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김연수,윤성희,은희경,편혜영,『음악소설집』, 프란츠, 2024
“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거예요?”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해서 듣는 것처럼 소설의 그 장면과 문장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싶어서요, 라고 대답했었다. 지난달 음악 서적 전문 출판사 ‘프란츠’에서 노래처럼 반복해 읽고 싶은 소설집을 출간했다.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저자들의 라인업만 봐도 심장이 뛰는 엔솔러지 『음악소설집』은 뜨거운 관심과 함께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쇄를 찍었다.
여기 수록된 쟁쟁한 소설 중 나를 가장 많이 울렸던 김애란 작가의 단편 「안녕이라고 했어」를 소개한다. 낙후된 고향에서 7년간 엄마를 간병한 주인공은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소득도 없이 집이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애인도, 친구도, 가족도 그리고 젊음과 기회도 없는 사십 대 주인공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갈망으로 화상 영어 사이트에 접속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몇 강사들을 거친 끝에 로버트라는 인기 강사의 레슨을 듣게 된다.
로버트는 일곱 번째 레슨에서 한국말은 만났을 때 ‘안녕’과 헤어질 때 ‘안녕’이 같다는 것에 의아해하며 어떻게 그 둘을 구분하는지 묻는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주인공은 “그냥 알 수 있다”며 얼버무린다. 하지만 이 대답은 일면 정확하다. 우리는 모든 결론에 또박또박한 이유를 붙이고 싶어하지만 ‘그냥’ 알게 되는 게 분명 있지 않은가. ‘그냥’ 겪게 되는 이별과 사고들도 마찬가지이다. 흔한 성장물처럼 상실로 큰 깨달음을 얻고 삶의 국면이 전환된다면 좋겠지만, 어떤 상실은 그저 상실일뿐이다.
주인공은 로버트와 대화 중 전 애인 헌수와 <러브 허츠>를 들었던 추억을 회상한다. 이 노래에서 “‘가지 말라’는 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던 헌수의 말이 주인공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라는 당황에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인생의 무성의함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상실 앞에서 ‘배웠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봤나봐. 왜 그런 거 있잖아. 누군가의 부고로 시작되는 이야기. 혹은 끝나는 이야기. 그로 인해 남은 이들이 고인을 또 인생을 전과 달리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말이야. (…) 사실 그래서 나,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어.
순간 ”나도“라고 답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 김애란, 「안녕이라고 했어」, 『음악소설집』, 프란츠, 2024, 37쪽
『음악소설집』은 다섯 명의 작가들이 음악이라는 테마를 공유하는 것 외에는 자유롭게 써 내려간 책임에도, 절묘하게 모든 작품이 상실이라는 키워드로 엮여 있다. 김연수의 「수면 위로」는 주인공이 유튜브에서 죽은 애인이 등장하는 영상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윤성희의 「자장가」에서는 먼저 죽은 딸이 홀로 남겨진 엄마를 따라다니고, 은희경의 「웨더링」은 네 명의 인물이 우연히 기차의 4인석에 탔다가 아주 잠깐 헐거운 인연을 맺고 헤어진다. 편혜영의 「초록 스웨터」는 딸이 엄마가 죽기 전 미처 다 뜨지 못한 스웨터를 가지고 엄마의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이다.
음악과 상실은 어우러질 수밖에 없다. 첫째로 음악은 ‘바로 지금’의 인상을 포착하자마자 다음 멜로디로 흘러가 버리는, 감상 자체가 무수한 이별이 되어버리는 시간 예술적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고, 둘째로 과거를 회상할 때 우리는 음악의 도움으로 그 장면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훗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유독 그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평범한 일상에 덧입혀진 다채로운 음악이 그 순간을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삶의 테두리를 확장시키는 음악의 힘, 프란츠는 음악이 지닌 그 일상적인 힘에 주목하여 이번 앤솔러지를 기획했다.”라고 책 소개 글은 말한다.
다시, 어떤 상실은 그저 상실일 뿐이다. 가슴 아픈 이별을 겪는다고 해서 우리가 꼭 성숙해지거나 지혜로워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무의미의 세계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사진을 찍으며, 일기를 쓰며 상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닐까. 음악 또한 이런 역할을 한다. 내가 전 연인과 기차에서 들었던 <오늘 같은 밤이면>, 이별 후에 신촌역 굴다리에서 부른 <가장 보통의 존재>, 재회한 남편이 축가로 부른 <다행이다>를 다시 재생하면 “그 순간”은 나만의 “고유한 것”이 되며 더 선명히 기억된다. 하지만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 무의미의 세계가 던지는 질문에 우리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상실이 그렇듯, 그 기억이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아도 더 성숙한 나, 더 지혜로운 나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나는 그 기억을 ‘그냥’ 사랑하겠다고 못 박으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