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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Dec 11. 2020

찌릿보단 뜨끔 따끔

어느 날 후두신경통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 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시인 김경주,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중에서






낙엽을 밟았다.
나뭇가지에 잎사귀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또 한 번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었다.
시절을 만끽할 수 없다는 사실에 외로웠다.
그날도 머리의 찌릿함은 어떤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차가운 손의 온도가 두피에서 느껴졌다.



"찌릿 지이이잉은 아니고, 뜨끔거려요.

특히 목에서 정수리로 당기는 느낌이 강해요."



최악의 날카롭고 쑤시는 통증은 감소된 기분이었다. 툭툭 따끔거릴 때도 가슴 철렁하긴 매한가지였지만. 작은 증상도 충분히 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신호가 오면 나는 빠르게 점검했다. 내가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숙이려고 했던 건 아닐지, 목이 과도하게 긴장이 되어있는 건 아닌지. 숨을 편안하게 쉬기가 어렵지만 노력했다.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고. 그래야 근육과 신경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무턱대고 눕는 것도 좋지 않았다. 목과 뒤통수가 압박을 받을 수도 있으니.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 선이었다. 찌릿 지이이잉은 잠시 멈췄다. 지난 대학병원에서도 이 정도까진 가보았기에, 큰 희열이 있진 않았다. 그저 고주파 시술이 과연 나에게 멀어질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좋아했을 텐데, 감정의 동요 없이 의사를 바라봤다. 병을 알아가는 과정은 비교적 무심하고 건조한 것 같았다. 




"흠 오늘도 주사치료 시행할게요."




비슷한 위치에 네 번의 주삿바늘 자국. 전기치료를 이어 받는 내게 어느 물리치료사는 목과 어깨가 성할 날이 없다며 컨디션이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 분은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같은 설명을 해도 목소리에 기운이 넘쳤다.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점점 이 병원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머릿속에 늘어났다.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다시 진료일이었다.



"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어서 그런가, 

뜨끔 반응은 한두 번 정도만 있었어요.

전반적인 당김도 좀 줄어든 것 같고.

다만, 찌릿거리던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만지면

옅게 멍이 든 곳을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의사는 지난 번 나의 경과를 듣고, 아주 소량의 스테로이도 성분을 넣어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은 넣지 않았는데 나의 통증이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그 미량으로도 호전된 걸 보니 가능성 있겠다고 했다. 가끔 환자들은 그 약물의 이름을 듣고 치료를 받으면 심리적인 영향이 미칠 때가 있다고 했다. 정확한 나의 반응을 체크하고 싶었던 마음을 조심스럽게 전해주었다. 세심하게 환자 특성을 체크하고 배려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괜찮았다. 마스크 안에서 나는 치아를 들어내고 미소를 지었다.




병원을 나와 산책하던 길에 자작나무를 만났다. 추운 겨울 남편과 떠난 핀란드가 생각났다. 높은 물가에 외식을 많이 하지 않았던 때가 생각나면서 아쉬움이 들었다. 얼마나 한다고. 다음엔 무민월드를 꼭 가보리라, 오로라를 경험하리라. 후두신경통을 물리치고 싶은 아침이었다. 집에 가서 닭다릿살과 김치를 볶아 깻잎에 싸서 한 입 베어물었다. 온 몸의 세포가 잘했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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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핀란드로 가자."




집에 온 남편에게 무민 인형을 기리키며 겨울을 맞이했다. 

2020년의 다사다난했던 마지막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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