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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아이북스 Mar 03. 202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예견된 일이었다?

출처 / 우크라이나 바이애슬론 연맹 페이스북


전 우크라이나 바이애슬론 국가대표 선수였던 예브게니 말리셰프가 러시아군과의 전투 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만 20세,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너무도 이른 나이지요. 국제축구선수협회 또한 우크라이나의 젊은 축구 선수 두 명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에서는 연일 희생자의 소식이 들려오고,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전쟁 범죄를 일으켰다며 거센 비난을 가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러시아군이 민간 지역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악연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검은 손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라는 주장을 통해 원래 러시아의 땅을 되찾는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적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유럽사를 바꾼 독립운동 이야기》 책을 통해 알아봅니다.








우크라이나의 전신, 코사크

 코사크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남러시아, 우랄, 흑해 연안 등 초원지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을 말한다. 코사크는 ‘자유로운 사람’ 또는 ‘방랑자’를 뜻하는 튀르크계 언어 카자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그들은 15세기 경 드네프르강, 돈강 유역을 중심으로 20여 개의 자치적 군사 공동체를 이루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대표적 부족은 우크라이나 코사크로 불리는 자포리자 코사크와 러시아 코사크로 불리는 돈 코사크였다.

 통일된 정치 공동체를 건설하지 못한 그들은 폴란드, 러시아, 오스만 튀르크, 오스트리아 등 주변 세력의 지배를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로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코사크,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

 1667년 러시아와 폴란드는 드네프르강을 경계로 수장국을 분할 지배하였다. 1687년 수장에 오른 이반 마제파는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큰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스웨덴의 카를 12세와 비밀 협정을 맺고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피의 보복을 받았다. 러시아는 수도 바투린에 군대를 투입하여 민간인 포함 1만 5000여 명을 학살하였다.
 1709년 지금의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진 폴타바 전투는 스웨덴과 코사크의 운명이 걸린 최대의 승부처였다. 그날의 전투는 스웨덴과 코사크의 참혹한 패배로 끝났다. 러시아는 대북방 전쟁의 최종 승리자가 되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였다. 

 지금의 동부 우크라이나와 남부 러시아에는 돈, 쿠반, 테렉, 우랄 코사크가 살고 있었다. 러시아의 지배가 강화되자 돈 코사크는 농노들과 함께 대규모 봉기를 일으킨다. 1670년 스텐카 라진의 봉기는 그 시작이었다. 라진은 볼가강에 갤리선 35척을 보유한 돈 코사크 추장으로, 1668년 카스피해를 장악하고 페르시아를 제압하였다. 1670년 알렉세이 1세의 압제에 봉기하여 볼고그라드를 장악하고 볼가강 중류의 심비르스크를 포위하는 등으로 모스크바를 압박하였지만 정부군에 진압되었다. 체포된 라진은 모스크바 크렘린의 붉은 광장에서 사지가 찢어지는 거열형을 받고 죽었다. 돈 코사크의 봉기는 1707년 블라빈, 1773년 푸가초프 등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러시아에 동화되거나 예속되고 말았다.



민족의식이 싹트다

 러시아 치하에서 국경 수비와 전쟁에 내몰렸던 코사크 사회에도 19세기에 들어가면서 민족문화 운동이 일어난다. 민족적 자각은 세계사적 흐름이기도 했지만, 사상의 자유가 비교적 넓게 인정되었던 오스트리아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시인이자 화가였던 타라스 셰브첸코는 우크라이나어 사용이 금지되었던 암흑기에 그들의 언어를 지키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공헌했다.

1934년에 창설된 우크라이나 작가연맹은 1991년 독립 선언의 기초가 되었다. 민속 음악 분야에는 반두라 성가대와 반두라 합창단 등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길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함께 독립했다. 중세 키예프 공국의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최초의 국가라 할 수 있다. 영토와 인구에서 유럽 국가 가운데 러시아, 프랑스에 이은 세 번째로 큰 국가다. 하지만 러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으로부터 오랜 지배를 받은 탓에 인종적, 정신적, 문화적 정체성이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지금의 터전을 마련하고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과 험한 일에 동원되어야 했다. 오지와 미개척지로 추방되거나 유랑길에 올라야 했다. 아직도 그들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영토,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외세의 개입과 침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 블라디미르 대성당

코사크의 후예, 우크라이나는 오랜 시간 러시아의 수탈과 억압을 견뎠으며 독립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분리된 독립 국가입니다. 많은 국가가 러시아에게 명분 없는 전쟁을 멈출 것을 촉구하고, 그에 따른 경제 및 사회적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옛날부터 이어 온 과욕을 버려야 할 때입니다.






* 위 포스팅은 《유럽사를 바꾼 독립운동 이야기》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 책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1405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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