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후두신경통
오래된 Tape 속에 그때의 내가
참 부러워서 그리워서
울다가 웃다가 그저 하염없이
이 노랠 듣고만 있게 돼
바보처럼
가수 김동률, 오래된 노래 중에서
즐겁게 걸었던 거리들을 차 안에서 바라보는 일이
오래된 Tape처럼 느껴지더라
후두신경통은 운전연습에 웃던 나를 멈추게 했다. 주행하다가 갑자기 찌릿거리면 경로를 이탈할 수 있기에. 학원 문턱도 안 가고 단 번에 면허 딴 나인데. 조수석에 앉아 타는 것도 장시간은 버거웠다. 이 몹쓸 병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집콕에 충실한 삶은 통증에게 바람직했지만, 사람에겐 가치롭지 않았다.
강남이고 강북이고 여유가 될 때마다 단타성 드라이브에 나섰다. 요즘 개미주주로서 단타란 말이 입에 뱄다. 화장할 필요도 없고, 머리카락을 정리하지 않아도 됐다. 운동복 하나 입고 턱 타면 창가에 스치는 시간여행이 펼쳐졌다. 아는 건물들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이 많아졌다.
"그대로구만 뭘."
무덤덤한 공대생 남편은 현실자각 멘트를 날렸다. 그렇다고 아랑곳할 나인가. 노래만 안 불렀지, 가수 김동률 음악 가사같은 말들을 재잘재잘거렸다. 이미 둘 다 몇 번은 말했던 추억들이 차안의 공기를 채웠다. 앞으로 몇 번을 한다해도 지루하지 않을 언어들이었다.
문득 그날이 생각났다. 후두신경통을 알게되고 가장 난감했던 건 머리카락 염색이었다. 신도시로 이사를 가서 미용실 유목민으로 지내다, 겨우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는데 한동안 갈수가 없었다. 원장과 신나게 염색 컬러 체인지를 했었는데, 검정색 뿌리 머리카락은 야속하고 속상했다. 증상을 앓은 지 한두 달쯤 지나면서 머리할 순간만을 노렸다.
"안 그래도 왜 안 오나 했어요."
과감하게 미용실 문을 두드렸다. 사실 다 나은 것도 아니고 염색 도중에, 찌릿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매일 거울로 마주하는 나의 머리 꼬라지는 날 더 숨막히게 했다. 원장은 두피를 가장 나중에 바르면서 되도록 빠른 손놀림으로 내가 앉아있는 시간을 최소화해줬다. 방치하는 시간엔 미용실 곳곳을 걸어다녔다. 경직된 자세보다 그게 훨씬 나았다.
"선생님이 만류했던 염색을 했어요."
예전에 처음 갔던 신경과 의원 의사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는 기분전환 잘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안 하는 게 좋다면서, 이 쿨함은 뭐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미용실에선 찌릿한 통증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름 걱정 많이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조수석에 앉아 드라이브 하는 것도 피할 이유는 없다고 마음먹었다. 너무 무리만 하지 않으면 되는 일.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야 했다.
어떤 날은 이제껏 먹어보지 못했던 쉑쉑버거를 먹자며 화장기 하나 없는 몰골로 강남을 찾았다. 신나게 한강 야경 드라이브를 하고 나서였다. 포장할 거라서 나는 매장을 굳이 가지 않고, 남편이 사올 수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들어갔다.
"타인은 낯선 이에게 그리 관심이 없어."
남편이 늘 내게 되뇌이는 그 명언은 쉑쉑버거 주문대에 나를 서있게 했다. 메뉴도 고르고 기다리는 동안 테이블에 앉아 주말 강남 풍경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혼자였다면 죽어도 못했을 아픈 순간의 나인데, 고마웠다. 어릴 땐 한껏 빼입고 찾았던 이곳들. 세월이 흘러 지금처럼 편안하게 걷는 것도 괜찮았다. 두 손을 꼭 잡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와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미식회마냥 버거 품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