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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Oct 25. 2020

"다른 몸에서 영생하는 나는 나인가?'

[영화로 풀어가는 죽음학 이야기2] / 영화 "셀프리스"

"다른 몸에서 영생하는 나는 나인가?"

- 영화 <셀프리스, Selfless>, 감독-타셈 싱, 2015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이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가 담긴 책이라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책의 내용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책의 제목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외모? 성격? 기억? 환경? 


학창 시절, 친구들과 전생과 환생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전생은 없다는 주장을 폈던 기억이 난다. 전생의 내가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그 전생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내가 죽은 뒤 환생을 하더라도 환생 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할 텐데 전생의 나와 환생 후의 나는 정말 같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어제 내가 존재했음을 오늘의 나는 알고 있다. 어제 했던 결정과 행동은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오늘 나의 결정과 행동은 내일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내일부터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인물이겠지만 인간의 삶으로서는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스스로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내일부터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면 어떨까?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소재의 영화는 많지만 여기서는 영화 <셀프리스>에 대해 얘기해 보자. <셀프리스>는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억만장자의 사업가가 비밀 연구소를 운영하는 한 기관을 통해 젊은 남자의 몸에 자신의 기억을 이식시키고 생명을 연장한다는 줄거리다. 하지만 새로운 몸을 얻은 이후에 연구소에서 준 약을 제때 먹지 않으면 자신의 기억은 서서히 사라지고 이식받은 몸의 원래 주인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부작용이 있다. 우연히 약 먹을 타이밍을 놓친 주인공은 원래 몸 주인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그 과거를 찾아 나서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무엇일까? 새로운 몸을 얻게 된 사업가가 계속해서 약을 먹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보면 힌트는 나온다.      

몸은 나의 것이 아닌데 기억이 모두 나의 것이라면 그것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몸은 나인데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오늘의 나는 어제와 같은 나일까?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나는 분명 오늘의 나지만 어제와는 다른 나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갓난아기로 태어난 '나'는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냈고 청년기를 거쳐 중년기를 지나고 있다. 그렇게 50대 60대가 지나고 70대, 80대? 그리고...     

그리고, 죽음은 언제라도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생명연장의 기술은 아직 이 세상에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섣불리 생명연장을 선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앞서 소개한 영화 <트로이>에서처럼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신들이 질투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끝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이 다소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돈이 무한정 있어서 쓸 수 있다면 잠시 즐거울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돈의 소중함은 없어지고야 말 것이다. 억만장자에게도 결국 죽음은 찾아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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