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돌베개, 2023
"빈곤의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위 명제는 ‘사상 검증 서바이벌’ 예능 <더 커뮤니티>에서 가장 화제가 된 토론 주제이다. 여야 정치인, 변호사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채팅창에 바쁘게 찬반을 피력하는 와중 닉네임 ‘하마’는 게시판에 조용히 글을 남긴다.
빈곤 문제에 있어서 가장 답답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빈곤에 대한 논의가 너무 자주 빈곤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 빈곤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주로 이야기하게 되죠. 중요한 모든 디테일이 소거된 채로 탁상공론을 하게 되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찬성’ 측 출연자들을 향해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냐며 열을 올리던 나도 하마의 글을 보고 숙연해졌다. 나는 빈곤을 이해하고 있는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빈곤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빈곤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빈곤을 착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동안 한국 사회는 빈곤에 나약함, 게으름, 무지함, 불쌍함과 같은 직관적인 “이미지”를 덧입혀 오랜 착각을 생산해 왔다. 이 해묵은 편견의 껍질을 진솔한 목소리로 벗겨내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빈곤의 이미지 밖에서 소거되었던 디테일을 빈곤 당사자의 육성으로 전달한다. 저자는 빈곤 대물림을 다룬 박사논문을 준비하며 이십여 명의 청소년과 가족들을 만났다. 논문 발표 후 10년에 걸쳐 이 청소년들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까지 계속 따라가는 책을 쓰기로 했고, 그중 여섯 명의 청소년의 목소리가 이 책에 담겼다.
중간중간 아이들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 삽입된 인터뷰는 그들의 얼굴을 상상하게 만든다. 대학 입학 초부터 편의점, 당구장, 가구 배달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느라 동기들 모임에 혼자만 연락받지 못하는 영성을. 정부지원금 제도를 알아보고 꼬박꼬박 주민센터를 찾아가는 지현을. 임대주택 대출금과 사채 빚을 겨우 갚았는데 집을 담보로 다시 돈을 빌렸다는 엄마 말을 듣는 수정을. 실업계 고등학교 현장 실습에 보호장비 없이 일하다 눈에 본드가 튀어도 되려 왜 다쳤냐고 혼나는 우빈을. 상상력이 선할 수 있다면, 바로 마주한 적 없는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는 상상력일 것이다.
각 장의 전반부는 인터뷰와 함께 빈곤 당사자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서술하고, 후반부는 빈곤이 어떻게 대를 잇는 우울감으로, 청소년 범죄로, 제한적인 진로 선택 등으로 이어지는지 학술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빈곤 문제에 자연히 따라오는 가족 부양, 노인 빈곤, 학교 밖 청소년, 청소년 비행, 청소년 노동 등의 주제를 폭넓게 다루며 빈곤의 연쇄 작용은 개인의 어려움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짚어낸다. 그래서 개인이 어떻게 노력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회적 차원에서 각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나름의 방안을 제시한다.
가난을 극복한 개인의 극적인 신화는 늘 찬사받는다. 그들의 노력은 경이롭고 칭찬할 만 하지만 이러한 영웅서사는 회자되면 회자될수록 모두가 마땅히 선망해야 할 모범 서사가 되곤 한다.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평범’한 빈곤 당사자들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열등’한 사람으로 쉽게 폄하되는 것이다.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잠을 줄이고 끼니를 줄여야 겨우 월세를 내고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어딘가의 청소년에게 잘하고 있으니 계속 그렇게 살라며 가볍게 어깨를 다독이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누구든 쓰리잡을 뛰지 않아도 대학에 다닐 수 있고 피크닉과 노래방이 사치가 아닌 사회가 좋은 사회라 믿는다.
이 책의 저자는 기성 작가가 아니다. 특정 분야에서 저명한 전문가나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도 아니다. 책을 펼쳐 읽다 보면 최대한 객관적이고 침착하게 쓰려는 노력 사이사이에 안타까움과 분노가 배어나 투박해진 문장도 있다. 전문 저자의 유려함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출간 이후 사회과학 분야에서 30주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이 추진력이 아이들을 연민하고 궁금해하다 마침내 존경하는, 저자의 10년간의 진심과,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독자가 페이지를 금방 넘길 수 있도록 문단과 장을 적절하게 나누고 배치한 편집자의 세심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지면 구석구석에서 ‘이 이야기는 나만 알 수 없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야 말 거야’라는 결의가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고 (…)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른 청(소)년들을 위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내 책을 응원해주고 기다려주었다.
이 책의 서문을 읽고 잠시 울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나 먹고 살기 바쁘면 남이야 어떻든 상관 없어지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어딘가엔 이런 일이 일어난다. 빈곤 가정 청소년들에게 기꺼이 귀와 몸을 기울였던 어른들의 선의와, 이 선의를 기억하며 어른이 된 아이들의 선의가 이어져 이 책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절절한 진정과 적확한 기획이 있는 책은 독자를 부른다. 크게 부른다. 인피니티 풀을 찍어 올리는 인스타그램 피드, 재벌 2세가 얼마나 풍요롭게 사는지 과시하는 관찰 예능, 명품 하울 유튜브 영상이 오늘도 업로드되는 세상에서 단정한 고딕체가 외친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우리가 정말 궁금해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호기심이 선할 수 있다면 바로 마주한 적 없는 이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호기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