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풀어가는 죽음학 이야기] / "사도" vs "인생은 아름다워'
"아빠의 죽음"
- 영화 <사도, 2015>, 감독-이준익 vs <인생은 아름다워, 1997>, 감독-로베르토 베니니
자식이 아비한테 물 한 잔도 드릴 수 없사옵니까?
사도세자는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 영조의 명(命)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당시 11살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명으로 죽었고 자신은 할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영화 속 장면을 빌자면 어린 정조는 뒤주에 갇힌 아버지를 위해 물을 한 그릇 담아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영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린 정조는 절규했다. “자식이 아비한테 물 한 잔도 드릴 수 없사옵니까?” 열한 살에 겪는 아버지의 죽음은 어떤 것일까? 열한 살, 지금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4학년의 나이다. 죽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인식할 수 있는 나이다. 정조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고통을 직접 목격했다.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할아버지이자 왕인 영조에게 애원했을 것이다. 열한 살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은 심리적, 정서적, 행동적으로 정조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충격적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 불안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외상적 경험은 아동에게 다양한 형태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도하게 민감하거나 긴장된 상태를 보이기도 하고 트라우마가 악몽의 형태로 반복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반대로 감정이 마비된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며 퇴행, 억압, 부인 등과 같은 부정적 방어기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설명되지 않은 이와 같은 외상적 사건은 자아와 통합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마음속을 둥둥 떠다니는 빙산으로 남게 된다.
불안이 발생하는 과정을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외상사건과 관련된 자극이 불안이라는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본다. 인지주의적 입장은 외상적 사건이 개인 또는 집단의 신념을 일거에 무너뜨려 혼란이나 무기력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 본다. 즉 개인의 인지체계가 충격적인 외상적 사건을 수용하지 못한 결과로 고통스러운 경험과 감정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인지주의적 관점에서 어린 정조의 마음 상태를 헤아려 본다면, 아버지의 죽음은 이해되지 않고 따라서 수용할 수 없는 사건으로 남는 것이다. 자신의 ‘아빠’가 왜 쌀을 보관하는 뒤주에 갇혀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아빠를 그렇게 죽도록 만든 것이 왜 자신의 할아버지인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설명되지 않은 이와 같은 외상적 사건은 자아와 통합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마음속을 둥둥 떠다니는 빙산으로 남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이 즐거운 놀이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정조가 지켜본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과 달리,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이 즐거운 놀이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들 조슈아다. 때는 2차 대전 당시, 조슈아의 다섯 살 생일에 들이닥친 독일군 병사들에 의해 조슈아는 아빠, 엄마와 함께 유태인 수용소로 향하게 된다. 영화를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아빠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아들 조슈아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은 게임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게임에서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은 탱크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황당한 거짓말도 한다.(결과적으로 조슈아는 탱크 선물을 받게 된다.)
그렇게 게임 아닌 게임 같은 아들과 아빠의 수용소 생활은 시작된다. 기나긴 전쟁이 끝나갈 무렵 패전한 독일군은 수감된 유태인들을 모두 죽이려 한다. 아빠 귀도는 아들 조슈아를 수용소 마당의 작은 철제 상자 안에 숨도록 한다. 그리고 이것도 게임이니 절대 상자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보니 그 철제 상자는 사도세자의 뒤주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아들을 숨기고 자신도 다른 장소로 피하려던 귀도는 독일군 병사에게 발각되고 어디론가 끌려간다. 상자 안의 작은 구멍을 통해 조슈아는 어디론가 끌려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귀도는 그 앞을 우스꽝스러운 큰 걸음으로 장난스럽게 지나간다. 상자 안에서 이를 지켜보는 조슈아는 여전히 아빠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독일군 병사에 의해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귀도, 그리고 잠시 후 들리는 총성. 조슈아는 아빠 말대로 끝까지 상자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독일군이 모두 철수한 수용소에 적막이 찾아오고 조슈아가 상자 밖으로 나온 바로 그때, 탱크가 나타난다. 아빠가 게임의 우승 상품이라고 얘기했던 바로 그 탱크 말이다.
조슈아는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어린 나이었다. 물론 죽음교육 같은 걸 받았을 리도 없다. 만약 조슈아가 수용소에서의 잔혹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모습이 죽기 위해 끌려가는 것으로 기억에 남았다면 그것은 평생 외상적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 귀도의 지혜롭고 재치 있는 판단과 행동으로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서 모든 걸 알게 되겠지만 의도치 않은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좋은 그림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다.
그렇다면 유아기의 죽음교육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권유하고 싶다. 죽음에 대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좋은 그림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다. 짧은 건 5분 만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스토리가 간결하지만 내용만큼은 그 어느 긴 이야기 보다도 감동적인 것들이 많다. 어른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몇 가지 책들을 소개한다. <할아버지는 어디 있어요?>(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내가 가장 슬플 때>(사랑하는 아이를 잃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 <커다란 질문>(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 <나비 엄마의 손길>(엄마를 잃은 아이와 아빠의 대화), <무릎딱지>(‘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라는 문장을 시작되는 엄마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 <살아 있는 모든 것은>(죽음에 대해 설명한 책)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위에서 살펴본 두 영화 속의 죽음처럼 극적이거나 외상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여러 죽음을 접하게 된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사건과 사고들,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 친구의 죽음, 키우던 반려 동물의 죽음 등 살펴보면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의 죽음이나 친구의 죽음 등 예상치 못한 죽음을 경험하면서 정서적 혼란이나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된다.
영국은 매년 5월 ‘죽음 주간’을 정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성인은 물론 아이들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고 개방된 자세로 토론하고 생각해보는 경험을 갖게 하고 있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이미 많은 나라들은 학교 정규 교육에 죽음 관련 교육을 편성하고 있고 특히 영국은 매년 5월에 ‘죽음 알림 주간’을 정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성인은 물론 아이들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고 개방된 자세로 토론하고 생각해보는 경험을 갖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지난 2019년에는 한국싸나톨로지 협회(한국 죽음교육상담협회)에서 제작한 교사를 위한 죽음교육 프로그램이 한국교원연수원 온라인 직무연수 과정에 포함되었다. 많은 교사분들을 통해 보다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죽음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서 우리 사회의 생명존중 문화와 죽음과 관련된 사회적 제도적 문화가 성숙되기를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