확했다. 진평은 여 황후의 권력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 황후가 죽고 나면, 권력을 다시 유 씨에게로 옮겨 오면 되는 것인데, 그때 유 씨를 지지하는 세력이 황궁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다면 오히려 세상은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며 유 씨에게로 권력을 넘겨주지도 못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평은 그때까지 지금의 실권자인 여 황후의 비위를 맞춰 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진평은 권력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방법으로 자신과 조직을 지켰다. 여 황후가 권력을 잡고 휘두를 때 그 권력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참고 기다리며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여 황후가 죽은 후 주발과 힘을 합쳐 여 씨 세력을 몰아내고 다시 유 씨가 권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전체를 바라보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전략을 구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참모는 꼭 강직할 필요는 없다. 물론 직언을 할 줄 아는 참모가 조직 전체를 보더라도 리더에게는 좋은 참모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고 아무리 리더를 위해 좋은 말이라도 그게 어느 순간부터 리더의 귀에 거슬린다면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리더의 선택이 당장은 맞지 않은 선택일지라도 전체 흐름을 봤을 때 큰 문제가 없다면 리더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반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를 하다 보면 가까웠던 사이도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은 결별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에 참모로서는 이점을 잘 유념해야 할 것이다. 

PS : 리더나 직장상사가 자신과 맞지 않는 결정을 하려고 할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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