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 건강할 거니?
나는 원체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늘 마른 아이였고, 체력이 달리는 것을 평생 겪어왔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운동이란 걸 조금씩 하면서 많이 정상인(?)에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평균 이하이다. 아기를 갖고 8개월 즈음 이던가. 담당 산부인과 선생님이 "산모분 체중 몇 킬로나 쪘어요?" "한 3킬로요?" "안돼. 더 쪄야 돼. 이게 뭐야" 하실 정도로 말랐다. 일부러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체중 조절을 하는 것도 아닌데 원래 입맛이 잘 없고, 먹는 것에 흥미가 없다 보니 더 그랬다. 막달에도 10킬로 정도 쪘고, 그나마 찐 살들도 조리원에서 나올 때쯤 모두 빠져 버린 데다가 임신 전 몸무게보다 더 빠져버렸다.
이렇다 보니 아이를 낳고 얻은 질병들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잠이 굉장히 많았는데 아이를 낳고 수면 부족에, 저체중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여 병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진단받은 것은 한포진이었다. 아기 젖병을 설거지하는데 고무장갑이 불편해서 늘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다 보니 왼손 넷째 손가락에 주기적으로 습진이 생겼었다. 습진이 생기면 한동안 장갑을 끼고 해당 부위에 세제가 닿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그러면 좋아지곤 했다. 또 어느 날 습진이 생겼고 주의해서 설거지를 했는데도 습진 부위가 점점 커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손바닥까지 퍼져서 너무 가려웠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었다. 작은 수포들이 알알이 맺혀 있었는데 수포가 올라올 때쯤 가려움이 심해지다가 긁어서 터뜨리면 또 좀 나았다. 이걸 반복하다가 피부과에 찾아갔더랬다. 의사는 보더니 단박에 한포진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대뜸 "잘 먹고 잘 쉬어야 낫는 병입니다"라고 하시며 강한 스테로이드와 먹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스테로이드를 바르면 나을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아이가 어려서 혹시 안거나 수유를 할 때 아이에게 묻을 까봐 약 한 번 바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냥 오롯이 참았다.
또 한 번은 쓰러진 적이 있었다. 아이가 조금씩 걷기 시작하자 베란다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근데 거실에서 보다 보니 좀 위험해 보여서 데리고 들어오려고 벌떡 일어났다. 순간 어지러움을 느끼긴 했는데 보통 가만히 서있으면 좋아져서 창틀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펑 소리가 났고 눈을 뜨니 거실 TV 장이 보였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었지? 순간 기억이 나지 않아 멍하게 누워있었다. 큰 소리가 들리자 남편은 덜렁거리는 내가 물건을 떨어트린 줄 알고 또 뭘 떨어트린 거냐며 방에서 나왔다. 아마 갑자기 일어나며 기립성 저혈압이 왔고 그대로 뒤로 넘어간 모양이다. 다행히 아기가 주변에 없어서 아기를 덮치지 않았고, 거실을 치워둔 상태에 매트를 깔아 두어서 안전하게(?) 뒤로 넘어갔다. 만약 거실바닥에 그대로 쓰러졌거나 무언가에 머리를 부딪혔거나, 아기를 덮쳤을 생각만 하면 너무 끔찍하다.
마지막으로 얻은 병은 메니에르이다. 그날도 아이를 아기띠에 안아 재우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오른쪽 귀에 물이 찬 것처럼 먹먹했다. '왜 이러지?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넘겼다. 퇴근한 남편에게 말했더니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나는 약사이면서도 참 무식해서 병원을 가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졌기에 그냥 피곤해서 잠깐 그랬나 보다 하고 넘겼었다. 그리고 다음 날, 토요일 아침으로 기억한다. 자고 일어났는데 또 오른쪽 귀가 먹먹했다. 남편이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마지못해 옷에 팔다리를 꿰고 일어났다. 집 근처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어서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는 순간 땅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 뭔가 이상하다.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해도 이건 예사 어지러움이 아니었다. 처음 경험하는 기분이었는데 똑바로 서있으려고 해도 땅이 빙글빙글 돌았다. 병원까지 비틀대며 도착하여 간신히 접수를 했다. 대기 1시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을 감아도 떠도 세상이 돌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뭘 물어보려고 내 이름을 불러서 벌떡 일어났다가 너무 어지러워서 그 자리에서 머리를 쥐고 서있자 간호사 선생님이 어서 앉으라며, 본인이 오겠다고 배려해 주셨다.
1시간이 지나고 진료를 보는데 증상을 듣더니 엄청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이래서 손님이 많은 듯..) 이석증 아니면 메니에르가 의심되고 이를 감별하기 위한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커다란 안경을 쓰고 내 머리를 사정없이 흔드시더니 갑자기 멈췄다. 이때 안구가 튀는지 안 튀는지 보는 검사라고 하셨다. 또 청력검사와 순음검사(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간호사 선생님이 단어를 불러주시면 따라 읽는 검사였다.)를 했는데 먹먹한 귀는 거의 들리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선생님은 메니에르라고 하셨고, 쉽게 말해 귀 고혈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짜게 먹으면 몸이 붓는데 메니에르는 귀 안 쪽 기관이 붓는 거라 짜게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첫 증상이 있기 전날 치킨을 먹었고, 두 번째 증상이 있기 전날에는 짬뽕을 먹었다.) 그리고 또 이 병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잘 먹고 푹 쉬어야 낫는 병이라고 하셨다.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어쨌든 몸에서 나트륨을 빼야 하고, 손실된 청력을 살려야 해서 이뇨제, 스테로이드 등등을 처방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스테로이드는 고용량이어서 한 번에 끊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방문하여 상태를 보며 감량하기로 했다.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청력이 이대로 손상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서 그 후로 소금기를 완전히 끊었다. (역시 나는 무식하다. 그리고 또 용감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처음 겪는 두통이 찾아왔다. 특이한 느낌의 두통. 나는 본능적으로 소금을 안 먹어서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금을 찍어먹으니 두통이 좋아졌다. 나중에 진료를 보며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과다하게 먹지 말라는 이야기였다면서 이뇨제를 먹으며 소금기를 아예 끊으면 큰일 난다고 하셨다.(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뇨제인지도 아는데 제가 잠시 넋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스테로이드 용량을 좀 줄여서 약국에서 약을 타려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뛰어오셨다. "선생님이 잠깐 다시 보자고 하세요."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환자분은 식이도 잘 지키는 것 같고 증상도 호전되어서 이뇨제는 빼도 될 것 같아요. 말없이 처방을 바꿔버리면 환자들이 궁금해하니까 간단히라도 설명해 주려고 불렀어요." 하시며 처방전을 바꿔주셨다. 나는 그 후로 이 병원 단골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병원에 방문하여 스테로이드를 줄여나갔다. 스테로이드를 완전히 끊는 날, 병원 앞 약국 선생님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다며 축해해 주셨다. 메니에르는 관리하는 질환이라고 해서 그 후에도 국물은 먹지 않고 김치는 물에 씻어먹는 등 저염식을 하려고 한동안 노력했다. 지금은 발병한 지 3-4년 정도 지났는데 초기에 관리를 잘한 덕분인지 재발도 없으며,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증상이 없다.
아마도 당시에 잠이 너무 부족하고 힘들어서 이런저런 질병들이 따라온 것 같다. 한포진도 지금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육아하는 부모님들 모두 존경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