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헤어·버네사우즈 저, 이민아 역,『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누군가 "왜 이타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면 무시당하기 십상이야"라고 말했을 때, 씩씩거리며 "그야… 그게 좋잖아?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정도로밖에 말할 수 없는, 서로가 다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얕고 나약한 근거만을 대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책. 이제는 생물학과 인류학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가지고 대답할 수 있다. 왜 다정해야 하냐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아 왔으니까. 다정한 사람이야말로 생존하는 '적자'고, 다정함은 인류가 채택하고 성공해 온 유효한 생존 방법이니까.
"우리 종이 번성한 것은 우리가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123쪽)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류학과 심리학, 생물학과 동물학, 구석기시대 화석부터 현대의 정치 설문조사까지 풍부한 학술적 근거를 들어 인간 종이 사회화를 위해 서로를 길들였으며(즉, 자기 가축화) '친화력'이라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활용해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한 종이 되었다고 논증한다. 이 책의 놀랍고도 고마운 점은 '따라서 인간은 위대하다'는 찬미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외부 집단을 '비인간화'했을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역사와 일상을 통틀어 가해지는 크고 작은 폭력을 보여주고 이 잔혹성을 극복할 대안까지 제시한다.
"집단 간 갈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접촉'이다."(260쪽)
여기에서 "접촉은 직접적인 접촉뿐 아니라 소설이나 영화를 접하는 것"도 포함되며, 우리는 "가상의 인물을 만나는 경험으로 사고가 변하"(263쪽)기도 한다.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과 영화로 다른 삶을 겪어보는 간접 경험이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건 많이 들어본 뻔한 말이지만, 두꺼운 양장 과학책이 이토록 명백히 문학의 편을 들어주니 새삼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도 떠오른다. 인간이 인간의 가해자였던(현재진행형이기도 한) 역사를 증언함과 동시에ㅡ"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ㅡ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산문적으로 증명했으니까ㅡ" 인간 삶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ㅡ. 이야기의 의의 그 자체 아닌가. 인간은 서로를 죽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구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작가님의 소설을 통해 깊이 배웠다.
'인간성'이라는 단어를 쓸 때, 그 말은 이기심이나 잔혹함을 뜻하지 않는다. 세상 어느 종도 인간만큼 잔혹하지 않은데도. 우리는 특출한 유능함을 발휘할 때가 아닌 따뜻함이 엿보이는 순간에 그를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인간다움의 정수는 지성이 아닌 배려와 친절과 포용에 있음을 무의식 중에 아는 게 아닐까. 손해에 진저리 치는 세상에 이런 책이 있음이, 자그마치 14쇄 이상을 찍었다는 게 기쁘다. 나만을 지키는 데도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 때 기억하려 한다. '다정하자'는 결심은 '살아남자'는 말과 같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