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음, 2025. 04 읽음

by UJUU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음

쓰다 | 1992




어린 시절 정말 많이 읽은 『누리야 누리야』, 최근에 읽은 『모순』이후로 세 번째로 읽은 양귀자 작가의 책이다. 30년도 전에 쓰인 책이다 보니 등장인물의 어투가 낯선 감은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이 책은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다. 박민주가 납치를 한 이유는 백승하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하여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백승하를 납치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30년도 전에 쓰인 책이지만, 박민주가 전화로 상담받는 여성들의 고통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30년은 충분히 긴 시간인가 변화가 일어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인가?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는 사랑이 등장한다. 박민주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제공하는 남기의 사랑과 결국 납치 대상인 백승하와 사랑에 빠지고 마는 박민주의 사랑이다. 백승하는 박민주를 사랑했는가? 이야기가 박민주의 시점에서 진행되다 보니 확언할 수는 없지만…,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훔쳐서라도 그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천 명, 만 명의 웃음을 빼앗아서라도 내 단 하나의 남자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날개를 훔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바로 여기에 내 번민이 있었다. 멀리 갈 것 없이, 세상에서 구할 것 없이, 바로 그것을 내가 쥐고 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p. 296-297


아주 긴박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흥미 있게 읽은 이야기 안에서 입을 떡 벌리고 홀린 듯이 읽었던 부분은 박민주가 신문사에 보내는 편지 부분이다. 모든 문장에 하나하나 밑줄을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바로 여러분 남성들이 유포하고 심화시켜 온 성의 개방과 확장에 관한 논리에 의하면 그것은 제약 없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렇기에 낮에는 짐승의 세계로 치닫는 이 땅의 성문화를 개탄하고 밤에는 동료들과 밀실에 앉아 영계를 주문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입으로는 열심히 인신매매를 성토하면서 바로 그런 수단으로 공급된 밤의 여자들을 끼고 앉아 세상을 논하는 유능한 여러분들. 술자리에서도 어김없이 집에 전화를 걸어 내 딸과 마누라가 무사한지 잘도 챙기는 착한 여러분들.

… 다시 여러분께 민망한 말씀을 드리자면, 여러분 또한 아무 망설임 없이 백지수표 한 장 정도 날릴 재력을 지녔다면 눈 딱 감고 예쁘다는 누구누구 한 번 침대로 불러 볼까 하는 꿈을 지녔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 꿈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면 영웅다운 호기이고 남에게 이루어지면 졸부들의 쓰레기 같은 짓이 되는 것이지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p. 228



결말에 대해 남기를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남기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다 알지는 못했던 박민주가 가져온 결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을 하면 눈이 멀 수밖에 없는 것인가?


선생님이 왜 백승하 납치사건을 벌였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알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는 일이라면 그 일이 어떤 일이든 중요한 일이 분명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백승하를 납치해야 한다면 납치해야 할 충분한 까닭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유는 선생님께 있는 것이지 선생님이 벌이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p. 354





그러나 슬픈 희극도 있는 법이고 우스운 비극도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나 삶이란 이름의 연극무대에는 어떠한 전제도 의미를 갖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어떠한 반어(反語)도 수용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삶만큼이나 다양한 가치와 다양한 경험을 생산하는 것은 다시없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p. 209


그리고 난 날았다. 분명 날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다면 지금도 나는 날고 있는가? 내 꿈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날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맑고 투명하고 아른아른 결이 비치는, 거의 신성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 천사의 날개를.
난 그 꿈을 이루었는가? 맑고 투명함을 실현했는가? 나는, 나는, 정말 날아보기나 했는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p.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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