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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Nov 07. 2020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영원히 살아갑니다."

[영화로 풀어가는 죽음학 이야기2] / 영화 "스틸 앨리스"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영원히 살아갑니다."

-영화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감독-리처드 글랫저, 2014


앞서 소개한 영화 <셀프리스>는 자신의 기억을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눈을 떠보니 나는 나인데 몸이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몸은 나인데 기억이 나의 기억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정 나인가 라는 질문도 해보았다. 영화 셀프리스의 마지막 부분을 좀 더 묘사해 본다. 주인공 데미언은 자신이 얻게 된 새로운 신체가 불법적으로 기증된 어느 단란한 가정의 가장임을 알게 된다. 신체 이식 후 특정한 약을 먹지 않으면 자신의 기억은 사라지고 원래 신체 기증자인 마크라는 사람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데미언은 약을 끊게 되고 결국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 사람은 데미언이 아닌 원래 신체 기증자인 마크로 돌아와 있었다. 데미언의 기억이 사라지고 마크의 기억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 그것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그리고 당신에게도 일어날 확률이 높다.     

출처 : 중앙치매센터 2019 연차보고서

2019년 중앙치매센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의 치매 유병률은 7.2%이다. 또한 2018년 시행한 치매 역학조사에 따르면 85세 이상에서는 40%의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100세 시대가 이미 와 있다고 하는 마당에 85세가 넘는 10명 중 4명은 정도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치매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주된 증상은 기억력 저하이다.  영화 <스틸 앨리스>의 주인공 앨리스의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어학자이다. 그녀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증상이 심해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치매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이다. 치매로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없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설사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여전히 ‘나’다. 한 살 때의 나와 열 살 때의 나, 서른 살의 나, 육십 세의 내가 모두 같은 나 이듯이 비록 칠, 팔십이 되어서 과거의 기억을 잃고 열 살 때의 나로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나는 나인 것이다.      

출처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19.9월

치매 말기가 되면 대부분의 기억이 상실되고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며 말하는 기능조차 거의 사라지면서 결국에는 모든 기능을 잃게 된다고 한다.(중앙치매센터 자료) 물론 여타 질병들도 심한 말기상태가 되면 신체의 많은 부분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치매가 다른 점은 병을 겪는 기간이 길다는 것이고 그만큼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치매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치매국가책임제를 도입하여 여러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대국민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필자도 임상심리사로서 또한 죽음교육상담가로서 평소 치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서울시광역치매센터에서 천만시민 기억친구 리더교육을 받기도 했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부끄럽진 않았을 거야...” 

치매 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배우자나 가족 구성원들의 상태를 죽음학에서는 ‘계속되는 장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죽음교육교본, 임병식 외) 조금 과장된 표현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힘든 병인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치매 환자 가족들이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치매라는 질병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사회적 인식에도 그 원인이 있다. 영화 <스틸 앨리스>에서 주인공의 대사 중 이런 것이 있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부끄럽진 않았을 거야...” 왜 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왜 치매를 암에 걸린 것보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 밑바탕에는 치매라는 것이 기억을 상실하면서 서서히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잊혀 간다는 치매 증상만의 특징과, 꽤 긴 시간 동안 앓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노망’이라는 부정적인 용어로 치매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치매도 여러 질병 중 하나다. 장기간 진행되는 질병이니만큼 정확한 정보와 대처가 필요하고 사회적인 관심과 함께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죽음학에서 권리박탈적 애도나 상실은 관련된 죽임이 사회적으로 승인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가족이 자살한 경우 우리는 알리기를 꺼려한다. 어린아이가 죽었을 때도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유산을 한 경우 우리는 장례와 같은 공식적인 애도의 기간을 갖지 못한다. 전 배우자의 죽음과 같이 사회의 부담스러운 시선 때문에 공개적으로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같이 살던 반려 동물이 죽었다고 경조휴가를 낼 수는 없다.  이처럼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슬프고 깊은 상실임에도 그것을 밖으로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게 되는 것은 한 개인에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병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치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변이나 지역사회의 배려나 관심이 없다면 치매 환자의 가족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짊어진 채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경제적, 육체적 고통을 떠나서 치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개선과 관심을 늘어난다면 치매 환자 본인을 포함해서 가족들의 정서적 고통은 분명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기억은 서서히 잃어가지만 끝까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사랑이다.    

다시 기억이라는 주제로 돌아가 보자. 영화 <스틸 앨리스>의 주인공이 과거의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앞서 소개한 영화 <축제>가 떠올랐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고령의 노인이라는 점에서 <스틸 앨리스>의 주인공과는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주인공 안성기가 어린 딸에게 할머니가 왜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의학적으로는 틀릴지언정 되짚어 볼만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키와 나이, 그리고 지혜를 사랑하는 자식과 손녀에게 나누어 주시기 때문에 서서히 어린아이가 되어가면서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나누어 주실 것이 없을 때, 다시 갓난아이로 태어나기 위해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은 서서히 잃어가지만 끝까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사랑이다. 이 영화 <스틸 앨리스>의 마지막 장면, 병의 증세가 심해진 주인공이 끝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입 밖으로 표현한 단어, 바로 ‘사랑’ 말이다. 치매를 이해하고 싶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영화로서의 작품성도 높고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안 무어의 연기력도 볼만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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