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 지음, 2025년 5월 읽음
『여름』
이디스 워튼 지음
민음사 | 1916 (2020)
서평
오랜만에 읽은 고전 소설이다. 사실 이디스 워튼은 모르는 작가였는데, SNS에서 추천 글을 보고 두 권을 빌렸다. 『여름』과 『순수의 시대』를 골랐고, 여름을 먼저 읽게 되었다. 둘 중에 더 짧아서 먼저 선택했다.
『여름』은 사랑 이야기다. 정말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왔다 간 아픈 사랑의 이야기라 두꺼운 책이 아닌 것을 감안해도 순식간에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지루하지도 않고, 물론 속은 쓰리지만(병원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채리티에게 다가올 미래가 예상되어 가슴을 쥐어뜯으며 읽었다) 아주 답답하지도 않았다. 채리티가 마냥 무기력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줘서일까?
결말에 대해서는 - 과연 하니는 돌아왔을까? 채리티는 아이를 낳을까? 그대로 만족하며 살아갈까 혹은 언젠가 견디지 못하고 어딘가로 가 버릴까? 결말 이후에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니를 만난 뒤의 채리티의 묘사들에서 사랑에 대해 너무나 잘 써진 이야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느껴졌던 부분들을 아래에 발췌해왔다. 그 말고는 나머지가 흐릿하게 느껴지고 내가 그 사람을 가장 잘 아는 것 같고(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겠지만) 결국 나 자신까지 흐려져 남들이 나를 보지 못하지는 않을까 생각까지 하게 되는 …. 마음 한구석에서는 채리티도 알고 있었겠지만, 그걸 다 무시하고서라도 일단 빠져버리는 사랑에 대한 진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발췌
심장이 살짝 졸아들었다. 그녀는 즐거워서 들뜬 얼굴을 한 사람들을 볼 때면 갑자기 위축되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이미 호주머니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열쇠를 찾는 척했다.
『여름』 p. 8
그녀의 모든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충동은 차츰 그의 의지를 숙명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그가 인격적으로 더 훌륭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다만 그 나머지 삶이 그들의 열정이라는 중심적인 영광 주위에 감도는 희뿌연 후광에 지나지 않게 되어서였다. 잠시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면 채리티는 풀밭에 누워 너무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 본 뒤 이따금 느꼈던 기분을 경험했다. 그녀의 두 눈이 너무나 밝은 빛으로 가득 차 있어 주위의 모든 것이 하나같이 희뿌옇게 보였다.
『여름』 p. 162
채리티 로열은 발바닥부터 헝클어진 머리카락 꼭대기까지 그에 대해 정말로 잘 아는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달라지는 눈빛을 알고, 목소리의 억양을 알고,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에 대해 알 만한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방 안의 벽에 대해 알고 있듯이 채리티는 그 모든 것을 자세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미처 짐작하거나 알지 못하는 이 사실이 채리티의 삶을 특별하고 침범할 수 없는 무엇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비밀이 안전하게 지켜지는 이상 아무것도 그녀를 상처주거나 괴롭힐 힘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여름』 p. 163
…그와 함께 보낸 짧은 시간은 산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하니는 채리티를 잡아채어 새로운 세계로 데려갔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녀의 유령이 다시 돌아와 너무나 어렴풋하고 실체도 없이 습관적인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에 채리티는 이따금 자기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정말 보일지 궁금했다…….
『여름』 p. 167