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미리,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이봄, 201
초등학교 시절 기억은 거의 마모되었지만 짧은 영상처럼 특정한 순간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요. 영상 밖의 어른이 된 저는 영상 안의 어린 제가 몰랐던 걸 깨닫고는 해요. 왜 그 친구가 저만 빼고 생일파티에 애들을 데려갔는지. 역할 놀이에서 왜 나는 늘 선생님을 할 수 없었는지. 그런 뒤늦은 이해가 십몇 년을 돌아 뒤늦게 도착하죠. 알고 계셨겠지만 저는 또래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애였어요. 다행히 그때는 눈치가 없어서 주눅 들거나 상처받지는 않았지만요.
제가 좀 괴짜 같긴 했죠. 뭐 하나에 빠지면 꼭 요란하게 티를 냈잖아요. 요요에 빠졌을 때는 요요장갑을 끼고 틈만 나면 복도 구석에서 요요를 허공에 던졌다가 바닥에 굴렸다가, 줄을 손가락에 걸고 튕기며 혼자 놀고, 네일아트에 빠졌을 때는 매니큐어를 몇십 개씩 사서 손톱을 매일 화려한 색으로 바꿨죠. 그림이 취미였을 때는 100색 색연필, 100색 사인펜에 이어 전문가용 마카를 한 박스 사서 학교에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어요.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셨던 5학년 때는 제가 일본 노래에 빠진 시기였어요. 즐겨보던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외우고 다녔는데 칭찬에 후한 저희 부모님은 저의 일본어 실력에 감탄하셨죠. 지금과 마찬가지로, 열두 살에도 허영은 저의 가장 큰 동기였어요. 일본어로 된 노래 가사를 프린트해서 학교, 교회, 식당, 어딜 가나 가지고 다녔어요. 몇십 곡을 끝까지 가사를 안 보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외워야만 했으니까요.
저는 곧 목소리 큰 남자애들의 표적이 됐어요. 일본은 나쁜 나라라고 배웠거든요. 투니버스 채널에서 틀어주는 (한국어 더빙된) 나루토나 이누야샤는 재밌지만, 감히 그런 나라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건 아무래도 거슬렸던 거겠죠. 그 나이대 애들은 의협심을 내세워 괴롭히고 싶은 사람을 생채기 내곤 하잖아요. 한 명 두 명씩 저를 이름 대신 ‘일본 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걔들을 혼내셨었나요? 잘 기억이 안 나요. 제가 엎드려서 훌쩍이기 시작하자 목소리 큰 여자애들이 목소리 큰 남자애들을 호되게 혼내기 시작했거든요. 몸으로 싸우면 피나게 한 사람, 말로 싸우면 울리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어 사과하는 게 국룰인 시절이었으니까요.
며칠 후, 선생님이 자습시간에 드라마를 같이 보자고 하셨어요. 자습시간에 EBS방송 대신 드라마를 보여준다는 말에 애들은 신이 났죠. 제목은 <쿠이탕>, 한국어로 번역하면 ‘식(食)탐정’. 맛과 냄새로 범인을 찾는 탐정이 등장하는 일본의 코믹 드라마였어요. 왜 하필 일본의 드라마인지 어리둥절한 반응은 잠시, 1화가 끝나자마자 교실은 얼른 다음 화를 틀어달라는 아우성으로 소란해졌어요. 너무 재밌었거든요. <쿠이탕>을 보기 위해 모두가 자습시간을 기다렸어요. 거기 나오는 “오이시이-” 같은 대사들은 금세 우리 반의 유행어가 됐고요. 남사초등학교 5학년 2반에서 일본어를 하는 건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었어요.
어느 날은 선생님이 드라마 대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틀어주셨어요. 주인공 센이 미지의 단발머리 남자 하쿠와 통성명을 하는 장면에서 선생님은 제게 여쭤보셨죠.
“희선아 ‘하쿠’는 한국어로 무슨 뜻이니?”
영화를 보던 애들이 다 저를 돌아봤어요. 수줍지만 내심 뿌듯하게 “백조요”라고 대답했을 때, 왜 선생님이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보여주기 시작하셨는지 깨달았어요. 제가 열과 성을 다해 외웠던 그 수많은 일본 노래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몇 년이 지나도 선생님의 그 질문만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 찾아보니 '하쿠'의 뜻은 백조가 아니라 '흰 백'(白)이네요)
선생님은 저를 놀렸던 남자애들을 마주 세워놓고 억지 사과를 시킬 수도 있었어요. 조례시간에 교탁에 서서 “얘들아 친구한테 상처 주는 말 하는 거 아니야” 하고 진지하게 말씀하실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공허한 사과로 저를 민망하게 만드는 것보다, 친구가 상처받는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상처를 주고 싶어 나쁘게 말하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력 없는 훈계를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해 보셨겠죠.
