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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Sep 25. 2022

서른, 마흔, 쉰 그리고 예순에 대한 시와 노래들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 1994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994년 복학 후 3학년. 마음을 다잡고 도서관에 쳐 박혀 있었던건 딱 두 달 정도. 사람과 공부를 오가며 그렇게 3,4학년을 보냈다. 아직 서른은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서른 즈음에 / 김광석 / 1994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99/30" 

1998년 스물 아홉, 삼성동 누나집에 얹혀 살 때였다. 직장 4년차.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키보드 위에 작은 메모지로 "99/30"을 붙여 두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이렇게 서른을 맞을 수는 없다.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렇게 서른은 왔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청춘은 머물러 있지 않았지만 여전히 청춘이었다.

  



내 나이 마흔살에는 / 양희은 / 1995


봄이 지나도 다시봄 여름 지나도 또 여름. 빨리 어른이 됐으면 난 바랬지 어린날엔.

나이 열아홉 그봄에 세상은 내게 두려움. 흔들리때면 손잡아줄 그 누군가 있었으면.

서른이 되고 싶었지 정말 날개달고 날고싶어. 이 힘겨운 하루 하루를 어떻게 이겨나갈까. 무섭기만 했었지

가을 지나면 어느새 겨울 지나고 다시 가을. 날아만 가는 세월이 야속해 붙잡고 싶었지. 내나이 마흔살에는.


다시 서른이 된다면 정말 날개달고 날고싶어. 그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네.

우린 언제나 모든걸 떠난 뒤에야 아는걸까. 세월의 강위로 띄워보낸 내 슬픈 사랑의 내 작은 종이배 하나.



"불혹(不惑)"

2008년, 서른 아홉. 집안 곳곳에 프린트 해서 붙여 놓았던 단어. 여전히 마음속엔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치열하게 찾았다. 돌아보니 마흔도 청춘이었다.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 2001


 서른 전, 꼭 되짚어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론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이 시를 접한 건 삼십대 초반이었다. 그저 마음에 와 닿는 시로서 읽었던 것이었지 마흔도 멀었는데 쉰은 생각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20대 때의 고민과 40대의 그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듯 하다. 정반합과 양질전화의 작용이랄까?..., 그래도 사십대에 죽음학을 우연히 접해서 공부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이런 저런 자격증을 따고 틈틈히 글을 쓰며 가끔 강의도 하게 된 것은...,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김광석/1995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가네 흰 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못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69살을 60대라 치더라도, 요즘 세상에 60대에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하기에는 너무 일러 보인다. 물론 죽음학을 하는 나로서는 죽음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지 모른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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