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선 Dec 12. 2020

주사 지옥은 아직도

어느 날 후두신경통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가수 시인과 촌장, 풍경 중에서






이 아픔이 생각보다 길어진다해도,
세월을 이겨낸 오래된 언어들처럼
나의 기록은 끊어지지 않을 거라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날까지
가장 아름다운 그날일 테니까




패딩을 입고 병원을 갔다. 12월이 되어도 나의 치료는 여전했다. 날카로운 찌릿함은 가셨다해도, 뭉근하고 묵직한 당김은 하루에 서너 번 나타났다. 특히 오후 6시가 넘어가면 잊지 말라는 신호처럼 고개들곤 했다. 남편은 가만히 앉아서 밥 먹는 것도 쉽지 않았던 내가 이 정도만 해도 좋아진 거라고 했다. 



"한 곳이 괜찮아지면 두더쥐 잡기처럼 다른 곳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엊그제부터 귀 뒤에서 목쪽으로 당겨지는 느낌이 강해요. 아 쉽지 않네요."




이번엔 목 측면쪽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갔다. 전기치료와 심층열치료를 받고 약간의 안마로 몸을 풀었다. 날이 춥지 않아서 동네 산책을 이어나갔다. 바깥 온도가 너무 낮으면 애써 풀어놓았던 근육들이 추위에 경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울이니까. 올해의 절반은 맹장수술부터 참 유별났다.




중소병원의 통증의학과 이름과 후두신경통 수술로 많이 알려진 의사 이름이 적힌 메모지는 식탁 한 켠에 아직도 꽂혀있다. 주사치료로 애써 잡아놓은 통증들이 한 번에 무너지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이었다. 일시적일 수 있기에 언젠가 그 순간이 온다면 이젠 당황하지 않고 예정된 다음 스텝을 침착하게 밟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주사 지옥 속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픔을 몰랐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겠죠."




물리치료사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는 논리적으로 본인이 잡아나가고 있는 부분들을 설명했다. 앞으로 목이 받는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 있는 방향이라고 했다. 주사치료를 병행하기에 도수치료도 탄력이 붙으리란 기대감이 조금은 생겼다. 어설픈 위로보다 훨씬 위안이 되었다. 가보지도 않고 벌써부터 낙담할 순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캐롤을 틀었다. 남편에게 주말이 되면 작은 트리를 사러 가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예약할 제과점을 알아봤다. 나의 생일도 다가오고 있었다. 올해 나 때문에 좀 더 노심초사했을 엄마의 생일도 그 옆에 빛나고 있었다. 죽마고우의 생일도 모바일 기프트로 살뜰하게 챙겼다. 캐롤의 온기가 나의 손끝에서 타인에게로 전해졌다.




동학개미로서의 본분도 놓치지 않았다. 집 청소도 많은 걸 해낼 순 없지만, 하루에 작은 부분 하나씩 이어갔다. 예전에 남편에게 잘 만들어준 요리들도 다시 개시했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멋진 사진이 담긴 잡지도 새로 구독했다. 목이 불편해서 예전처럼 한 번에 독파는 어렵지만, 천천히 눈호강은 잊지 않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게 눈을 떼지 않다보면,

나의 풍경이 제자리를 찾을 거리고 믿고 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ayzib1





ⓒ 2020. 낯선 all rights reserved. All photos & writing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이전 09화 내가 운전 못하니, 드라이브 시켜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