선생님은 이런 고민이 번거롭지 않으셨나요? 한 아이를 위해 한 학급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무래도 다정함이란 귀찮음의 반대편에 선 단어가 아닐까요. 다정하려면 이 사람은 지금 어떤 게 힘들까, 필요할까를 세심하게 스캔하고 그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만할 방식으로 해결해 주는 수고가 필요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남들만큼’이라고 그어놓은 선을 굳이 벗어나지 않을 때, 그 금을 가뿐히 넘어서 타인을 향해 더 다가가는 사람. 저는 이런 사람이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사람을 보면 나도 따라서 그어놓았던 선 앞에서 발을 떼어보고 싶어 져요. 지금 소개할 만화책의 주인공인 쓰치다 씨도 그런 사람이죠. 선생님처럼요.
내 인생이
이럴 리가 없어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뭐 이 정도면 됐지,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이봄, 2014, 16쪽
쓰치다 씨는 서점 직원이에요. 외모도 경제력도 성격도 무난한 32세 남자, 평일의 출퇴근과 한가한 주말을 반복하는 지금의 인생을 비관하지는 않지만 썩 만족하지도 않는 아주 보통의 현대인이에요. 그가 주인공인 이 만화책은 내가 그려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그림체가 단순해요. 컷은 연출이랄 것 없이 모든 페이지에 같은 크기의 8칸짜리 정사각형이 들어가고요. 대단한 일 없이 반복되는 그의 하루하루와 닮았어요.
7년 동안,
매일매일
이 방 한 칸짜리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도대체
몇 명의
우주비행사가
우주로
갔을까?
특별히
비관하지는
않는다
부러움과도
다르다.
단지,
단지,
내 인생의
의미는 뭘까,
내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내 인생의
의미는
뭘까,
하고
생각하는
밤도 있다.
- 같은 책, 44-45쪽
이 책의 제목은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예요. 가끔 ‘내 인생의 의미는 뭘까’ 하는 거창한 질문이 떠오르는 밤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우주처럼 아득하죠. 내가 출퇴근을 반복하는 이 시간에 어떤 우주비행사는 달에 도착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그 답을 찾는 것도 같은데요. 하지만 나만은 도저히 그 답에 가까워지지 않는 기분을 선생님도 느껴보셨나요?
작은 스포일러를 하자면, 이 책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답하지 않아요. 다만 망설임과 생색 없이 다정함을 발휘하는 쓰치다 씨를 보여줘요. 일찍 손녀딸을 여읜 할아버지께 꽃을 사다 드리고, 늘 같은 만화책을 예약하는 손님이 허리를 다치자 직접 집에 가져다주고, 비좁은 동화책 코너를 넓힐 수는 없을까 고민해 보는 장면들이 그렇죠. 그걸 지켜보는 후배가 매번 “그런다고 매상에 도움 되지 않아요”, “그런다고 월급은 오르지 않아요”라고 말해도 기분 나빠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요. 작고 단순한 컷 안에서 그의 모습은 연출하지 않아도 빛나요.
작년에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긴박한 전투씬의 중간에 주인공의 남편이 “Please, be kind”라고 애원하는데요. 직역하면 “친절해져요” 정도가 되겠지만 황석희 선생님은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로 번역했어요.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한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나와는 상관없는 먼 우주까지 구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친절함보다는 다정함이니까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남편의 말로 각성하고, 아주 사려 깊은 방식으로 빌런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들 자신으로부터 구해줘요. 별게 다 펼쳐지고 등장하는 멀티버스 세계관 영화와 이 수수한 만화책은 거리가 멀지만, 이 둘이 전하고 싶은 말은 비슷한 것 같아요. “Please, be kind”. ‘내 인생의 의미는 뭘까’ 같은 우주처럼 답 없는 질문에서 나를 구하는 것도 단순한 다정함이잖아요.
문득
인생의
의미는 뭘까,
하는 질문,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인생으로
완성해 갈 것인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인생 쪽에서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내게
묻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하다 보면
나의 인생이 된다.
- 같은 책, 181-182쪽
쓰치다 씨는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거창한 물음을 떠올리되 거기에 매달리지는 않아요. 오늘 만나는 사람을 사려 깊게 대하는 것. 그게 인생이 그날그날 던지는 숙제에 대답하는 그의 해법이에요. 화려한 연출이나 작화가 없이도 이 책이 좋은 책인 것처럼, 나 또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봐요.
선생님께 배운 것처럼 ‘이럴 때는 어떻게 할 거야?’라는 인생의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상냥하게 대답해 볼게요. 오늘은 월요일이고, 일주일 중 제일 다정하기 힘든 날이지만요. 성함도 기억나지 않고 연락처는 가져본 적 없는 남사초등학교 5학년 2반 선생님, 선생님의 다정함이 제 초등학생 한 시절을 구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직장인을 대충 살고 싶은 귀찮음으로부터 구하고 있고요. 이 편지는 받아보실 수 없겠지만, 감사드려요. 멀리 계신 선생님의 삶도 선생님께 다정하기를 바라겠습니다.
(202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