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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Dec 27. 2023

잔칫집 보다 초상집에 가라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구약성경 전도서(7장)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평소, 경사에는 못 가봐도 애사(슬픈 일)는 챙겨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그런데 왜 잔치집보다 초상집에 가라는 걸까? 전도서 7장 1절~5절까지의 내용은 이렇다.


"명예가 값비싼 향유보다 더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더 중요하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얼굴을 어둡게 하는 근심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더 낫다."




전도서는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한다. 죽음학에서 말하는 Memento Mori (라틴어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과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초상집에 가면 "아,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죽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도 될 것이다. 위 구절에서는 그런 근심이, 초상집에서의 슬픔이 잔치집에서의 웃음보다 오히려 마음에 유익하다고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고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바로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다. 죽음학에서는 죽음과 죽어감을 구분하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도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엄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죽음학의 대가 퀴블러 로스 박사의 말처럼 우리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며 그것은 그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위에 전도서 7장 첫 번째 구절처럼, 태어난 날 보다 죽는 날이 더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 등, 퀴블러 로스는 여러 저작과 강연을 통해서 우리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출처 : 교보문고

지난 5월 내가 다녀온 아래 사진전도 바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https://brunch.co.kr/@ujuboygpqn/24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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