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뽑았을 뿐인데..
나는 불운하게도 사랑니 4개가 모두 있는 사람이었다. 잇몸 아래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아 없는 셈 치고 살고 있던 와중 어느 날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거울을 보니 왼쪽 아래(아마 맞을 것이다.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랑니가 삐죽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치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옆으로 누워서 비스듬히 사랑니가 올라오고 있었고, 그대로 두면 바로 옆 어금니를 계속 밀어서 썩거나 치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뽑자고 하셨다.
발치일을 결정했는데, 나는 당시 병원 근무 중이라 휴가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퇴근 후 발치 예약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면 안 됐었다.. 치과에서는 발치 후 출혈이 멎지 않거나 이상이 생길 수 있어서 보통 오전에 발치를 한다고 했다. 오전에 발치 후 이상이 있으면 오후에 진료를 보면 되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에겐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속으로 장담하며 휴가를 낼 수 없으니 저녁에 뽑아 달라고 하였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뽑아서 죽을 사들고 물고 있으라는 시간만큼(아마 1시간이었던 듯하다. 2시간이었던가?) 솜을 물고 있었다. 아마 최소 그 시간만큼 물고 있으라는 뜻이었을 텐데 딱 시키는 시간만큼만 솜을 물고 있다가 뱉어버렸다. 피가 조금씩 새어 나오긴 했는데 약간씩은 그럴 수 있다고 미리 이야기 들었기 때문에 죽을 조금 먹고 그냥 잤다.
새벽에 자다가 침을 너무 많이 흘린 것 같아 눈을 떠서 불을 켜보니 베개가 피바다가 되어있었다. 이를 뽑은 자리에서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출혈이 너무 많으니까 입 안에 혈액이 응고되어 퉤 뱉으니 핏덩어리가 나왔다. 나는 이때도 무식했기에 병원에 그대로 마스크를 쓰고 출근했다. 왜냐면 그날은 재고 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병원은 달에 한 번 재고 날이 있었다. 원래 하던 업무는 당연히 그대로 하면서 그날 하루 약국이 보유한 모든 주사약과 알약을 카운트하는 날이었다. 대학병원은, 특히 3차 병원은 다양한 과가 있어서 다양한 환자들이 오기 때문에 약 종류가 정말 많다.. 그날 하루는 죽었다 생각하고 미친 듯이 일만 해야 하기 때문에 치과에 방문할 수 없었다. 출근해서 같이 일하던 분이 우유를 주며 먹을 거냐고, 마스크는 왜 쓰고 있냐고 물었다. 마스크를 살짝 내려 사랑니를 뺐는데 피가 안 멈춰요.. 웅얼웅얼 말하니, 나를 보자 깜짝 놀라며 응급실을 가라고 했다. 입술 사이로 피가 계속 배어 나와서 입 주위가 피투성이라 아마 놀랐을 것이다..
"오늘 재고날이잖아요.. 못 갈 거 같은데..."
"아니, 샘! 지금 선생님 이런 상태로 일 못해요! 얼른 파트장님한테 말하고 응급실 갔다 와요!"
8시 좀 넘은 시간이라 외래가 안 열어서 파트장님께 얘기하고 응급실에 갔다.
피가 계속 나니까 너무 어지러웠다. 응급실에 계신 치과 선생님께 상태를 보여드렸다. 피가 너무 나서 양치를 못했기 때문에 입냄새가 날까 봐 신경이 쓰였다. 선생님은 보시더니 피가 많이 나긴 한다면서 솜을 줄 테니 더 오래 물어보고 그래도 안 멈추면 레이저로 지지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덜컥 겁이 났다. 안 멈추면 어쩌지.. 일단 솜을 꽉 물었다. 어지럽고 보는 이들마다 얼굴이 창백하다고 했지만 의식이 있으니(?) 일했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병원에 근무하시는 각종 직군의 선생님들은 공감하실 것이다. 아파도 나는 환자일 수 없다. 할 거 다 하고 아파야 한다. 오후 3시쯤 지나자 어지러운 느낌이 사라졌다.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는 걸 느꼈다. 살짝 마스크를 내리니 같이 있던 선생님이 혈색이 돌아왔다고 했다. 조심스레 솜을 빼보니 피가 멈췄다!!
재고날은 다들 고생했다는 의미로 4시쯤 간식을 주시는데 그날 처음으로 음식을 입에 조심스레 넣었다. 다들 혈색이 돌아왔다며 좀 괜찮냐고 물었다. 좀 살 것 같다고, 피가 멈추니까 어지럽지도 않고, 음식을 먹으니까 조금 낫다고 말했다.
내 첫 응급실 방문은 그렇게 해프닝처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